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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책 출간 축하드려요."

초등학교 6학년 이지윤 작가의 아들이 보내준 어버이날 동영상이 가슴을 때린다.

8일 저녁 막걸리 집에서 만난 이지윤 작가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어색하다.

가난한 젊은 시절, 그리고 한 부모 가정의 가장이 된 이후에도 힘겨운 직업 전쟁터에서 살아왔던 그녀가 처음으로 책을 출간했다.

이 작가는 서른일곱 나이에 결혼했지만 아들을 낳은 지 2년 만에 헤어졌다. 처음에는 서러움에 마냥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인생 실패자로 생각해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는 당장 어린 아들을 맡길 데가 없어 폐지를 줍거나 전단지 돌리기 등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때로는 운이 좋아 방송모니터를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입은 월 40만원 수준이었다.

<천 번의 이력서>라는 책은 지금까지 다국적기업 비서, 은행원, 대출상담사, 텔레마케터, 영업마케터, 의류회사 머천다이저, 방송 모니터 요원, 바텐더, 경리, 벤처 회사 구매 담당, 무역회사, 해외 영업 담당,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호텔 청소원, 백화점 점원, 봉제공장 직공 등 40번 이상 직장을 옮겨 다니며 살아온 삶을 적나라하게 쓴 글이다.

30년 전 명함 이 작가가 지난세월 거쳐갔던 여러직장 명함들
▲ 30년 전 명함 이 작가가 지난세월 거쳐갔던 여러직장 명함들
ⓒ 임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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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에서 나온 책, <천 번의 이력서>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인생에서 실패하고 좌절하신 분들, 특히 한 부모 가정이라는 주위 따가운 시선 아래 한 여자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로 먹고살아야했던 어려운 과정을 겪은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입니다."

이 작가는 경북 의성 출신의 아버지와 황해도 출신의 어머님 사이에서 5자매 중 차녀로 태어났다.

"서울 중랑천 무허가 판자촌에서 태어나 힘든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돈 많은 부모 밑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원망도 했어요. 학교보다는 도서관에 들어가 많은 책들을 읽고 외로이 지냈습니다."

학비가 없어 공부도 많이 못하고 대학도 서른 살이 훨씬 넘어서야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학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닥치는 대로 치열하게 살았지만 가난보다 더욱 가혹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결혼 실패로 한 부모 가정이 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직장을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력서를 내도 나이와 능력보다 한 부모라는 사실이 문제가 된 곳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지방의 한 곳에 이력서를 내고 2차 면접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홀로 지원한 상태여서 정말로 일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면접관이 가족관계 서류에서 한 부모 가정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봤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성심껏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떨어졌고 너무 슬펐습니다."

지금의 목소리도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40대 후반, 은행 실적계약직을 하면서 '솔솔솔' 목소리 톤을 유지해야 고객들에게 맑고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해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매일 연습했단다.

"한 부모 가정의 엄마들은 애들을 보살피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심리적으로 받는 압박감이 굉장히 큽니다. 사회에서 우리 같은 한 부모 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텔레마케터, 카드 상담사, 대출상담사, 보험상담사 등 실적 중심의 개인사업자로 계약해서 결국 실적이 없으면 무일푼으로 일하는 처지에 내몰리면서 빚도 늘어나 절망하게 됩니다."

한부모가정이라고, 45세 여성이라고...이력서마다 실패

한번은 45살이라는 이유로 외면 받은 게 억울해서 회사 인사과를 직접 찾아가 면접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졸라대서 겨우 면접을 보고 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한 부모 가정이라는 것을 숨기고 직장에 입사했다가 집에 홀로 남겨진 어린 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근무시간 조절 등을 위해 고백한 뒤, 함부로 말하는 직장 동료와 상사들에게 상처받기도 했다.

"텔레마케터나 보험 설계사 같은 직업 중 한 부모 가정이 생각보다 많아요. 일이 힘든 만큼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들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여성이 많습니다."

이 작가 역시 '가면 우울증'을 3년 동안 앓았다. 서비스직이라 일반 고객들에게 상냥하게 대해야해서 겉으로 웃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 것이 바로 가면 우울증이다.

"영업 마케터하면서 고객들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 팝콘 기계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새벽 5시부터 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무리해서 허리수술까지 하게 됐어요. 정규직이면 휴직을 내면 되지만 비정규직 계약직은 영업이 안 되면 바로 직장에서 잘리게 됩니다.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수많은 이력서를 내고 외면 받으면서 그녀도 지쳐갔다.

"아프면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벼랑 끝 절벽으로 내몰리는 기분입니다. 정말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 등으로 한순간 사라지는 직업도 있었습니다. 월급도 못 받고 길바닥으로 내몰린 것이었죠. 결국 매달 유지되는 의료보험비와 공과금과 월세, 학원비 등 6개월 쉬는 동안 천만 원 빚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3천만 원 정도의 빚이 있습니다."

대기업 합격 후 포기...이제 내 인생 살렵니다

아픔을 겪는 동안 이 작가는 방향과 목적 없이 돈을 벌기 위해 허겁지겁 살아온 자세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게 됐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합니다. 내가 시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알아달라고 사회에 말할 수 없습니다. 뭐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소리를 내고 몸을 던져야 쳐다봐주는 것이 사회입니다. 더욱이 한 부모 가정이라는 사실이 인생 실패로 여겨졌던 것도, 우울증과 거짓말로 자신을 속이면서 더욱 병들어 갔던 것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한 내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지난 30년 동안 오로지 먹고살기 위한 밥벌이에 급급했다며 이제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가슴이 기뻐하는 일'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슬프지 않습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감을 찾았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내고 앞으로 살아갈 소명을 찾았습니다. 최근 대기업에도 합격했지만 아이를 위해, 또 한 부모 가정이나 청소년 책읽기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포기했습니다. 후회하는 선택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제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청춘매거진 www.청춘.net 게재 예정



#이지윤#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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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사물에 대한 본질적 시각 및 인간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옳고 그름을 좋고 싫음을 진검승부 펼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살아있다는 증거가, 단 한순간의 아쉬움도 없게 그것이 나만의 존재방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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