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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돼지들과 마주한 주인공 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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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개... 내가 지켜주고 싶었던 호랑이... 내가 먹은 돼지.... 그들은 얼마만큼 다르고, 얼마만큼 같을까."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에는 위와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윤의 독백이다.

황윤 감독은 인간 사회에서 고통 받는 동물들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왔다. 서울동물원의 새끼 호랑이 '크레인'을 통해 야성을 억압당하고 전시용으로 길드는 동물원 동물들을 조명한 그녀의 다큐 영화 <작별>(2001)은 국내에서 동물원 동물 복지를 위한 움직임을 촉발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위 독백을 통해 황윤 감독은 자신이 사랑했던 반려견과 호랑이 크레인, 그리고 자신이 먹었던 돼지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들이 고통 받지 않을 권리를 지녔다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독백은 또한 개와 호랑이만 사랑하고, 돼지를 비롯한 농장 동물의 삶에는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내적 고백이라고 한다. 

단순히 '고기'로만 여겼던 돼지를 '생명'으로 인식하는 여정을 그린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그동안 당연시했던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 사회 심리학자이자 동물 권리 운동가인 멜라니 조이 박사가 이 영화에 대한 추천사를 보내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좀처럼 불판 위의 삼겹살에서 살아 있는 돼지를 떠올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개·고양이를 먹는 상상만으로도 혐오를 느끼는 사람들도 돼지를 먹는 것은 '원래 그런 것', '당연한 일'로 여긴다. '식용'으로 규정된 동물에게 감정을 느끼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여겨지곤 한다.

먹기 위해 기르는 돼지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잡식가족의 딜레마>와 같은 영화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북하거나 불편하다는 것도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동요를 느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본래 공감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유독 '식용'으로 규정된 동물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할까, 먹을까..." 딜레마에 빠졌나요? 

5월 16일 오후 2시 연세대학교 공학원 지하1층 대강당에서 개최된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 박사의 강연회
 5월 16일 오후 2시 연세대학교 공학원 지하1층 대강당에서 개최된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 박사의 강연회
ⓒ 안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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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물 보호 시민단체 카라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공장 대신 농장을!' 캠페인을 시작했다. 공장식 축산은 기계로 물건을 찍어내듯이 가축을 사육·도축하는 방식으로 20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런 시스템에서 동물은 일체의 욕구와 습성을 무시 당한 채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간주되며 극도의 고통에 시달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30년 동안 서구에서 공장식 축산이 도입되면서 육류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카라는 '공장 대신 농장을!' 캠페인의 일환으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저자 멜라니 조이를 초청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멜라니 조이의 강연회와 멜라니 조이·카라 임순례 대표의 특별 대담으로 이뤄진 '육식주의 매트릭스 깨뜨리기'가 연세대 공학원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멜라니 조이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 동물을 먹는 행위 기저에 있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사회심리학자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녀는 사람들로 하여금 '식용'으로 분류된 동물을 먹도록 조건 짓는 보이지 않는 신념 체계에 '육식주의(Carn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멜라니 조이가 '육식주의'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이유는 육식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이름 붙이기를 피할 때 우리는 진실과 대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문제의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한 손으로 반려견을 쓰다듬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돼지 고기를 먹는 자신의 행동에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이고 타자의 고통에 공감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 유독 '식용'으로 규정된 동물을 먹는 문제에 관해서는 생각하고 느끼기를 거부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멜라니 조이 박사의 강연회 후에는 서현진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멜라니 조이 박사와 카라 임순례 대표의 특별 대담이 이뤄졌다.
 멜라니 조이 박사의 강연회 후에는 서현진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멜라니 조이 박사와 카라 임순례 대표의 특별 대담이 이뤄졌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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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고 나서 마음 편히 돼지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멜라니 조이가 지적했듯, 접시 위의 고기가 본래 생명이었음을 떠올리지 못하는 "인식의 단절"을 극복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 모두가 고기 먹기를 완전히 그만두게 될까? 나는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앞의 고기가 살아 있는 생명이었음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그런 인식을 방해하고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안팎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영화에서 주인공 윤이 그랬듯이 "사랑할까, 먹을까"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우리를 안팎에서 공격하는 저항이란 육식을 옹호하는 고정 관념들이다. 먹을 것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는 주장,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생명이며 고통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주장, 육식 동물은 초식 동물을 잡아먹는데 사람은 왜 동물을 먹으면 안 되냐는 주장, 육식은 인류의 전통이라는 주장, 반려 동물에게는 고기를 먹이면서 왜 사람은 먹으면 안 되냐는 주장, 채식주의자가 늘어나서 채소 소비량이 증가하면 채소 역시 공장식으로 생산될 거라는 주장, 가축들은 인간에게 사육되지 않았다면 멸종했을 거라는 주장, 채식주의자가 늘어나면 축산업자는 전부 망할 거라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고 딜레마에 빠진 사람 중 상당수가 이런 고정 관념과 씨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멜라니 조이가 지적했듯, 대다수의 사람이 "육식이 정상이고, 자연스러우며, 필요하다"는 믿음에 추호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은 동물을 먹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 뿌리 깊이 존재하며 육식을 정당화한다.

