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소를 방목하는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무어랜드(Moorland)근처는 우유를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다.
 소를 방목하는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무어랜드(Moorland)근처는 우유를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다.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호주에서는 부활절이 공휴일이다. 따라서 마지막 여름을 바다에서 보내려는 휴양객으로 우리 동네는 붐빈다. 휴일 첫날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호주에서는 부활절만 되면 비가 오는 것 같다. 이웃에 사는 사람도 부활절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겪었던 십자가의 아픔과 부활의 기쁨을 하늘에서는 비를 내리는 것으로 기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 오는 날 집구석에서 지내는 것이 궁상맞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을 밖에서 해결할 생각으로 길을 떠난다. 목적지는 언젠가 이웃이 가볼 만하다고 가르쳐준 무어랜드(Moorland)라는 작은 동네에 있는 카페다. 지난번에 이곳을 지난 적은 있지만, 카페에 들리지는 못했다.

가는 길에 휘발유를 넣으려고 제법 큰 도시인 타리(Taree)에 들어선다. 타리 입구에 들어서자 자동차가 줄지어 서 있다. 시골의 작은 도시가 이렇게 차로 붐비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다. 도로 근처의 모텔도 방이 없다는 사인이 붙어 있다. 거리도 평소와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타리에서 휴일을 보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휴일 동안 타리 한복판을 흐르는 매닝강(Manning River)에서 보트 경기가 열리고 시내에서는 경마가 열린다고 한다. 이러한 행사도 사람 불러 들이는 것에 한몫 했을 것이다. 평소보다 긴 줄을 서서 휘발유를 넣고 무어랜드를 향해 떠난다.

고속도로를 타고 20여 분 정도 운전해 무어랜드에 도착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비교적 깨끗하게 지은 집이 줄지어 있다. 아주 작은 우체국이 있고, 아주 작은 학교도 있다. 교문에는 1882년에 세운 학교라는 팻말이 자랑스럽게 새겨 있다. 그리고 호주 시골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작은 교회도 있다. 호주 전형적인 작은 시골 동네다.

우체국 앞에 우리가 찾는 카페가 있다. 제법 손님으로 붐빈다. 단출하면서도 시선을 끄는 정원과 수십 개의 화분에 피어 있는 꽃이 비를 맞으며 생기를 더하고 있다. 듬성듬성 떨어져 정원에서 비를 맞고 있는 우직한 테이블 또한 운치를 돋운다. 날씨가 좋다면 우직한 테이블에 앉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카페에서는 동네에서 재배한 농산물과 특산품도 팔고 있다. 식사를 주문받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다. 친구가 소개해 이곳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 좋아한다. 부엌에서 일하는 부인까지 불러 우리를 소개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주문한다.

옆 테이블에는 동네 사람이 생일잔치를 하느라 조금 어수선하다. 나머지 테이블에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식사하고 있다.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여유 있는 삶의 모습을 본다.

점심을 끝내고 크로키(Croki)라는 동네에 들려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캐러밴 파크다. 캐러밴 파크에는 연휴를 택해 찾아온 외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강변으로는 몇 채의 집이 줄지어 있다. 빌려주는 집에는 휴가를 온 인도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매닝 강에서는 강태공 몇 명이 낚시하고 있다.

소화도 할 겸해서 가랑비 내리는 강변길을 우산에 의지해 걷는다. 운치 있는 길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굴 농장이 있으나 휴일이라 문은 닫혀 있다. 대나무가 쭈뼛쭈뼛 자란 비 오는 강변길을 되돌아간다. 시간을 마음껏 낭비(?)하는 사치를 부리며 천천히 걷는다.

저녁때까지 시간이 있기에 올드바(Old Bar)라는 제법 큰 동네에 들린다. 이곳에는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오지에서 원주민과 지낼 때 같이 일하던 사람이 살고 있어 낯익은 동네다. 동네 한복판은 연휴를 맞아 사람들로 북적인다. 바닷가에 있는 리조트에는 만원이라는 사인이 매달려 있다. 바닷가 캐러밴 파크도 사람으로 북적일 것이다.

한적한 동네 길로 들어선다. '월라비 포인트(Wallabi Point)'라는 이름을 가진 내가 좋아하는 바닷가 동네다. 해변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서 차를 세운다. 가랑비에 몸을 맡기고 바닷바람을 흠뻑 마신다. 바다에는 몇몇 사람이 비를 맞으며 서핑을 즐기고 있다.

동네를 천천히 운전하며 돌아본다. 어느 집 앞에 꿀을 1kg, 2kg짜리 용기에 넣어 팔고 있다. 사람은 없고 돈을 넣는 나무로 만든 통만 덩그러니 있는 호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 없는 가게다. 꿀을 들고 나오며 통에 돈을 넣는다. 꿀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가랑비 내리는 바닷가 분위기 때문에 샀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꿀 한 통 차에 싣고 목적 없이 지낸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도착했다.

조금은 느끼했던 점심이었기에 저녁은 얼큰한 한국 반찬으로 대신한다. 저녁을 먹고 컴퓨터에 앉는다. 유튜브에서 우리 가락을 듣다 보니 창이 나온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헐 거나'

성대를 상하게 하고 아물면 또다시 상하게 해서 만들어 냈다는 소리가 마음을 휘젓는다. 김수연씨의 한이 담긴 흥 타령을 반복해서 듣는다. 한의 정서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함석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고난', '씨올', 등의 단어가 더 가깝게 다가온다.

가랑비 내리는 호젓한 호주 시골에서 한이 깃든 창을 들으며 고국 생각에 잠시 잠긴다.

작은 시골 동네에 있는 작은 시골 학교. 역사가 깊은 학교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작은 시골 동네에 있는 작은 시골 학교. 역사가 깊은 학교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태그:#호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