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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드! ○○메카드! ○○메카드! ○○메카드!"

둘째 아들(7)이 '○○메카드'를 외칩니다. 거의 노래를 부르다시피 하네요. 듣다 못한 첫째(9)가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그만해! 자꾸 그러면 엄마가 안 사준다잖아!"

화들짝 놀란 둘째가 얼른 입을 다뭅니다. 그리고는 엄마 눈치를 봅니다. 둘째가 형이 하는 말을 듣고 곁눈질로 엄마를 훔쳐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두 아들과 함께 대전의 동학사 길을 걸었습니다. 말 그대로 산은 푸르고 물은 시원했습니다. 이 아이들의 티없는 마음은 돈으로도 살 수 없을 겁니다.
▲ 말썽꾸러기 첫째(9살)과 둘째(7살) 우리 두 아들과 함께 대전의 동학사 길을 걸었습니다. 말 그대로 산은 푸르고 물은 시원했습니다. 이 아이들의 티없는 마음은 돈으로도 살 수 없을 겁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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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나도 선물 받고 싶다

​오늘(5월 3일)은 대전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입니다. 임신한 지 5개월에 접어든 막냇동생에게 맛있는 것 좀 사주고, 처가에 들러 장인 장모님도 뵙고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 수다도 떨었습니다. 5월은 마음도 몸도 여유롭게 만드는 힘이 있나 봅니다. 대전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내려오는 길에 첫째가 둘째를 다그칩니다. 자꾸 장난감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요.

어린이날이 되려면 이틀 정도 남았건만, 아이들은 벌써 갖고 싶은 선물을 정해놓았습니다. 전통의 강자 '파워레인저'도 '또봇'도 아닙니다. 자기들끼리 '킥보드'와 '닌텐도'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던 겁니다. 부모들 주머니 사정은 생각도 않고 말이죠. 아들 둘에게 저 정도 장난감을 사 주려면 30만 원은 넘게 필요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마트에서 장난감 코너를 도는 중 아이들 눈에 조그만 변신 로봇이 들어왔나 봅니다. 카드와 만나면 로봇으로 변신하는 미니카 '○○메카드'입니다.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아내가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어린이날에 '○○메카드' 사줄까?"

뜬금없는 제안에 아이들은 덥석 엄마의 미끼를 물었습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요괴 워치'와 함께 유행하는 장난감이라 반응도 좋았거든요. 로봇이 여러 개면 부담되지만 한 두 개라면 그리 사줄 수 있을 것 같고요. 아이들은 어린이날 선물이라는 말에 마냥 좋아합니다. '닌텐도'와 '킥보드'는 금세 잊어버렸습니다. 참 단순합니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바로 사준다고 하니 너무 기쁜 마음에 장난감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근데 이게 좀 심했습니다. 대전에서 내려오는 차 안에서 둘이 목청을 높이며 '○○메카드'를 외치는 겁니다. 박자를 맞추고 추임새를 넣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날! ○○메카드!"
"엄마가 사준다네! ○○메카드!"
"네, 거기까지!"

"엉덩이로 방귀 뀌네! ○○메카드!"
"형아가 방귀 뀌네! ○○메카드!"
"네, 거기까지!"

이 아이들, 왜 이러는 걸까요? 노동요의 구성과 닮지 않았나요? 고단한 민초들의 삶을 구성진 가락에 담아냈던 그 노동요 말입니다. 물댄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며 걸쭉하게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르는 것처럼 즉흥적으로 선창과 후렴구를 반복하는 아이들 목소리!

하지만 아무리 귀여운 제 자식이라 해도, 좁은 차 안에서 1분 넘게 소리를 치면 참기 힘든 법입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가 뒷좌석을 노려보며 한 마디 합니다.

"시끄러워! 조용히 안 해? 사줄 테니까 이제 그만하라고. 너네 자꾸 그러면 장난감 안 사준다"
"형아, 엄마 헐크로 변신했다."​

두 아들은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서로를 쳐다보며 씽긋 웃습니다. 하지만 5분을 못 넘깁니다. 둘째가 또 몸을 좌우로 흔들며 '○○메카드'를 외칩니다. 이를 본 첫째는 장난감을 갖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동생을 혼낸 겁니다. 동생 등짝을 한대 내려치며 얼굴을 노려보네요. 잠잠합니다. 그러더니 눈을 껌뻑이다 잠이 듭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 돈이 여왕!

​운전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일단은 생활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나름 계산을 해 보았죠. 둘째 아들 생일이 5월 1일입니다. 어린이날이 5일이니 같이 선물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어버이날은 장모님에게 꼭 필요한 가발을 사드릴 계획입니다. 좋은 계절이니만큼 지인들의 결혼식이 꼬리를 물고 있고, 얼마 전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있고…. 이거 만만치 않습니다.

