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의 포스터

영화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의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1980년대에 대중에게 사랑받은 공포 영화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를 떠올릴 것이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과 <나이트메어>의 프레디는 13편과 9편에 이르는(이 중 한 편은 두 캐릭터가 만나는 내용이다) 속편에서 무수한 난도질을 벌이며 희생자들을 낳았다. 제이슨과 프레디는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통에 다소 정체기를 이루었던 10대 공포 영화는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두 편의 영화로 전기를 맞이한다. 10대 공포 영화의 구태의연한 관습을 비틀며 조롱했던 <스크림>과 교통사고를 낸 4명의 청소년이 몰래 시체를 유기했으나, 1년 후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메모를 받으며 죽음의 공포에 몰리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가 주인공이다. 이들이 일으킨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공포 영화는 살인마의 그늘을 벗어났다.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의 한 장면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여고생 로라 반스가 자신의 창피한 모습이 드러난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일파만파로 퍼지자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하고, 1년이 지난 후에 6명의 친구가 접속한 화상 채팅방에 갑자기 등장하여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경고하는 <언프렌디드: 친구삭제>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설정과 상당히 겹친다. <언프렌디드: 친구삭제>는 요약하면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로 정리되는 설정이라 신선함은 부족하다. 흥미로운 구석은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디지털 버전으로 탈바꿈한 듯한 독특한 형식이다.

<언프렌디드: 친구삭제>는 한 사람의 컴퓨터 화면으로 영화를 구성했다. 화면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스카이프 등 익숙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배경을 장식하는 음악은 주인공이 듣는 음악이고, 영화의 효과음은 컴퓨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친숙한 컴퓨터 효과음과 알림음이다. 82분의 런닝타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컴퓨터 화면이란 형식에서 <오픈 윈도우즈>를 떠올리기에 충분한데, 두 영화는 비슷한 듯 다르다. <오픈 윈도우즈>가 중반 이후에 컴퓨터 화면에서 벗어나 CCTV 등으로 시선을 확장하였다면, <언프렌디드: 친구삭제>는 결코 컴퓨터 화면을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주택을 개조하여 만든 세트에서 배우들이 각자의 방과 컴퓨터를 배정받고, 다른 배우들과 분리된 채로 촬영했다고 한다. 촬영은 보통의 영화처럼 테이크를 나누어 찍는 방식이 아니라 한 번에 82분의 분량을 촬영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알려졌다. 그렇게 다른 타이밍으로 촬영된 6개의 영상은 편집에서 한 화면에서 동시에 플레이 되도록 합쳐졌다. 철저한 통제하에서 이루어진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의 촬영과 편집은 정교함을 자랑한다.

<채트룸> <백설공주 살인사건> <디스커넥트> <소셜포비아> 등의 영화는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허상을 지적하고, 소문이나 편견이 사실인 양 왜곡되는 현상과 악플과 왕따 문제, 진실을 파헤친다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무차별적인 인권 침해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언프렌디드: 친구삭제>는 SNS를 활발히 사용하는 미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주로 사용되는 친구가 끊긴다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인 언프렌디드(Unfriended)를 모티브로 삼아 SNS의 양면성이 어떤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다뤘다. 무심코 올린 영상이 자살을 하게 만드는 영화 속 사건은 현실 세계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네가 한 짓은 여기 영원히 남을 거야"라는 대사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다.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의 한 장면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SNS를 비판하는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에는 <스크림>과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이후 공포 영화의 다양한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친구들에게 돌아온 로라 반스의 모습엔 <링>과 <주온>으로 대표되는 '저주'와 '유령'이란 일본 공포물의 영향이 깊이 배어있다. 게임을 제안하여 비밀을 하나씩 폭로하고 처단하는 과정은 <쏘우>가 보여준 '게임의 법칙'이다. 이렇듯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엔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유행한 공포 영화의 성분이 다양하게 녹아있다.

<언프렌디드: 친구삭제>는 컴퓨터 화면이란 형식에 공포 영화의 경향을 충실하게 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무서움을 추출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이것은 1인칭 시점의 핸드헬드 화면으로 구성된 페이크 다큐멘터리 <블레어 윗치>와 CCTV 화면을 이용하여 미지의 영역을 탐구한 <파라노말 액티비티>이 보여주었던 형식과 내용의 조화로움과 비견할 만하다.

1990년대 후반 <스크림>과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가 공포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면, 2010년대에 생기를 돌게 한 장본인은 <팔로우>와 <언프렌디드: 친구삭제>다. 고전 공포 영화의 분위기를 충실히 계승하는 <팔로우>와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문법을 선보인 <언프렌디드: 친구삭제>엔 진정 '혁신'이란 단어가 어울린다. 가장 익숙한 것에서 뜻밖의 새로움을 찾은 <팔로우>와 <언프렌디드: 친구삭제>를 통하여 공포 영화는 한 걸음 또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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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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