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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전 <땅에 연애걸다>... 제목이 딱이다.
"처음 모내기 하는 날, 논에 발을 담갔을 때가 생각났다. 깊숙이 빠지는 느낌에 온몸의 촉수가 다 일어서고 '아! 자연에 조응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처음에는 그랬다. 노동으로 이어지면서 무뎌지고 말았지만 놀라운 촉감이 아닐 수 없다. 땅의 흐름이나 구조, 인체(여체)에 비유해서 성적인 이미지로 이어지는데... 땅에 애정행각? 연애 거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박문종 2014년작. 땅에 연애걸다 개인전 출품작이다. 2미터 넘는 크기로 어머니의 표정과 몸이 당차다. 아이의 생산과 가족을 위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일하는 몸을 땅의 생산력에 비유하며 먹과 황토흙물로 그려 낸 작품이다. 한국미술 뿐 아니라 세계미술에서도 어머니의 모습을 이렇게 당당한 알몸으로 전면에 내세운 그림은 찾아보기 힘들다.
▲ 다산도 박문종 2014년작. 땅에 연애걸다 개인전 출품작이다. 2미터 넘는 크기로 어머니의 표정과 몸이 당차다. 아이의 생산과 가족을 위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일하는 몸을 땅의 생산력에 비유하며 먹과 황토흙물로 그려 낸 작품이다. 한국미술 뿐 아니라 세계미술에서도 어머니의 모습을 이렇게 당당한 알몸으로 전면에 내세운 그림은 찾아보기 힘들다.
ⓒ 박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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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수북(水北)에 그림으로 밭을 일구는 화가 박문종이 있다. 광주광역시 대인시장에서 문화프로젝트를 결합해 생기와 활기를 불어 넣고, 그림 농사 틈틈이 <선술집 풍경>(전라도닷컴)을 펴내  광주에서 남도 술꾼으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담양에 작업장을 짓고, 농사 지으며 그림을 그려온 지 스무 해. 작심하고, 아홉번째 개인전을 펼친다.

작년 겨울 작가가 일하는 작업장을 처음 찾았다. 농산물 창고 같은 그의 작업장에 들어섰을 때 먼저 정돈되지 않은 어지러운 풍광에 놀랐다. 구겨진 세탁물처럼 말려 있고 빨래처럼 널려진 것들을 찬찬이 살펴봤다. 그리고 그것들이 금싸라기 같은 수확물임을 알아차리고 그 풍성한 작업에 또 다시 놀랐다. 보도 듣도 못한 품종과 신선한 품질에다 무농약 유기농 같은 작품들로 감탄이 절로 터졌다. 출하 시기가 왔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담양에 있는 작가의 작업장 내부
▲ 박문종작가작업실 담양에 있는 작가의 작업장 내부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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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을 물으니 "이치로 보면 수확은 적기도 중요하지만, 비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야 하는 것이라 좀 바빠졌다"고 자신감을 비쳤다. 성완경 미술평론가(작가, 인하대 명예교수)도 작품을 보고 평문을 싣기로 했다. 이번에는 "서울서 하는 게 좋겠다"하여 전시장을 잡고 목포에서도 전시하기로 했다. 때 맞춰 한국현대미술선기획기원회는 <박문종> 아트북(헥사곤 펴냄)을 출간했다.

한국현대미술선027 박문종 (한국현대미술선기획위원회편. 헥사곤 발행2015). 박문종 작가의 초기작 부터 최근작에 이르기 까지 120여점의 작품을 <얼굴- 당신과 나사이에, 땅에 연애 걸다, 모내기를합시다, 상추는어떻게심나요, 황토바람>으로 나누어 실었고, 평론가 성완경, 박영택, 전라도닷컴 대기자 한송주, 시인 황지우의 글을 실었다.
▲ 박문종 아트북 한국현대미술선027 박문종 (한국현대미술선기획위원회편. 헥사곤 발행2015). 박문종 작가의 초기작 부터 최근작에 이르기 까지 120여점의 작품을 <얼굴- 당신과 나사이에, 땅에 연애 걸다, 모내기를합시다, 상추는어떻게심나요, 황토바람>으로 나누어 실었고, 평론가 성완경, 박영택, 전라도닷컴 대기자 한송주, 시인 황지우의 글을 실었다.
ⓒ 헥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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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시를 일주일 앞둔 지난 6일 헥사곤 아트북 편집실에서 박문종 작가를 만났다.