4월에 찍은 울산 선암 호수공원 사진입니다. 넓은 호수에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일정 거리마다 구경거리가 넘쳐납니다. 울산시민들의 정감있는 휴식처입니다.
▲ 울산 선암 호수공원 4월에 찍은 울산 선암 호수공원 사진입니다. 넓은 호수에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일정 거리마다 구경거리가 넘쳐납니다. 울산시민들의 정감있는 휴식처입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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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라 휴일에 집에만 있기는 그러니 밖으로 나갑니다. 식비나 교통비도 아마 평달보다는 더 나올 겁니다. 몇 달 전부터 계획 있게 저축하고 점심값 아껴가며 모았더라도 넉넉하게 쓸 가정은 많지 않을 거고요. 월급이 많은 집은 많은 대로 적은 집은 적은 대로 아름다운 계절, 5월을 지나가겠죠.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했던가요? 아마 많은 현금을 보유한 사람만이 여왕 같은 5월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천 원짜리, 1만 원짜리 한 장에 지갑 열기를 주저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계절의 여왕이니 뭐니 하는 말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온 누리가 본격적으로 꿈틀대며 그 자태를 드러내는 계절의 여왕 5월에 우리 서민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보다 돈 걱정이 앞섭니다.

직장인들끼리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잔인한 달'은 4월이 아니라 5월이라는 얘깁니다. '잔인한 4월'이란 시구를 읊었던 T. S 엘리엇이 듣는다면 웬일인가 하겠죠? 돈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잔인한 5월에 빗댄 것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그까짓 거 가지고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돈'에게 많은 너무도 많은 능력을 선사하고 말았습니다.

▲돈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이지만 목표이기도 합니다 ▲가진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이상하게도 자석처럼 그냥 돈이 따라옵니다 ▲돈 앞에서 많은 사람이 흔들립니다 ▲내게 건네주는 돈의 금액이 클 때,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됩니다 ​▲돈은 사람을 흥하게도 하지만 망하게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직장인들이 회사를 옮기는 이유는 돈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 생각이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불쌍한 인생의 넋두리라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지나치게 비극적 요소를 자극하고 있다 해도 좋습니다. 제가 보는 현실은 그러니까요.

현대 사회는 2차적인 허상 꿈꾸게 하는 '리콜'일지도

현대 사회에서 돈은 현금 그 이상의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휘황찬란한 주택에서 살며 억대의 자동차를 타고 마음껏 돈을 쓰고 다니는 재벌 주인공들을 보며 잠시나마 복잡한 머리를 씻어 내립니다. 하지만 연예가 뒷이야기에는 재벌 총수 역할을 했던 주인공도 단칸방에 살며 빚더미에 내몰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합니다.

필립 K. 딕의 원작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폴 베호벤이 감독이 영화화했다.
▲ 폴 베호벤 감독의 영호 <토탈 리콜> 필립 K. 딕의 원작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폴 베호벤이 감독이 영화화했다.
ⓒ 우진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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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과 정치인들도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을 서로의 이권을 위해 주고받다가 걸리곤 합니다. 상대적 박탈감은 이미 예전에 지난 일입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사는 것이죠. 어쩌면 영화와 드라마, 연예인들의 세계는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넘어 필요조건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활자로 된 정보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디지털로 무장한 TV와 PC, 스크린, 혹은 스마트 폰으로 접하는 세상은 현실과의 괴리감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실체를 가장한 2차적인 영상매체의 진화는 평범한 이들로 하여금 값싼 요금을 지불하고 대신 꿈꾸게 해주는 영화 <토털 리콜>(원작: 필립 K, 딕)과 다름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미 세상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하였습니다. 부의 대물림은 학업과 직업의 대물림을 가속시키고 있어 이 부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욱더 스크린과 액정화면에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울산 나들목이 보입니다. 인생을 흔히 고속도로에 비유하곤 하죠. 가끔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기도 하고. 과속 운전은 자칫 인생이 고달파질 수도 있습니다. 앞뒤가 꽉 막힌 도로에서는 공황장애를 겪기도 합니다. 출구 없는 세상!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나갈 수 없는 폐쇄 공간. 차를 버리고 떠날 수도 없어 마냥 앞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지극히 수동적인 인생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보며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의 웃음을 돈으로 살 수는 있지만 잠시 뿐이며,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돈으로 내 주위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순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깊을 순 없습니다. 돈은 또 다른 돈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배신과 암투가 난무하는 언론의 보도는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을 돈으로 쌓아간 필연적 결과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생을 배웁니다. 내게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버이로서 본받아야 할 처가의 부모님이 계십니다. 진정성과 신뢰로 만들어간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습니다.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내 보물들입니다.    


태그:#어린이날, #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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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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