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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범계중학교는 지난 3월 18일 학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인권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단계별 학생 프로그램"을 알리는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은 상벌점제 폐지 이전 이 학교에서 실시하던 '지도점제'와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 범계중 가정통신문 안양 범계중학교는 지난 3월 18일 학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인권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단계별 학생 프로그램"을 알리는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은 상벌점제 폐지 이전 이 학교에서 실시하던 '지도점제'와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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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일자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전격 폐지한 상벌점제가 경기도 내 상당수의 학교들에서 이름만 바꾸어 여전히 시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벌점제는 이재정 교육감이 취임사에서도 "반드시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파장이 커질 듯하다.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이재정 교육감이 3월~4월에 걸쳐 일일교사로 수업을 하러 다닌 5개의 중·고교 중 3곳도 변형된 유사 벌점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 교육감은 이들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고 직접 챙겨간 '셀카봉'으로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 등을 찍었다. 학생들로부터 캐리커처 선물도 받았다.

그러나 이 교육감은 물론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들조차 이들 학교가 벌점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지난 3월 14일 이 교육감이 방문한 평택고도 전교생이 고정형 명찰을 달고 있었지만 이 교육감은 그것이 경기학생인권조례 위반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학생중심-현장중심을 외치며 학생들을 만나고 학교 현장 방문을 이어온 이재정 교육감의 행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상벌점제 폐지를 밝힌 이후 도내 각 학교들은 겉으로는 폐지한 듯했으나 상당수 학교가 실제로는 '회복적 학생생활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 변형된 벌점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안양 범계중학교는 지난 3월 18일 "인권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단계별 학생 프로그램"을 알리는, 학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이에 따르면 생활 교육 대상 위반 영역을 5단계 18개 영역으로 나누고 단속 누계 횟수에 따라 학생들을 지도하거나 선도위원회와 자치법정 회부 등으로 처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상벌점제 폐지 이전 이 학교에서 실시하던 '지도점제'와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름만 바꾸었을 뿐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범계중은 이를 3월 19일 실시한 학부모총회 자료집에도 수록하여 학부모들에게 한 번 더 통보했다.

또 이 학교는 기존의 선도부 이름을 바꾸어 '바른생활실천부(아래 바른생활부)' 운영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바른생활부 소속 학생은 일반 학생들을 지도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런 활동을 하는 대가로 이들에게는 연간 20시간 이내의 봉사활동 시간 인정, 각종 수상 대상자로 추천, 교내외 행사에 참여 기회 우선권 부여, 친목 도모 및 사기 진작을 위한 회식 기회 제공 등의 혜택을 주고 있었다.

선도부가 이름만 바꾸었을 뿐 활동내용은 그대로인 것이다. 이 같은 바른생활부 운영은 학생이 학생을 지도-감시하도록 하는 비교육적 행위라 하여 경기도교육청이 금지한 것이다.

범계중 "벌점제 없애면 학교는 무엇으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냐?"

범계중 조아무개 교장은 지난 8일 해당 프로그램이 벌점제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벌점제는 아니다, 그러나 벌점제라는 지적이 맞을 수도 있다"라면서 "이를 없애면 방법이 없다, 그러면 학교는 무엇으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느냐"라고 사실상의 벌점제 시행을 인정했다.

이어 가정통신문 발송과 학부모총회 자료집 등에 대해 묻자 "아직 해당 프로그램을 시행은 하지 않고 있다, 안내만 한 것이다"라며 한 발 물러섰다. 또 바른생활부 운영에 대해서는 "캠페인 활동을 봉사활동 시간으로 인정하는 건 맞다, 바람직하지 못하다"라고 밝혔다.