- 예술도 연애 걸 듯하는 것 같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김치 담그기나 농사 짓기와 닮았다. 김치 순을 죽이려면 소금이 필요하고, 땅을 일구려면 촉촉해야 하는데 종이도 마찬가지다. 배추에 굵은 소금 간해서 순이 죽으면 2번 박복해서 씻어 받쳐놓고 마늘, 생강, 풋고추 갈 듯, 화면 꾸리기도 땅 부리는 거와 다름없다. 종이도 촉촉해야 다루기 쉽다. 종이판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작업을 위한 소소한 준비물이 많은데 대부분 자연에서 얻는다."

- 전통수묵화와 비교하면 재료나 기법이 새롭고 거칠다.
"한지가 중심이 되나 신문지나 파지, 골판지도 쓴다. 통상적으로 접착제로 쓰이는 아교나 풀, 본드 대신 가급적 큰 종이는 작게, 작은 종이는 크게 나누어 다른 것과 섞고 겹쳤다. 그렇게 하다 보면 빳빳해서 배접 효과도 살리고, 자연스러운 구김효과도 살릴 수 있다."

박문종 개인전 땅에 연애걸다 출품작
▲ 땅 박문종 개인전 땅에 연애걸다 출품작
ⓒ 박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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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는 방식이 농사와 닮았다.
"작업장 마당에 사람 손길로 매만져진 땅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그 위에 종이를 깔고 물을 뿌리면 종이는 금세 숨 죽은 배추처럼 순해진다. 거기에 요구하는 점이나 선을 만들어 간다. 작업실 화판이 주는 느낌과 비할 바 아니어서 보통 밖에 나가 작업한다."

<땅에 연애걸다>박문종 개인전 출품작
▲ 땅- 인물 <땅에 연애걸다>박문종 개인전 출품작
ⓒ 박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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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만 쓴 게 아니다.
"호미 등 농기구뿐만 아니라 뾰족한 대막대나 나뭇가지, 풀 등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쓴다. 호미는 호미 자국을 바탕에 낼 것이고 괭이는 괭이 자국을 남긴다. 마치 동양화의 준법(부벽준, 마아준) 효과를 살릴 수 있어 농사꾼 호미질 하듯 그리기 일쑤다."

- 튀기듯 뭍힌 색감도 풍부한 느낌이 든다.
"풀잎이나 채소, 웬만한 것이면 문지르면 피가 나고 색이 된다. 나뭇가지, 볏짚 등 마른 것도 물에 불리면 색이 고상해진다. 시간이 지나도 흔적은 남는다. 작업을 하다 보면 텃밭 가꾸기 같이 되는데 날씨도 변수다. 비오는 날도 상관없다. 해가 나면 종이는 마를 것이고, 거기에는 수없는 얼룩과 이미지로 가득할 테니까. 기분만 내는 거다. 그러니 흙, 물, 볕, 바람, 먹물, 쑥물만 있으면 그림 밭에서 그림이 찍혀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니다."

전시장으로 옮갸지기전 작업실벽에 기대놓은 <땅에 연애걸다> 연작들
 전시장으로 옮갸지기전 작업실벽에 기대놓은 <땅에 연애걸다> 연작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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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 90년대 먹과 황토를 사용한 예사롭지 않은 필력으로 전통수묵에 현실 반영을 꾀했다. 특히 땅과 어머니로 대표되는 황토바람 연작과 농촌현실을 담아낸 농경도가 인상적이었다.
"땅을 여성성으로 보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야생에 전율하고(오감도), 생산성(다산도)도 표현 영역을 '땅에 연애 걸 듯' 다각화하려고 한다. 최근 세월호 침몰로 죽임 당한 아이들의 넋을 건져 <어른들을 용서 마라> 연작에 담았다."

담양 작업실에서 1차 인터뷰 장면. 작가 뒤로 보이는 작품명은 <흙장난>
▲ 박문종 작가 담양 작업실에서 1차 인터뷰 장면. 작가 뒤로 보이는 작품명은 <흙장난>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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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주의 수단으로 초상화나 제웅을 만들어 놓고 바늘 찌르기를 하기도 한다.
"날카로운 꼬챙이를 이용, 임팩트 있는 흔적이 필요할 때는 무섬증이 들기도 한다. 한밤중 이런 자폐적인 행위는 대상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이것도 극대화된 미술표현 수단이 되지 않을까?