또한 사람들은 고기를 먹는 행동이 본인의 자유에 따른 '선택'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멜라니 조이는 육식주의의 매트릭스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유로운 선택은 없다고 말한다. 

육식주의 매트릭스 깨뜨리기

흑백 논리는 동물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모든 문제를 흑이 아니면 백, 선이 아니면 악이라는 방식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논리, 양 극단 이외의 것은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사고 방식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무수히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이유로 내 곁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작은 실천을 무의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차피 쓰레기는 끊임없이 생겨나게 마련이니 그것을 줄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일상의 실천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폄하한다. 

고기를 먹으면서 모피에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고, 천연 가죽 대신 인조 가죽을 선택하는 실천 역시 환경 오염을 일으키기는 마찬가지니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해 멜라니 조이는 "완벽주의는 성공의 적(Perfect is the enemy of the good)"이라고 말했다. 유독 동물에 관한 문제에 대해 많은 이들이 "완벽하지 않을 바에는 그 어떤 실천도 무의미하다"는 흑백 논리를 따르는 경향을 보인다. 이타적인 실천을 그만두고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가려는 내면의 육식주의인지도 모른다.

멜라니 조이에 따르면, 공장식 축산의 본고장으로서 그것의 폐해를 일찍이 경험한 서구에서는 육식주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채식주의 제품과 식당이 늘어나고 있으며, 일주일 중 하루는 육류를 식단에서 제외하는 '고기 없는 월요일'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기 없는 월요일'은 우리나라의 많은 관공서·학교·기업에서도 시행 중이다).

세계적인 육류 소비국인 미국에서는 축산물 전문 기업들이 콩고기를 비롯한 채식 제품을 출시해 육류 소비 감소로 인한 적자에 대처하고 있다. 소시지의 본 고장인 독일에서도 콩으로 만든 채식 소시지를 판매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은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물론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육식이 정상이고, 자연스러우며, 필요하다"는 매트릭스를 깨뜨리려는 숱한 노력과 실천이 있었을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려면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왔던 육식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멜라니 조이는 이 모든 노력을 '증언'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책과 방한이 많은 이에게 육식주의의 눈가리개를 벗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소장본의 저자 친필 사인. 멜라니 조이 박사는 육식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을 '증언'이라고 말했다.
▲ "증인이 되어줘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소장본의 저자 친필 사인. 멜라니 조이 박사는 육식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을 '증언'이라고 말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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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저자 멜라니 조이 | 역자 노순옥 | 모멘토) 12,000원

멜라니 조이의 저서 외에 육식주의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도서목록을 블로그에 올려두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unchi/220285901037



태그:#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 #잡식가족의 딜레마,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육식주의 매트릭스 깨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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