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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죽도에서 만난 사람들. 우측에서 첫번째가 손죽도 이대원 장군 보존회장 그리고 4번째가 동상제막을 기부해 준비중인 이민식씨의 모습이다.
 손죽도에서 만난 사람들. 우측에서 첫번째가 손죽도 이대원 장군 보존회장 그리고 4번째가 동상제막을 기부해 준비중인 이민식씨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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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죽도기행 두 번째 이야기다. 손죽도(3.015㎢)는 여의도 면적의 1.04배의 작은 섬이다. 현재 가구수 106호에 184명이 살고 있다.

이곳은 원래 고흥반도에 가까워 고흥군에 속했다. 이후 1914년 3월 1일 일제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수로 편입되었다. 이때 손대도에서 손죽도(巽竹島)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가뭄이 들어도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섬. 물이 좋아 인물이 맑다. 섬의 역사를 살펴보면 약 400여 년 전 제주에서 고(高), 부(夫), 심(深) 3성씨가 최초로 입도해 마을이 형성됐다. 이후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하자 육지로 피신해 한때 공도로 있다가 전주 이씨, 경주 이씨, 밀약 박씨, 김해 김씨가 입도해 살면서 지금의 손죽도가 이어졌다.

22살, 장군의 한서린 '손죽도해전'

22살 나이 손죽도해전에서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후 2차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이대원 장군 묘지의 모습
 22살 나이 손죽도해전에서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후 2차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이대원 장군 묘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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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사극 <징비록>이 뜨면서 손죽도가 조명을 받고 있다. 바로 이대원 장군 때문이다. 왜구는 임진왜란 5년 전 조선정벌을 위한 전초기지로 손죽도를 침략했다. 이대원 장군은 1차 손죽도해전에서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2차 해전에서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전장에서 장렬히 목숨을 거뒀다. 그는 나라와 어버이에게 은혜를 갚지 못한 원한을 품고 지금도 손죽도에 묻혀 있다.

이순신 장군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마을 이름까지 지은 전래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손죽도는 우국충절의 고장답게 매년 음력 3월 3일 '녹도만호 이대원 장군 제향 행사'가 펼쳐진다. 이때 평택이씨 종친회와 마을 주민 그리고 향우회원까지 참여해 우국충절의 넋을 기린다. 올해는 5월초 '손죽인의 날'을 맞아 마을 입구 선착장에 이대원 장군의 대형 동상이 제막되는 뜻깊은 행사를 앞두고 있다.

손죽도 정상을 하산한 후 한국 요가의 산증인을 찾았다. 국내에 요가가 보급되기까지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손죽도에 살고 있었다. 바로 김광백(74)씨다. 그는 사단법인 대한요가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는데 지금도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날 그의 손길은 분주했다. 충렬사 이대원 사당앞 효자비 주변에 동백을 심고 있었다. 귀촌의 삶을 고향을 위해 봉사중인 그는 교회화단 가꾸기와 여객선 뱃머리 가는 길 등 섬을 가꾸고 있다. '가고 싶은 섬' 사업을 추진 중이란다. 손죽도 내에서 그의 역할이 커보였다. 특히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연중 손죽도를 찾고 있는데 그 인원이 수백 명이 넘는단다. 마치 요가인들에겐 국내요가의 성지순례지격인 셈이다.

고향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는 "손죽도에 요가의 대가가 있다는 소릴 듣는다"면서 "손죽도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요가를 통해 자연적인 자기 스스로의 치유센터를 운영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무엇보다 섬 출신들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면서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의로운 마음이고 의로운 마음은 내가 받은 만큼 내 삶의 분야를 되돌려 주는 게 조화다, 더 많은 마을 출신들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요가 산증인... 대장암 걸려 귀촌

손죽도에서 요가를 통해 고향사랑을 실천중인 김광백씨의 모습. 그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의로운 마음이고, 의로운 마음은 내가 받은 만큼 내 삶의 분야를 되돌려 주는게 조화라고 강조했다.
 손죽도에서 요가를 통해 고향사랑을 실천중인 김광백씨의 모습. 그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의로운 마음이고, 의로운 마음은 내가 받은 만큼 내 삶의 분야를 되돌려 주는게 조화라고 강조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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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8일 손죽도 여행 중 이곳 출신인 김광백씨와 나눈 인터뷰다.

