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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에서 11km정도 떨어진 곳으로 현지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다.
▲ 암베르 성 (Amber Fort) 자이푸르에서 11km정도 떨어진 곳으로 현지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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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새벽 조깅

릭샤를 예약해 놓을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예약을 해놓고도 그 다음날 기사가 안 나올 확률도 있고 숙소의 스태프도 괜찮다고, 새벽이라도 택시는 앞에 있을 테니 잡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깜깜한 새벽부터 걸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호텔을 나온 시각은 새벽 5시였다. 호텔 문도 잠겨있던 시각, 사람을 깨워 나갈 수 있게 문을 열어달라고 청하고 나서야 이 도시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로에 릭샤나 택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한 대 발견한 택시엔 얼마를 낼 수 있냐며, 농담을 거는 기사만이 있었다. 이내 그는 손을 저으며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 안의 기둥들이 여느 장식 못지않게 유려하다.
▲ 기둥들 성 안의 기둥들이 여느 장식 못지않게 유려하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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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분을 근처에서 왔다 갔다 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할 순 없었다.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 새벽 조깅을 하는 외국인도 한 명 보았고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는 인도인들 2, 3명도 있었다.

아직 해 뜰 기미도 안 보이는 어둠에 배낭을 메고 걷는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 치면 혹자들은 왜 그렇게 위험하게 다니냐고 쓴소리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행 중엔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이 날처럼 기차를 놓치면 꼬일 상황이 (타지마할은 전 세계의 여행자가 몰리는 관광지이므로 아그라에서 타 지방으로 나가는 표를 못 구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생길 수 있는 터였다. 때문에 예매해놓은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험준한 산악지대에 위치해서 지형을 이용한 방어가 용이한 곳이다.
▲ 암베르 성 (Amber Fort) 주위 전경 험준한 산악지대에 위치해서 지형을 이용한 방어가 용이한 곳이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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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바탕은 사람에 대한 불신보다는 신뢰다. 어둠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길을 묻는 이방인에게 위협보단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고 이상하게도 먼동이 트기 전 안개 섞인 길이 상쾌했다. 가는 길을 호위하듯 늘어선 도로 옆의 가로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런 순간순간이 여행이라는 비워져 있는 캔버스를 채운다.

난을 돌리는 손놀림이 현란하다.
▲ 자이푸르의 길거리 식당 난을 돌리는 손놀림이 현란하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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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아침의 활력을 그대로 보여주듯 도로엔 쌩쌩 달리는 차들을 느끼고 시간을 보니 벌써 한 시간이 넘게 걸었다. 그리고 뻗어 있는 삼거리에서 한번 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 실례지만 기차역이 어느 쪽이죠?" 

그렇게 마지막 물음을 끝으로 기차역에 도착했다! 배낭을 메고 장장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어 도착한 기차역. 그러나 그 이후는 릭샤가 잡히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남자의 주 수입원 코브라. 함께 사진을 찍고싶을 때는 얼마간의 돈을 내야한다.
▲ 코브라 남자의 주 수입원 코브라. 함께 사진을 찍고싶을 때는 얼마간의 돈을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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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내가 있어야 할 기차역이 아니었다. 서울역에 가야 한다고 치면 용산역으로 갔던 것. 그리고 목적지 기차역이 내가 머물렀던 곳에선 더 가까웠던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덜 걸을 수 있었다는 이 억울함...) 그나마 릭샤가 잡혀 다행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며 기차에 오를 수 있었으니.

인형극의 주 발상지답게 인도 전역에서는 음악을 곁들인 이런 인형극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 인형극 인형극의 주 발상지답게 인도 전역에서는 음악을 곁들인 이런 인형극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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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그라는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을 보여준 타지마할보다는 상쾌한 안개가 서린 내가 걸었던 그 도로다. 조깅을 하던 외국인, 새벽을 가르며 하루를 시작하는 인도인들 그리고 긴장을 놓치지 않았던 내 힘찬 발걸음.

여행을 완성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발걸음의 시작은 타지마할이었지만 아그라를 완성한 것은 코 끝에 여전히 느껴지는 그 새벽의 아련한 상쾌함이다. 그래서 가끔은 아그라의 그 새벽녘이 그립다.

