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의 한 장면

지난 23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의 한 장면 ⓒ SBS


지난 23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의 게스트는 500인의 관객이었다. 관객이 게스트라니 조금 의아했다. 공동 MC인 이경규와 성유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김제동이 홀로 무대를 지켰다.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던 토크 콘서트 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기존의 <힐링캠프>에 의구심이 들었다. 성공한 사람 혹은 유명한 사람이 하는 말은 거기서 거기였고, 마음속 깊게 파고드는 말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근 <힐링캠프>가 표방하는 힐링이 허울뿐인 위안, 대책 없는 희망을 전달하는 무(無)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힐링 없는 <힐링캠프>를 거부했다.

그런데 이날은 아예 달랐다. 그간 방송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힐링이 곳곳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힐링이 본색을 드러낸 순간, 비로소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이 <힐링캠프>라고.

그 중심에는 김제동이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등장한 순간부터 기타를 치며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부를 때까지 김제동은 작위적이지 않은 힐링을 몸소 보여주었다. 마이크는 그의 말을 전하는 날개가 되어 500명의 관객에게, 브라운관을 넘어 시청자에게 다가갔다. 그의 힐링 화법은 참 각별했다.

불편하지 않은 농담, 그리고 간혹 허를 찌르는 말들

게스트가 아닌 공동 MC로서 말의 대부분 지분을 단독 게스트에게 내주어야 했던 그가 이번에는 눈치 볼 것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그는 산을 정말로 사랑하고, 술을 정말로 좋아하는 자신 같은 사람이 잘생기고 예쁜 CF 모델을 대신해 등산복, 소주 광고를 찍어야 한다고 말하고,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가택 침입한 유재석이 과연 좋은 사람인지 물었다. 재미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에 한풀이하듯 김제동은 이날 방송에서 익살스러운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재미뿐만 있을쏘냐? 그의 말에는 으레 뼈가 있다. 그래서 그의 말에 가끔 멈출 때가 있다. 대통령이 꿈이라던 아이에게 정치적 역량에 대한 질문 두 개를 건넸다. 하나는 거짓말을 잘하는지를 물었고, 또 과거의 잘못을 잘 잊는 편인가 물었다. 물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시청자는 아마 단박에 감지했을 것이다. 그의 풍자는 세태를 낱낱이 드러내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다. 답답한 세상에 대한 힐링의 목소리라고나 할까? 그의 화법은 여전히, 아니 나이가 들메 더욱 거침없다.

말하는 것만큼 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무대엔 김제동만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500인의 관객이었다. 그들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고민과 속내를 차분히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관객이 말할 때, 김제동은 줄곧 무릎을 꿇어 낮은 자세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더욱 좋다고 한 말처럼, 그는 정말 듣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그는 구태여 그들의 이야기에 훈수를 놓거나 충고를 하지 않고 묵묵히 귀담아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위로를 건넸다.

"말할 기회를 잃은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는 것,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크와 카메라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들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무게를 짊어지고 자기 삶을 걸어가고 있고, 자기 삶을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제동은 500인의 관객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시청자를 호출했다. 그는 그들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끔 농담으로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했다. 이윽고 관객의 목소리는 빛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목소리를 되찾은 인어공주와도 같았다. 김제동의 힐링은 아주 거창하진 않았지만 특별하고 값졌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방송이었지만, 어쩌면 우리가 바랐던 힐링이 아닐까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제형 시민기자가 속한 팀블로그 별밤(byulnigh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힐링캠프 김제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