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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책과 함께 노는 도서관.
 책과 함께 노는 도서관.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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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큰아이는 올해 여덟 살이고, 학교에 안 갑니다. 이 아이는 시골마을에서 시골아이로 살면서 날마다 놉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놀고, 낮에는 스스로 "아, (노느라) 힘들다, 이제 좀 누워서 쉬어야겠다!"하고 말하면서 한 시간쯤 느긋하게 낮잠을 잡니다. 낮잠에서 깨어난 뒤 저녁까지 놀고, 별빛이 초롱초롱 온 마을을 비출 무렵 '더 놀지 못해 아쉬운' 몸짓으로 비로소 이부자리에 듭니다.

아이한테는 놀이가 밥입니다. 아이와 하루 내내 붙어 지내면서 느끼는 생각입니다. 아이한테 놀이를 빼앗거나 막으면, 아이 얼굴에는 웃음이 곧바로 사라질 뿐 아니라, 입을 굳게 다뭅니다. 아이한테 놀이라는 밥을 건네면, 아이 얼굴에는 웃음이 곧바로 나타나면서 신나는 노래가 맑은 춤사위와 함께 솟아납니다.

시험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중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어 고등학교에서도 이 성적을 지켜 '서울에 있는 이름난 대학교'에 척하고 붙어야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쥔 뒤 '서울에 있는 연봉 높은 회사'에 척하고 들어가야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대학교를 가는 일은 나쁘지 않고, 연봉 많이 받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와 높은 연봉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뜻'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운동과 정치와 교육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동백꽃을 쓸어 담자
 동백꽃을 쓸어 담자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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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면서 풀놀이
 밥 먹으면서 풀놀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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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켈리님이 쓴 <희망은 있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사랑이 우위에 놓인다면 인간은 더 이상 미움과 경멸에 사로잡혀 사물과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 <희망은 있다> 본문 178쪽 중에서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넌지시 흐릅니다. 독일에서 '녹색당'을 함께 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페트라 켈리님은 정치·환경·평화운동 어느 곳에서나 늘 '사랑'을 힘주어 말했습니다. 모든 운동과 정치와 교육에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머스마'와 '가시내'가 살을 섞거나 짝을 짓는 몸짓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숨결이 '사랑'입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가 어버이를 사랑합니다. 사람이 풀과 나무를 사랑하고, 꽃과 나비가 사람을 사랑하지요.

요즈막에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가 정부 입김에서 불거집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초등학교조차 안 다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불거지건 말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 이웃과 동무는 초등학교에 다녀요. 이웃 아이와 동무한테는 참으로 버거운 짐입니다.

나라(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는 언제나 정책을 세우거나 내놓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언제나 '사랑'은 안 살핍니다. 복지나 문화나 경제 같은 이름은 씌우지만,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사랑'으로 정책을 꾸리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겠다고 밝힐 수 있을까 궁금해요.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오늘날 중·고등학교를 입시지옥으로 만들 수 있을까 궁금해요. 푸름이와 젊은이를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오늘날 대학교를 취업지옥으로 만들 수 있을까 궁금해요.

한자를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영어를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 살기에, 무엇보다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한국말을 제대로 안 배웠으면, 수학이나 과학도 제대로 못 배웁니다. 어떤 말로 배우겠어요? 못 배우지요.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야 영어나 한자도 비로소 제대로 배울 수 있어요.

나라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넣느냐 마느냐 다툼을 일으켜서는 안 되지요. 초등학교 교과서를 '한국말로 슬기롭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가꾸는 일'을 해야지요. 시험공부만 시키는 교과서가 아니라 삶을 사랑스레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책이 되어야 할 교과서입니다.

숲의 노래를 품고, 새로운 꿈을 꾸다

쓰레받기를 안 쓰고 우리가 손으로 집어서 던져도 재미있지
 쓰레받기를 안 쓰고 우리가 손으로 집어서 던져도 재미있지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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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서관 어귀에 옮겨심은 나무
 우리 도서관 어귀에 옮겨심은 나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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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서관 어귀에 나무 한 그루를 옮겨 심었습니다. 우리 마을 어귀에 군청에서 정자를 하나 세워 주면서 예전 자리에 있던 나무를 뽑아서 버렸어요. 제법 큰 나무는 뿌리가 뽑힌 채 열흘 남짓 길바닥에서 굴렀습니다. 나무가 안쓰러워서 이 나무를 수레에 실어 도서관으로 옮긴 뒤 혼자 낑낑거리며 옮겨 심었는데, 달포쯤 지나자 비로소 움이 트고 새잎이 돋습니다. 아이들과 도서관 나들이를 할 적마다 나무한테 인사하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마당 한쪽에서 자라는 별꽃나물을 훑어서 즐겁게 먹습니다. 아이들은 두부에 별꽃나물을 콕 박으면서 "별꽃 나무 심었다!"하고 좋아합니다. 마당 한쪽에 있는 동백나무가 커다란 꽃송이를 툭툭 떨구면, 두 아이가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쓸어서 나무 둘레로 던져 줍니다.

들길을 걷다가 군내버스를 바라본다.
 들길을 걷다가 군내버스를 바라본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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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람이 붙인 '개불알풀'이 아닌 한국에서 시골지기가 붙인 '봄까지꽃'이 흐드러지던 때에 아이들은 코를 '들꽃밭'에 박으며 냄새를 맡습니다. 마당에서 뜯은 부추 잎을 입에 물고 놉니다. 군청에서 '경관사업'으로 심은 유채가 노란 꽃을 가득 피우는 들길을 거닐면서 함께 춤춥니다.

우리를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하늘이 교과서요 책이며 학교입니다. 겨울을 나고 새봄에 씩씩하게 돋는 잎사귀가 교과서요, 나물을 훑는 손길이 책입니다. 꽃내음을 알아차리고, 흙을 두 발로 밟으면서 두 손으로 어루만지는 하루가 온통 학교입니다.

아이들과 '입으로 말할' 적에는 '내 말'이 한자로 어떻게 적는가를 밝힐 일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장 쉬운 말을 가리고, 이 쉬운 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으며, 다시 사랑스레 들려줍니다. 교과서뿐 아니라 신문과 책과 인터넷과 방송 어디에서나 쉽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숲 말'이 넘실거릴 수 있기를 꿈꿉니다. 먼먼 옛날부터 숲에서 손수 삶을 지은 사람들이 기쁘게 지어서 주고받은 '숲 노래'를 가슴에 품으면서 새로운 꿈을 짓습니다.

밥상에 올릴 풀을 뜯자
 밥상에 올릴 풀을 뜯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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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꽃순이 꽃돌이가 된다
 우리 집에서 꽃순이 꽃돌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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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5년 5월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진책도서관,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숲노래, #시골살이, #숲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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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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