- 언제 요가에 입문하게 됐나.
"대학시절 건강이 나빠 요가에 입문했다. 그때가 1968년도다. 당시 인도 전도사를 영사관에서 초청해 한국에 오면서 인연을 맺었다. 요가를 통해 건강이 좋아졌다. 이후 대한요가협회 초대회장을 지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요가인생을 살아왔다." 

- 고향은 언제 왔나.
"9년 됐다."

- 요가협회 요직을 맡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대한요가협회회장을 맡고 있다. 전국에 100여 개의 지사가 있다. 중요 회의나 연수모임 때 나가서 돌봐주고 있다. 나이가 들었으니 직책을 넘기려 해도 그대로 자리를 지켜주라고 제자들이 떠밀어 회장권한대행을 지명해 협회를 운영 중이다."

- 요가란 무엇인가.
"자연과 우리 삶의 다양한 방식의 조건들에 대한 전체적인 조화다. 이를 인도말로 '요가'라고 부른다. 요가의 뜻은 균형적인 조화다. 요가동작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명상을 통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직업적으로 특정한 활동을 반복하면 몸에 행동의 치우침이 생긴다. 누구나 습관으로 한쪽으로 치우치는 습관이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은 요가의 기본이다. 먹는 식습관도 육식을 많이 먹으면 체질의 균형이 깨진다. 특히 가슴을 활용해 늑골을 들었다 놓는 흉식호흡법과 횡격막을 상하로 활동하는 복식호흡법이 있다. 이 두 개가 균형을 잡아야 하나 복식이 약화돼 흉식으로 치우쳐 버리는 것을 요가 속에서 발견했다. 이들을 조화시키면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다."

김광백 "손죽도 요가 힐링센터 만들 것"

김광백씨가 손죽도를 찾은 이들에게 준비중인 요가힐링센터의 모습
 김광백씨가 손죽도를 찾은 이들에게 준비중인 요가힐링센터의 모습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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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으로 오계된 계기가 뭔가.
"내가 지금껏 강의를 너무 많이 했다. 공무원 연수원에서 수십 년 초빙강사를 했다. 강의시절 소대변을 많이 참았다. 그것이 40~50년 되다 보니 대장암을 일으켰다. 요가를 통해 여러 가지 생각과 행동을 조화 시켰지만 소대변은 그냥 참았다 누어 버리면 되는 줄 알았다. 대장암 수술 후 자연섭생 생활을 통해 자신을 힐링하며 삶의 모든 스타일을 바꾸었다. 그래서 지금은 암이 완치됐다."

- 요가를 통해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손죽도에 요가의 대가가 있다는 소릴 듣는다.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손죽도를 찾는 이들에게 요가학교를 통해 힐링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1단계 준비를 하고 있다. 방 한 칸 정도의 한옥 수리가 끝났다. 제 뜻을 아는 사람에게 자연적인 자기 스스로의 치유센터를 운영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섬 출신들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의로운 마음이고, 의로운 마음은 내가 받은 만큼 내 삶의 분야를 되돌려 주는 조화다. 더 많은 마을 출신들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다시 도외지로 복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고향에서 할 수 있는 뜻있는 일이 많다.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과 향우들이 고향을 돕는 일을 조언하고 싶다. 특히 고향 후배가 이대원 장군 석상을 세우려고 발로 뛰고 있다. 또 마을이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도록 10억 이상을 들여 해태양식을 통해 마을이 공동 발전해 갈수 있는 사업을 준비 중이어서 크게 기뻐하고 있다. 고향을 사랑하는 것이 좀 더 확대하면 애국이고 의로움이다."

- 마을 주민들에게 요가도 지도하나.
"마을 노인들에게 6개월 이상 지도하고 있다. 이후 노인들이 일어나면 운동과 호흡을 한다. 봄부터는 한옥에서 요가를 시작하려고 수리가 끝났다."

- 요가 하러 손죽도에 많이 오나.
"전국 요가협회에서 여수 손죽도로 수백 명씩 왔다 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손죽도여행, #김광백, #징비록, #이대원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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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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