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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명산은 그 자연 속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산자락에는 사찰이나 마을이 들어서고 이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삶의 이야기는 문화와 역사가 된다.

남도의 명산 월출산(전남 영암군)에는 동 서 남 세 방면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고 그 주변에는 여러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모두 자연과 함께 좋은 터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뛰어난 경관을 배경으로 백운동 원림이 있다.
▲ 월출산 아래 월하마을 뛰어난 경관을 배경으로 백운동 원림이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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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미가 넘치는 월출산에서도 가장 부드럽고 푸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남쪽 산 아래이다. 월출산의 남쪽은 대부분 강진군과 접하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무위사가 자리하고 있고 지금은 월남사지 3층 석탑만 남아있지만 월남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월출산의 월자도 달 월(月)을 쓰지만 산 아래에는 월남마을을 비롯하여 월하리 등 월자마을이어서 이색적이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숲속 비밀의 정원

이곳 월출산 아래 월하리 안운마을에는 '시크릿 가든'이 있다. 이곳은 흰 구름이 머문다는 '백운동(白雲洞)'이다. 월출산 줄기에서 이어진 숲이 백운동 계곡을 이루고 하나의 원림을 형성하고 있다.

소로를 따라가다 보면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있다.
▲ 백운동 입구 동백숲 소로를 따라가다 보면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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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계곡이 짙은 숲으로 덮혀 있어 사람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한적한 안운 마을을 지나 백운동 계곡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작은 동산이 눈앞에 있다. 입구에서 동백꽃 뚝뚝 떨어져 있는 작은 소로를 지나다 보면 밀림 같은 숲이다.

계곡은 월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계류를 이루고 지나며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단풍나무, 비자나무, 팽나무 등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어 낮에도 어둑하다.

이곳이 백운동임을 알리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 백운동 암각 비문 이곳이 백운동임을 알리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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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같은 계곡 입구를 막 지나다 보면 '백운동'이라 씌여 있는 바위가 나타난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이정표다. 작은 계곡을 지나면 긴 담을 이루고 있는 집이 나타난다. 순간 숲속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의외, 또는 경이로움이 든다. 세상을 등지고 산속에 꼭꼭 숨어 사는 '은자의 집'과도 같다.

백운동 원림에 들어서면 길을 잃고 헤매다 깊은 산속에서 발견했다는 중국의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이 생각난다. 무릉도원은 일종의 파라다이스다. '은일자연'을 꿈꾸는 이에게는 아마 백원동 원림도 무릉도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계곡을 끼고 숲속에 조영되어 있는 원림이 잠시 시간이 멈추어선듯 하다.
▲ 백운동 원림 계곡 계곡을 끼고 숲속에 조영되어 있는 원림이 잠시 시간이 멈추어선듯 하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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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원림은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李聃老, 1627~1701)가 조영한 별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광해군 때의 인물인 김응정(金應鼎 1527~1620)의 '해암문집'에도 이곳 백운동이 소개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백운동 원림의 입산조인 이담로가 들어오기 전에도 여러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곳으로 보인다.

이곳은 본래 원주이씨 이후백(李後白 1520~1578) 집안의 사패지(賜牌地)였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는 이담로가 백마 1필을 주고 사서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말년에 둘째 손자 이언길(李彦吉, 1684~1767)을 데리고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백운동 원림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담로는 은둔적인 생활을 즐긴 탓인지 그의 호를 '백운동은(白雲洞隱)'이라 했다.

계곡을 가로질러 대문쪽으로 들어서는 곳에 돌계단이 놓여있다.
▲ 대문 입구 돌계단 계곡을 가로질러 대문쪽으로 들어서는 곳에 돌계단이 놓여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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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후손들이 계속 지켜온 곳으로 지금까지 12대에 걸쳐 살고 있다. 최근까지도 이 집안의 후손인 이효천옹이 살았다고 하나 현재는 주인 없는 빈 집이다.

시절은 동백꽃이 길 위에 뚝뚝 떨어져 있고, 화사한 꽃망울 뒤로 이제 갓 피어난 어린 새싹들이 연초록으로 빛나고 있다. 백운동은 누군가 말한 것처럼 시간이 멈추어선 듯하다. 이곳은 숲 속에 감추어져 있어 세상에 쉽게 노출되어 있지 않다. 최근 이곳을 소개한 책을 낸 정민 교수는 이곳을 '비밀의 정원'이라 불렀다.

자연의 숲속에 사람의 거주 공간이 조화로움을 이루고 들어서 있다.
▲ 백운동 원림 숲 자연의 숲속에 사람의 거주 공간이 조화로움을 이루고 들어서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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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래적 특질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도록 자연을 조영할 줄 알았다. 그래서 산수자연이 뛰어난 곳에 별서를 짓고 자연을 조영하며 살았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원림'이라 한다.

정다산이 찾은 백운동

수, 석, 송, 죽, 월 자연의 벗 다섯 가지를 읊으며 산중신곡을 썼던 고산 윤선도는 금쇄동을 꿈속에서 얻은 기쁨을 '초득금쇄동'이란 시로 노래했다. 이곳을 발견한 이담로도 아마 고산이 금쇄동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백운동 정원'은 조선시대 우리나라 전통 원림의 백미를 보여준다. 그래서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와 함께 호남지역의 3대 원림 중에 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백운동 원림은 신명규, 남구만, 임영, 김창흡과 같은 명사들이 찾아와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원림 속에서 시를 읊고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다산과 해남 대흥사에 기거하고 있던 초의선사도 있었다.