의정부의 천보중학교에서도 “건강한 성장-인권친화적 회복적 단계별 학생 생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기초단계-심화단계-선도단계의 3단계로 나누어 벌점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 천보중 규정 일부 의정부의 천보중학교에서도 “건강한 성장-인권친화적 회복적 단계별 학생 생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기초단계-심화단계-선도단계의 3단계로 나누어 벌점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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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의 천보중학교에서도 '건강한 성장·인권친화적 회복적 단계별 학생 생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기초단계-심화단계-선도단계의 3단계로 나누어 벌점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 학교 윤아무개 교장은 지난 8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상벌점제와 같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처리방법과 내용이 다르다, 예전의 벌점제는 벌점이 많으면 바로 지도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단계가 있다"라고 차이를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의 3단계 규정 역시 이전 벌점제 규정과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분명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더욱이 이 학교는 '학교생활인권규정'의 제정과 개정 권한을 학교장 단독으로 가능하도록 한 규정을 두고 있어 인권침해 소지가 더욱 큰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교육청 지침에는 '학교생활인권규정'의 제정과 개정은 교사-학생-학부모 등으로 구성한 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서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천보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장의 결재로 개정할 수 있다"고 명시해 사실상 학교장 단독으로 구성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규정을 개정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에 대해 윤 교장은 "(학교 규정이) 상위 법규를 위반한 것이다. 살펴보지 못했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고양시의 백신중학교 역시 천보중과 거의 동일한 형태의, 3단계 유사 벌점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벌점제라는 이름 대신 '회복적 학생생활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명칭을 붙여놓은 것도 다른 학교들의 사례와 유사했다. 이 학교 유아무개 교장과 지난 8일 통화를 시도했으나, 유 교장은 "학교에 와서 이야기하라"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성남의 송림고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 학교 역시 "단계별 선도 프로그램 운영 규정"을 두고 선행카드와 생활지도 카드를 발급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규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4단계로 나누어 생활지도 카드 발급 횟수에 따른 지도를 하고 있었다. 이 학교도 범계중과 같이 바른생활부를 운영하고 있기도 했다.

안아무개 교장은 지난 8일 "작년까지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올해는 정확히 모르겠다"는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보완책을 만들고 있다, 학생회와 다음주 논의를 해 보겠다"며 사실상 벌점제 시행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송림고는 또 전교생이 고정식 명찰을 착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역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위반한 것이다. 인권조례에서는 학생들에게 고정식 명찰 착용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국가인권위 권고 사항이기도 하다. 안 교장은 "이웃의 다른 학교도 다 그렇게 하고 있어서 그랬다"며 인권조례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고교들이 기숙사생을 대상으로 벌점제도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지도?단속하고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이같은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 기숙사 벌점제 민원 글 고교들이 기숙사생을 대상으로 벌점제도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지도?단속하고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이같은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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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교 단위로 이루어지는 벌점제뿐만 아니라 기숙사를 운영하는 고교들이 기숙사생을 대상으로 벌점제도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지도·단속하고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이같은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담임별, 학년별 등으로 운영하는 벌점제 역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이 역시 실태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학생중심'을 외치면서도 정작 학생 인권 문제에는 소홀한 이재정 교육감의 부적절한 처신 탓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경기도교육청, 인권 업무 담당하던 '학교인권지원과'도 폐지

경기도 내 학생 인권 관련 단체들은 상벌점제 폐지 이후 적절한 후속 조치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물론, 인권 업무를 담당하던 '학교인권지원과'를 올 3월 1일자로 전격 폐지하고 장학사 1명만을 남겨 다른 부서로 이동한 점, 학교 현장에서 그나마 정착하던 인권 관련 내용들이 무너지고 있는 점 등을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인권교육센터 '온다'의 상임활동가 난다씨는 "학생을 위한 교육이 잘 이루어지려면 학생 인권 보장은 필수다,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한 지 5년째가 돼 가는데도 인권 업무를 확대하고 활성화하기는커녕 담당 부서를 없앴다"라며 "이런 일련의 모습은 교육감이 학생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도 없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벌점제 문제 역시 그러한 연장선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라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  민주교육 담당 서아무개 장학사는 이러한 논란들에 대해 지난 10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학교인권과 폐과)이후 북부청사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업무를 정리하는 중이었다"라며 "유사 벌점제는 물론 상점제도 안 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며, 문제가 있는 학교는 집중적으로 지도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서 장학사는 오는 9월이면 다시 근무지를 옮길 예정이다. 이 때문에 벌점제는 물론 학생 인권 전반에 대한 경기도교육청 차원의 정상적인 업무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거나 때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학생중심'을 화두로 삼은 이재정 교육감이 어떤 구체적 해답을 보여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이재정 교육감이 3월~4월에 걸쳐 일일교사로 수업을 하러 다닌 중-고교도 3곳이나 변형된 유사 벌점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교육감은 이들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고 직접 챙겨간 ‘셀카봉’으로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 등을 찍었다.
▲ 교육감의 셀카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이재정 교육감이 3월~4월에 걸쳐 일일교사로 수업을 하러 다닌 중-고교도 3곳이나 변형된 유사 벌점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교육감은 이들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고 직접 챙겨간 ‘셀카봉’으로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 등을 찍었다.
ⓒ 경기도교육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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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이재정, #경기도교육청, #상벌점제, #벌점제,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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