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난쟁이들> 포스터 어른이 뮤지컬 <난쟁이들>의 포스터 중 한 버전이다. 자세히 보면, 맨 위의 두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수상 실적이 아니라 그냥 언어유희이다.

▲ 뮤지컬 <난쟁이들> 포스터 어른이 뮤지컬 <난쟁이들>의 포스터 중 한 버전이다. 자세히 보면, 맨 위의 두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수상 실적이 아니라 그냥 언어유희이다. ⓒ PMC프로덕션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극을 만든 스태프, 저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그리고 저 난장판을 보고 배꼽을 잡는 관객까지 모두 반쯤 미친 것 같다.

언뜻 보면 각종 수상 내역을 내건 <액트 오브 킬링>이나 <위플래쉬> 포스터처럼 '페이크'를 쳤지만 실상은 각종 말장난 도배였다. 누가 봐도 tvN을 패러디 한 <tvNan 난장픽션나노…> 시리즈 영상을 보고는 '현웃(현실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혀에 버터를 잔뜩 바른 채 '붸지퉤리언 핏자(채식주의자용 피자)'를 요구하는 여배우나, 가발을 쓰고 시크한 표정으로 골반을 튕기는 남배우나 어이가 없었다. 설정된 상황 속에서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뻔뻔함에 기가 찼다.

공식 트위터 계정은 쉴 새 없이 '드립'을 날리며 온갖 이벤트를 뱉어놓는다. <프랑켄슈타인>의 재연을 기다리던 팬들의 덕심(오타쿠의 마음)을 울린 만우절 '용자 이벤트'는 각종 이벤트 중에서도 절정이었다.

잔뜩 기대를 품은 채 공연을 보러 갔다. 기대치가 높았음에도, 완전히 무장해제 됐다. 인터미션도 없이 진행되는 공연시간 동안, '피식'부터 '깔깔'까지 평소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웃음소리를 뱉어내게 된다. 별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이 작품은 단체로 '약을 빤' 작품이다. 공연이 막을 내리면, 경찰과 검찰은 뮤지컬 <난쟁이들> 관계자 전원을 '마약류 관리에 의한 법률' 위반 혐의 조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진지하게 궁서체로 제안한다.

적나라한 현실 묘사, 속물적 욕망의 난립

뮤지컬 '난쟁이들', 공주들의 만남  4일 오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난쟁이들> 프레스콜에서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신데렐라가 등장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이 공연되고 있다. <난쟁이들>은 제3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앙코르'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의 동화내용을 비틀어 담은 어른이 뮤지컬이다. 2월 27일부터 4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

지난 3월 4일 오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난쟁이들> 프레스콜에서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신데렐라가 등장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이 공연되고 있다. ⓒ 이정민


뮤지컬 <난쟁이들>은 시작하자마자 관객의 얼굴에 대고 '지적질'을 하더니, 잠시 후에는 머리를 쓰다듬고 공주라고 추켜세운다. 관객의 마음을 가지고 '밀당'을 하는 배우들의 조련에 런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지녀야 한다. 메시지는 간결하지만, 상황 설명이 부족하다. 다소 불친절하다. 한참을 웃은 후 객석을 빠져나올 때, "어? 그때 왜 그런 일이 발생한 거지?" 하고 갸웃하게 되는 장면들이 몇 개 있다.

반면 웃음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한다. 각종 패러디가 등장하고, 상황별로 번뜩이는 배우들의 애드리브는 불꽃같다. '낮져밤이(낮에는 져주고 밤에는 이긴다)'에 성행위 체위 얘기까지 나오는 등 수위도 상당하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발랄한 유머 코드는, 뮤지컬 마니아에게 먹히는 개그 위주의 <스팸어랏>의 코드보다 훨씬 대중적이고 효과도 크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어른이(어른+어린이의 합성어)' 뮤지컬을 표방한 15금 작품이다. 작품의 큰 틀은 동화 비틀기이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모두 '주인공'은 아니다. 진짜 주인공은 <백설공주> 이야기의 주변부 인물, 난쟁이이다.