다산은 1812년 9월 12일 제자들과 월출산 등정을 했다가 내려와 이곳 백운동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이곳의 자연에 반해 백운동 12경시 연작을 지었으며, 초의에게 <백운동도>와 <다산도>를 그리게 하였다. 다산은 직접 쓴 시를 합첩한 <백운첩(白雲帖)>을 남기기도 했다.

백운동 원림의 주인이자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의 묘가 백운동 정선대 아래에 있다.
▲ 이시헌의 묘 백운동 원림의 주인이자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의 묘가 백운동 정선대 아래에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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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제자 황상(黃裳)과 이 집의 주인이기도 한 이시헌(李時憲, 1803~1860)은 다산의 시에 화운해서 12경 연작시를 짓기도 했다. <초의년집>에는 다산 정약용이 대흥사의 초의선사, 그리고 강진 유배시에 많은 도움을 준 귤동의 윤동과 함께 백운동 계곡에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이 다산과 매우 인연이 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 초의선사나 소치 허련과 같은 시인문객들이 찾아와 시문과 그림을 남긴 것을 보면 백운동 별서원림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교유의 장이자 호남문화의 산실이었다.

백운동 원림은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최근 논문과 정민 교수의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이 출판되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호남의 3대 원림

백운동 별서정원은 경사진 지면을 이용해 건물과 정원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화단에는 목련이나, 매화, 모란이나 영산홍, 국화와 같은 나무와 화초가 잘 가꾸어져 있다.

계곡의 물을 마당으로 끌어와 백운동 원림의 독특함이 나타나는 유상곡수다
▲ 마당을 가로지르는 유상곡수 계곡의 물을 마당으로 끌어와 백운동 원림의 독특함이 나타나는 유상곡수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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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정원의 화룡점정과 같은 곳이 유상곡수다. 집 옆으로 흐르는 계류(계곡물)를 집 마당으로 끌어들여 물길이 마당을 돌게 조성한 것이다. 물을 마당 안으로 끌어 들여 배수로를 따라 마당 가운데 연지를 채운 다음 다시 계곡으로 흘러가게 했다. 수량이 적어 계곡까지 다시 흘러나가지 않고 있으나 기발한 조영방법이 독특하다.

유상곡수는 궁궐과 같은 정원에 조성되는데  일반 민간 정원에 유상곡수가 조성되어 있는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고산 윤선도가 해남 금쇄동이나 완도 보길도 세연정에 조성해 놓은 것도 계류를 이용해 정자를 짓고 원림을 조성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집 마당으로 계류를 끌어들여 만든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연지안의 석가산은 다산초당 연지의 석가산을 연상시킨다.
▲ 유상곡수 연지의 석가산 연지안의 석가산은 다산초당 연지의 석가산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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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한가운데에는 수석으로 이루어진 석가산이 놓여 있다. 이 석가산을 보면 다산 초당 옆에 조성된 연못이 떠오른다. 다산초당에는 방형의 연못에 강진 바닷가에서 주워왔다는 석가산이 놓여 있다. 다산과 인연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정원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백운동 정원의 공간 구성

백운동 원림은 경사진 지형에 크게 3단으로 구성돼 주거공간들이 들어서 있다. 맨 위쪽에 안채가 들어서 있다. 안채는 한국전쟁 때 지어진 우진각형 지붕의 집이다. 백운동도에는 기와집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집과는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안채에는 '백운유거(白雲幽居)'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최근에 복원된 건물이다.
▲ 사랑채 역할을 한 취미선방 최근에 복원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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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바로 아래에는 최근 복원된 '취미선방(翠微禪房)'이라 불리는 초가의 사랑채가 있다. 그리고 맨 아래 마당에는 정자형의 초당이 복원되어 있다.

정선대에 앉아

백운동 정원의 풍취를 제대로 느끼려면 담으로 둘러 처진 내원의 작은 중문을 나와 정선대(停仙臺) 정자에 앉아서 봐야 한다.

얕으막한 언덕에 있어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정자다.
▲ 정선대 정자 얕으막한 언덕에 있어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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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밖에는 마치 흙으로 쌓아 올린 것 같은 낮은 언덕의 동산이 있는데 이 언덕 위에 초당이 있다. 초당에서는 별서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다산이 말한 12경 중 하나인 월출산 옥판봉이 원경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 담으로 둘러처진 집 경계의 밖에는 벚나무, 단풍나무, 대나무 등 갖가지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담장 안의 잘 정리된 주거공간과 담장 밖의 자연이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어 한폭의 수채화같다.

여린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원림은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 백운동 원림 안과 밖 여린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원림은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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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앉아 있으면 누구나 시문 한 수나 한 폭의 동양화가 그려질 것 같은 심성이  나올 듯하다. 바삐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자연을 벗하며 은둔의 삶을 살았던 조선 사대부들의 삶이 새삼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잠깐 동안이지만 백운동 원림속에서는 힐링이 느껴진다. 


태그:#백운동, #원림, #취미선방, #월출산, #유상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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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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