이러한 물음은 살면서 누군가와 교감하는, 희로애락의 수없는 증표 같기도 하다. 이 두서없는 점찍기가 두려우면서도 흥미로운 것은 많은 점 속에서 그 와중에 눈, 코, 입 특정 부위 몇 군데를 정하는 분별력이다. 그러면서 얼굴 특징이 잡히기도 하는데 기억 속의 얼굴이 겹쳐지기도 하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박문종 작품 확대 이미지
▲ 얼굴 박문종 작품 확대 이미지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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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르기 행위 속에는 주술적인 면도 있고, 모내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모내기는 땅에 반복적인 신체접촉을 하는 경작을 위한 행위가 아니면 이해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들판에서 땅 찌르기를 계속해 댔으니 퍼포먼스가 따로 없다. 시골 생활이 한적할 것 같지만 콩밭 메다가 논 물꼬 봐야 하고 찬거리도 챙겨야 하는 시골 아낙처럼 잠시 엉덩짝을 붙이지 못한다. 마르지 않은 물감을 위해 당장 급한 배추벌레를 잡아주러 텃밭으로 쫓아가야 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인데 호흡이 농부의 그것과 닮아간다."

- 오는 13일 6시30분 <땅에 연애걸다> 오픈 퍼포먼스를 한다는데 어떤 것인가?
"세월호에 희생 당한, 못다핀 아이들의 넋을 건지는 '그림굿'을 하려고 준비했다."

지난 4.11. 광주 대인야시장 별장프로젝트에서 행한 박문종 퍼포먼스. 이번 서울 개인전  전시 오픈날에도 <건지기2>를 선보일 예정이다.
▲ 넋건지기 지난 4.11. 광주 대인야시장 별장프로젝트에서 행한 박문종 퍼포먼스. 이번 서울 개인전 전시 오픈날에도 <건지기2>를 선보일 예정이다.
ⓒ 별장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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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문종은 대인시장에서 정기적인 퍼포먼스로 시장 사람들과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지난 4월에도 관객들과 함께 펼쳐보였다. 광주 대인야시장은 매회 1만 명 이상이 찾는 도심 속 명소가 됐다.

7, 8년 전만 해도 시장은 점포 330여 곳 중 100곳 넘게 문을 닫을 정도로 상권이 얼어붙었다. 대인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지난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복덕방 프로젝트' 때부터다. 비어 있던 점포를 5명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작업·전시공간으로 빌려 주면서 상인과 예술가들의 만남이 시작됐다.

박문종 Park, Mun-jong 약력
1957년 전남무안생
연진회 미술원 1기 수료. 호남대학교 미술과졸업. 조선대학교 대학원순수미술학과졸업

개인전 Solo Exhibition
2011  대인시장, 광주 항꾸네
2010  신세계갤러리, 광주
2000  나인갤러리, 광주
1999  가람화랑, 서울
1996  송원갤러리, 광주
1995  금호갤러리, 서울
1993  금호갤러리, 서울/인재미술관, 광주
1988  그림마당 민, 서울/남봉미술관, 광주

단체전 Group Exhibition
2015 80년대 형상미술과 수묵운동,( 전북도립미술관, 전주)외 백여차례 출품.

작업장: 전남 담양군 수북면 송정길 103
논   문: 조선시대의 농경도
저   서: 선술집 풍경(전라도 닷컴)
munjonge@hanmail.net)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전남문화예술재단
이 때 박문종 작가는 대인시장 골목에 홍어가게를 차려놓고 홍어 거시기를 본뜬 조형물 <1코 2애 3날개 4살>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 후 이곳에 작업장을 열고 터줏대감처럼 상권의 활성화를 위해 퍼포먼스를 해왔다. 술 집을 차려 막걸리를 마시며 <당신과 나사이에> 노래를 걸쩍지근하게 불러 영상으로 기록했다. 또 수확한 쌀과 그림을 섞어 팔기도 하고, 땅과 농사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대인시장과 문화예술이 함께 사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대인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오늘날 별장 프로젝트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박문종 작가의 동력이 한 몫을 한 셈이다. 대인시장이 생기와 활기를 찾은 것은 다행이고 뜻깊은 일이다. 이와 함께 <땅에 연애걸다> 개인전을 자축하는 뜻에서 오픈 날 관객들에게 대인시장에 처음 입주하고 만들었던 조형물 <홍어좆>을 선물로 나누는 퍼포먼스도 한단다. 서민과 약자의 대명사쯤으로 여기는 '만만한 게 홍어좆'이라는 말을 비틀어 그것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려는 역설의 선물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땅에연애걸다- 박문종개인전
[서울전]
2015년 5월13일(수)~19일(화)/갤러리 그림손
오픈퍼포먼스: 5.13수 오후 6시30. <넋건지기2>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64-17)02-733-1045

[목포전]
2015년 5월22일(금)~27일(수)/목포문화예술회관 1전시실
오픈퍼포먼스: 5.22수 오후 7시 목포문화예술회관 <참깨 들깨>
목포시 남농로 102(용해동) 특별전시실(061-270-8484)



태그:#박문종, #그림손, #땅에연애걸다,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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