사실 동화의 재해석과 현대적 각색은, 그 자체가 이미 진부할 정도로 식상한 접근 방법이다. 왕자와 공주의 입장이 아니라 난쟁이의 입장에서 동화를 다시 풀어내는 건 이미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에서 써먹은 수법이다. 수동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진 공주의 이미지에 반기를 들고, 여성주의에 충실한 새 공주 콘셉트는 <겨울왕국>에서 가장 화려하게 활용됐다.

그러나 <난쟁이들>은 그 식상함을 훌륭하게 돌파한다. 새로운 메시지를 창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그 전달 방법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우선 적나라한 현실 묘사가 압권이다. <난쟁이들>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억지로 미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세계의 민낯을 폭로한다.

난쟁이 '찰리'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라고,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있는 집 애들"이나 꿈꾸는 거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은 어느 순간 식어버리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일상을 사는 것조차 힘겨워진다. 아버지는 "절대 가장이 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난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는 안 되는 게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신화를 <난쟁이들>은 부정한다.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마녀의 마음을 사고, 마법을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보석' 즉, 돈이다. "돈을 쓰면 안 되는 게 없다". 이웃나라 왕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선언한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예쁜 공주를 만나 인생 펴고 싶겠지만, 공주를 만나는 건 평민이 아니라 왕자에 국한된 얘기이다.

뮤지컬 <난쟁이들> 속 인물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깨닫는다. 동화 같은 이야기는 동화 속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세속적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쥘 수 있는 것만 믿을 수 있다. 난쟁이 '찰리'가 공주를 만나고 싶은 이유도 결국 세속적 성공이다.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한탕주의'적 발상이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양면, 그 평범한 솔직함

뮤지컬 '난쟁이들', 최강 귀요미들 4일 오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난쟁이들>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공연되고 있다.

<난쟁이들>은 제3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앙코르'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의 동화내용을 비틀어 담은 어른이 뮤지컬이다. 2월 27일부터 4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

지난 3월 4일 오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난쟁이들>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공연되고 있다. ⓒ 이정민


그런데 찰리는 이러한 속물적 근성과 전혀 대비되는 다른 성격도 가지고 있다. 희망에 대한 믿음, 모험과 도전을 시도하는 진취성, 노력을 통해 나의 인생을 바꾸려는 의지이다. 난쟁이들은 광산 마을에서 행복하게 산다. 마녀도 없고, 괴롭히는 사람도 없다. 한 달 내내 열심히 일을 해서 보석을 캐면, 하얀 빵을 모을 수 있다. 하얀 빵을 모으면 행복하다.

이 단순한 패턴에 만족하는 난쟁이들은, 찰리의 꿈을 비웃는다. 난쟁이 따위가 어떻게 공주와 맺어질 수 있느냐고 말이다. 심지어 마지막 남은 일곱 난쟁이 중 하나인 '빅'도 찰리의 계획을 만류한다. 찰리는 외친다. "할아버지처럼 늙을까봐 무섭다"고,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희망밖에 없다.

"알아, 내가 지금 여길 떠난다면 엄청난 고난이 밀려오겠지만
희망도 꿈도 없이 나이만 먹기는 싫어, 멋진 걸 원한다면 해보는 거야!
모두가 알아도 아무나 할 수는 없지. 남과 다른 걸 원한다면 용기를 내야 해."

자칭 호그와트 제1회 졸업생이라는 마법사는 새 동화의 주인공을 선발하기 위해, 성에서 무도회를 열기로 한다. 무도회의 마지막 날, 사랑하는 왕자와 공주가 마법의 종이 울릴 때 키스에 성공하면 이들을 위한 새로운 동화가 탄생한다.

찰리는 두 번 다시는 없을 이번 기회를 잡기 위해 광산의 보석을 훔쳐 길을 떠난다. 잠시 머뭇거렸던 빅도, 백설공주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표하기 위해 동참한다. 바깥세상에는 비록, 미래가 불확실해 보험이 넘쳐나고, 연말정산처럼 끔찍한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마녀의 마법으로 난쟁이에서 9등신 꽃미남이 된 찰리와 빅, 이들은 무도회가 끝나는 날 각자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 심지어 '1+1'로 마법을 사용했기에 거리가 멀어지면 마법은 무효화된다. 이런 난관 속에서, 각자의 욕망을 품고 무도회장에 도착한 인물들은 사실 그렇게 특별한 이들이 아니다.