전경
▲ 암베르 성(Amber Fort)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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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시티에서 거짓말하기

'핑크시티'라는 별명은 도시 입장에서 보면 과하게 부담스러운 별명일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보면 진짜 핑크색이라기 보다는 황갈색에 핑크색을 살짝 첨가했다고 해야 할까. 도시에 붙여진 그 별명 덕에 한동안 도시는 한 색깔로만 치장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1876년에 영국 왕자의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칠해진 핑크색.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재는 곳곳에 벗겨진 바랜 색깔들이 인도의 실질적 주인이었던 영국과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여전히 '자이푸르'하면 핑크시티라는 닉네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주정부는 이 도시의 색깔을 관리하고 있다. 

자이푸르 시내의 길거리 군것질 노점. 한끼 대용으로도 좋다.
▲ 길거리 음식 자이푸르 시내의 길거리 군것질 노점. 한끼 대용으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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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시티에 발을 들여놓고 첫 일정은 암베르(Amber fort) 성이었다. 암베르 성은 지형을 이용한 방어의 목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버스에 내려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물론 인도의 관광지가 그러하듯 이 곳에서도 원하면 코끼리를 탈 수 있었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의 당나귀에 이어 이곳의 코끼리 또한, 무거운 이 한 몸을 싣는 것이 자꾸 찔리기만 한다.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코끼리들이 과연 저것을 좋아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길을 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을 싣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성까지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 그들의 운명이 코끼리의 치장과 대비된다.
▲ 치장한 코끼리 사람들을 싣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성까지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 그들의 운명이 코끼리의 치장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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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 역 근처의 전경. 주인을 기다리는 낙타.
▲ 자이푸르 역 자이푸르 역 근처의 전경. 주인을 기다리는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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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말을 건다. 인도인 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손에 들고 있는 기념품을 권한다. 그리고는 정말 관심이 없음을 내 표정에서 확인했는지, '환전도 가능'하다고 한다. 달러를 물으니 터무니 없는 가격을 얘기하길래 어차피 한국 돈밖에 없으니 어렵겠다고 대꾸했다. 그는 한국 돈도 환영한다며 루피로 주겠다고 한다. 몇 번의 제안과 응수 후, 우리의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이내 나에게 물었다.

화려한 성 안의 내부장식들.
▲ 성 안을 둘러보는 인도인들 화려한 성 안의 내부장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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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는 있어?"
"그럼 물론 있지. 남편이 있어. 오늘은 쉰다고 해서 말이야. 같이 오지 않았지."
"인도 남자친구는 안 필요해? 인도 남자는 밤에 강해. 난 부인이 셋이나 있지만 여자친구도 가질 수 있어. "

이쯤 되면, 이 남자의 관심은 자명하다. 부인이 셋이라며 외국여자에게까지 들이대는 태도가 뻔뻔스럽다.

암베르 성(Amber Fort)을 견한 온 학생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 인도 학생들 암베르 성(Amber Fort)을 견한 온 학생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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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의 스태미나는 말도 못해. 내가 다른 남자친구를 만들 수 없을 정도야. 그리고 내가 남자친구를 만나도 부인이 셋씩이나 있어서 피곤할,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겠어? 당신 옆에 붙어있는 부인들이나 잘 관리해~." 

대화를 위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으므로 남자는 쭉 내 옆을 따라 길을 오르며 얘기를 했었다. 그는 대꾸를 듣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 멍하니 쳐다보는 그에게 고개를 돌려 한마디 던졌다.

"부인들에게 안부 전해줘! 안녕."

여행을 다니는 동안은 이런 류의 남자들에게 난 언제나 뻔뻔스러운 거짓말쟁이다. 그래도 혼자 여행다니는 팔자좋은 유부녀 코스프레가 그리 기분 나쁘지만은 않다.

차를 마시는 남자들
▲ 차를 마시는 남자들 차를 마시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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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에 걸친 인도의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태그:#인도 자이푸르, #핑크시티, #암베르 성 ABER FORT, #인도배낭여행, #세게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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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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