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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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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추모 행렬로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어린 학생들부터 청년과 중장년층까지 애도의 시간을 위해 동참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일대는 참사의 슬픔을 나누려는 분위기와 함께 기묘한 풍경도 연출됐다.

경찰버스가 수십 대 동원되어 광화문 광장부터 종로까지 늘어선 것이었다. 사람이 지나갈 공간조차 없을 정도로 정렬된 차량들은 탁 트인 광장을 순식간에 '섬'으로 만들었다. 경찰버스가 만든 '벽'은 세월호 유가족을 다른 시민들로부터 고립 시켰다.

'시행령 폐기'를 외치면서 농성을 벌이던 유족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에 모인 시민 3만여 명이 광화문으로 행진을 시작했고, SNS에는 "광화문으로 와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차벽 너머에 갇힌 유가족이 경찰버스 위에 올라갔다가 진압되는 광경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도 공유됐다.

18일 오후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며 저지하고 있다.
 18일 오후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며 저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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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경찰 병력과 만난 시민 행렬

길목을 미리 지키고 있던 경찰 병력은 시민 행렬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물대포가 등장했고, 최루액을 뿌려대기도 했다. 인도를 차단하고 도로 위로 우회하려는 시민을 향해 경고 방송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모순이었다. 2011년에 위헌으로 판결난 차벽 봉쇄를 버젓이 되풀이하는 경찰이 '불법집회'를 언급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로이터 통신> 소속 특파원 제임스 피어슨은 "1만 3천명의 경찰과 470대 경찰버스가 서울 중심에 동원됐다"고 상황을 보도하고, 100여 명이 연행된 상황도 덧붙였다. 또한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지금 세금이 낭비되는 걸 문제 삼는 거라면, 전경들이 집회 참가자 수보다 두 배나 넘게 투입된 건 마찬가지로 세금 낭비 아닌가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경찰버스 파손 사진과 함께 '세금 낭비'를 거론한, 경찰을 자칭하는 남성의 계정의 글에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로이터 통신> 특파원 제임스 피어슨 기자의 트위터 계정 글. 경찰버스 문제로 촉발된 세금 낭비 논쟁에 의견을 밝혔다.
 <로이터 통신> 특파원 제임스 피어슨 기자의 트위터 계정 글. 경찰버스 문제로 촉발된 세금 낭비 논쟁에 의견을 밝혔다.
ⓒ 제임스 피어슨 트윗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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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시민의 대치상황은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약 4시간의 격렬한 공방전 끝에 시민들이 '근혜산성'을 넘어 유가족과 만나면서 상황은 겨우 일단락되는 듯했다. 캡사이신과 물대포를 끊임없이 쏟아낸 경찰의 물량공세에도 물러서지 않은 집회 참가자들이 가까스로 '승리'한 분위기였다.

이 국면에서 지적된 경찰의 문제점은 너무 많아서 모두 거론하기도 힘들다. 최후의 수단으로 쓰여야 할 차벽이 오전부터 통행을 막은 것, 유가족을 그 안에 가두듯이 몰아넣고 진압한 상황은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의 지적을 받았다. 시민을 향해 직접 쏘지 말아야 한다던 규정을 어긴 살수차 관리, 또 물이 모두 소진되자 화재시에만 써야할 야외소화전을 무단 이용한 것도 문제로 거론됐다. 사전에 서면으로 요청을 해야하는 절차를 무시했다고 SNS를 통해 누리꾼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통제와 무시로 일관한 정부, 결국 '근혜산성' 쌓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어느새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마련 중 어느 것 하나라도 확실하게 이뤄진 것이 있을까? 시스템의 미흡과 규제 완화로 일어난 재난 이후에도 문제는 여전히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부를 비롯한 여당 정치인들은 유가족의 배·보상금 문제를 먼저 거론했고, 이에 누리꾼 일부는 지나친 특혜 아니냐며 유가족을 비난했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을 시작한 가운데,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겹겹이 설치했다.
▲ 겹겹이 설치된 '근혜산성'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을 시작한 가운데,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겹겹이 설치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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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으로 배제의 대상이 된 세월호 유족들은 사고 1주년에 물리적으로도 격리당했다. 통제와 무시로 일관한 정부가 결국 '근혜산성'을 쌓았고, 경찰버스가 만든 '벽'은 광화문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사건의 시발점이 됐다. 유족을 연행하려는 경찰에 맞서 시민들이 행진하자 이를 막으려는 차단이 곧 '차벽'으로 나타났고, 이런 모습이 시민들이 더욱 반발하게 된 계기였기 때문이다.

안산으로 초대한 유족을 만나지 않고, 텅 빈 팽목항을 방문한 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남미로 출국했다. 그 사이에 공권력은 시민과 유족을 분리하려고 애를 쓰는 듯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의 병력까지도 집결한 것처럼 평소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경찰이 동원됐다. 1주년을 맞아 집회를 예상하고 미리 진압을 준비한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지난 18일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공권력은 시위 진압에 매우 유능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노력의 일부라도 구조 등 사고대처 매뉴얼 확보에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차벽 형성을 위해 주차된 경찰버스의 견고함을 보고 어느 누리꾼은 "이렇게 정확하고 신속한 모습을 사고 당일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탄식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는 일보다, 재난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 '안전사회 건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 아니겠는가.

한국, 다시 선장을 잃고 '가만히 있으라'만 되풀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선장과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하고 먼저 배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수십 시간 선박 안에 방치된 승객들은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9명은 여전히 차가운 바다에서 실종된 상태다. 무기력한 공권력과 부족한 대처를 보인 정부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가 일반적인 '사고'와 다른 이유였다.

그리고 2015년, 1년이 지나서 또다시 광화문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우려한 나머지 유가족을 배제하려고 한 태도가 문제로 보인다. 차라리 원하는 만큼 사람들이 슬퍼하도록, 애도를 위해 광장을 활짝 열어두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더불어 추모의 분위기마저 '불순한' 것으로 몰아가는 잘못된 인식이 아니었더라면, 경찰의 과잉진압이 가능했던 배경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한국은 대통령이 해외로 떠난 지도자 부재 상태다. 그동안 직무를 대행할 국무총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자금을 수수한 정황이 <경향신문> 보도로 드러나면서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 그리고 참사 1주년을 두고 굳이 대통령이 자리를 비워두고 남미로 떠나야만 했는지 당위성도 의문으로 남는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이 광화문으로 가려다 경찰 바리케이드에 막혀 있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이 광화문으로 가려다 경찰 바리케이드에 막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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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 사회는 1년이 지나서도 선장을 잃고 방황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희생자를 잊지 않겠다며 추모의 뜻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공권력으로부터 '가만히 있으라'는 무언의 압박을 견뎌내고 있다. 정부는 사태가 과열되기 전, 유족들이 만나달라고 요청한 지난해에 안정을 위한 기회가 있었지만 진압과 무시로 일관했다. 그 대가를 지금 거센 비판 여론과 추락하는 지지율로 치르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로 가슴 아픈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남을 일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화두로 언급되며 끝나지 않은 과제가 된 것은, 대통령이 나서서 책임을 통감하고 처벌과 정비를 위한 정책 마련에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애시당초 한 해가 지나도록 유가족이 거리에 머물도록, 뜻을 함께 하려는 시민들이 광장에서 물대포를 맞도록 할 사안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침통한 시간은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소통을 거부한 정부가 문제를 제대로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태그:#세월호 참사,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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