이웃나라 왕자들, '뜨그덕 뜨그덕' 거만하게 말을 타고 등장하더니, 평민이 어떻게 공주를 만나려고 하냐며 비웃는다. 수준 맞는 사람끼리 '끼리끼리'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며, 감옥에 갇힌 찰리와 빅을 조롱한다. 그런데 이 왕자들, 빅의 지고지순한 사랑 얘기를 듣더니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다. 그리고 감옥에서 난쟁이들을 탈출시켜 소원을 이루도록 돕는다.

백설공주는 본래 성욕에 충실한 인물이다.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한 마법의 '부가효과'로 성기마저 '빅(Big)'해진 빅을 다시 만났을 때, 백설공주가 빅에게 빠진 건 육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백설공주와 빅의 사이가 육체적 관계뿐이었다면, 빅의 마법이 풀린 이후 백설공주가 빅을 만나줄 이유가 없다.

백설공주는 마법이 풀린 빅에게 묻는다. 자신을 처음 봤을 때, "나랑 자고 싶었어?". 백설공주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빅은 더듬거리며 풀어놓으며 즉답을 피한다. 계속된 물음에 빅은 답한다. "아니, 지켜주고 싶었어". 그리고 빅은 죽기 전에 백설공주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러브레터를 고이 꺼낸다. 백설공주는 그저 실망에 지친, 더 이상 남자에게 실망하기 싫어 기대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뿐이다. 주변의 기대와 시선에 자신을 맞추어 살기 급급했다.

물거품이 된 이후, 공주의 지위를 잃고 평범한 인간이 된 인어공주. 타인을 위해 충실하게 자신을 희생했으나 상처만 얻었던 그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한 번 더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찰리는 인어공주 덕분에 그토록 원했던 공주와의 키스가 눈앞에 왔지만, 결국 포기하고 인어에게 돌아간다.

모두가 가슴 한 구석에, 훈훈한 온기 하나쯤 품고 있는 평범한 이들이었다.

끼리끼리 만나자, '꼴리는' 대로

 지난 3월 4일 오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난쟁이들>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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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난다. 그러나 이 '끼리끼리'는 사회·경제적 수준의 끼리끼리가 아니다. 현실에 치이고 닳아서 상처만 남은 마음을 숨기고, 강한 척 애써 완고한 척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속에는 여전히, 동화 같은 환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진정성과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다. 속물적 욕망과 내일에 대한 희망 모두를 가진 평범한 사람.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고, 그런 사람 '끼리끼리' 만나게 된다.

빅은 다시 늙은 난쟁이가 됐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겠다는 소원을 이뤘다. 백설공주와 함께 완성된 동화는, <백설공주와 건강한 난쟁이>라는 동화책이 된다. 찰리는 공주를 만나겠다는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다시 난쟁이로 돌아왔다. 하지만 찰리의 소원은 해피엔딩을 위한 수단이었지 결과는 아니었다. 수단을 결과로 착각한 이의 삶은 신데렐라처럼 공허할 뿐이다.

찰리는 그토록 바라던 행복을 손에 얻었다. 갈등했던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상님들의 조언이었다. 찰리의 아버지부터 증조할아버지까지 "너, 걔 좋아하냐?", "그거 좋아하는 거 맞는데?"라고 찰리의 마음을 재확인해줬다. 찰리의 고조할아버지는 딱 한마디 한다.

"너 꼴리는 대로 해."

오포세대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어, 자신의 욕망에조차 충실하지 못한 우리들은 "꼴리는 대로 할" 용기가 부족해 이렇게 살고 있다. 동화가 필요 없는 세상이라면, 그냥 동화를 없애면 된다. 하지만 마법사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 동화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동화를 믿지 않지만, 현실은 동화와 다르지만, 여전히 동화를 갈구하고 있다. 그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여전히 마음 속 순정을 품고 있는 어른이들에게는, 어른이들만의 동화가 필요했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이들을 위한 완벽한 동화다.

뮤지컬 난쟁이들 PMC프로덕션 충무아트홀 창작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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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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