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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무상급식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지난 2010년 이후 수십 개의 관련기사를 송고했다. '부자도시 울산이지만 무상급식 예산은 0원인 점', '무상급식 예산은 0원이지만 수십 억원의 예산을 들여 장미를 심는 점' 등 주로 울산시가 무상급식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들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또한 기자는 지난해 지방선거 후 그나마 울산시에서 일부 시행하던 무상급식도 축소될 움직임에 "타 도시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기사를 쓰기도 했다. (관련기사 : 울산 동구 무상급식 축소, 타 도시도 남 일 아니다)

결론적으로, 지난해까지 초·중·고 학생 가운데 무상급식을 지원받는 비율이 전국 평균비율(69.1%)보다 낮았던 경남(51.1%)에서는 도지사가 무상급식을 전면 중단함으로써, 경남 지역 약 22만 명의 학생이 급식비를 부담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홍준표 지사는 온·오프라인 상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왜 무상급식 중단을 강행하는 것일까? 그 배경을 울산의 사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박맹우 전 시장, 홍준표 지사에 본보기 됐나

2014년 11월 1일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김무성 대표최고위원 주재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맹우 전 울산시장이 시장 시절 무상급식 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의 무상급식이 모범사례로 치켜세워졌다
 2014년 11월 1일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김무성 대표최고위원 주재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맹우 전 울산시장이 시장 시절 무상급식 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의 무상급식이 모범사례로 치켜세워졌다
ⓒ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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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을 처음 제기한 것은 지난 2007년~2008년 당시 진보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이었다. 이후 무상급식이 본격적으로 공론화 된 것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때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후보가 선거 공약으로 무상급식을 제기하면서다.

앞서 진보정당이 제기한 무상급식이 소위 '좌파 정책'으로 분류됐다면, 2010년 무상급식 화두는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의 하나로 굳혀졌고, 김상곤 교육감 당선 이후 전국 시도는 앞다퉈 무상급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국 최고 부자도시로 불리던 울산에서는 예외였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줄기찬 요구에도 당시 박맹우 울산시장은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박맹우 전 시장은 그해 11월 10일 당시 한나라당 중앙당 회의에 참석해 "무상급식 요구 때문에 예산편성도 어렵고 실제 필요한 일도 하지 못한다"며 "(친환경무상급식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정말 포퓰리즘의 극치가 아닌가 할 정도로 공짜 바이러스가 횡행하고 있다"고 했다.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박 전 시장은 이후 한동안 저소득층 대상 일부 급식비만 예산으로 편성하고 실질적인 무상급식 예산은 0원으로 책정한 반면, 도심 곳곳에 수십 억원의 장미와 수십 억원의 넝쿨을 심도록 하는 이중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강한 반발에도 이처럼 박 시장이 무상급식 예산 0원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3선을 지내는 동안 60% 중반대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야권 후보에 압도적 표차로 이긴 것에 대한 자심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결국 이 같은 '포퓰리즘'에 대한 이중적 행보를 제지하지 못한 것은 울산시민들의 표심이었다. 3선 제한에 걸려 시장 선거에 더 나올 수 없게 된 박 전 시장은 자신이 약속한 임기 완수조차 어기면서 3개월 조기사퇴하면서 지난해 울산 남구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3선 시장에서 국회의원으로 갈아탄 그는 자신이 시장 시절 행했던 '무상급식 0원'을 또다시 자랑 삼아 내세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1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그는 "만약 전국을 울산 수준으로 급식한다면 1조2400억 원 정도 예산이 절감된다"며 "앞으로 전면적인 복지예산이 늘어난다면 계속 무상급식예산이 편성돼서는 안 되며, 현 상태에서 동결되고 점차 평균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다 더해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타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박 전 시장의 이 같은 자신감을 두고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무상급식과 관련해서 이렇게 모범적으로 시정을 잘 운영한 박맹우 의원께 찬사의 말씀드린다"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공천=당선' 등식이 성립해온 울산 지역에서는 선거 때마다 새누리당 공천을 두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따라서 이 같은 새누리당 지도부의 신임은 공천에 절대 불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무상급식에 반대해 온 보수층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한 듯하다. 홍준표 지사에게는 자극이 될만한 소재였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 호소한 홍준표 지사지만...

울산시가 2010년 울산대공원에서 SK에너지(주)와 공동으로 개최한 110만 송이 장미축제 모습. 당시 울산시는 다음해 예산 편성에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친환경무상급식 예산은 배제한 채 장미식재 예산은 편성해 논란이 일었다. 무상급식 예산은 0원, 장미 예산은 향후 3년 28억이었다
 울산시가 2010년 울산대공원에서 SK에너지(주)와 공동으로 개최한 110만 송이 장미축제 모습. 당시 울산시는 다음해 예산 편성에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친환경무상급식 예산은 배제한 채 장미식재 예산은 편성해 논란이 일었다. 무상급식 예산은 0원, 장미 예산은 향후 3년 28억이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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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이 울산의 박맹우 전 시장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예측은 새누리당 지도부의 행보에서 찾을 수 있다. 12일 새누리당 현장최고위원회 회의를 열기 위해 울산에 온 김무성 대표가 "무상급식 광풍이 불 때 박맹우 당시 울산시장이 유일하게 무상급식을 제대로 안 따라갔다"며 "울산을 벤치마킹한 홍준표 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발표했다. 그런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 증표다.

이처럼 울산을 본보기로 한 홍준표 지사는 정말 서민들이 원하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홍 지사는 지난 2007년 대선 때 당시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2007년 7월 27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울산 합동연설회에서 "아버지가 1974년 울산 현대조선소(현재 현대중공업)에서 임시직 경비일을 하며 어렵게 살았다"며 "정직한 아버지를 이어받아 검사가 된 후 나쁜 놈들을 다 잡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준표 지사는 8년이 지난 현재 무상급식을 전격 중단하면서 경남지역 학생 22만 명에게 새로 급식비 부담을 지우게 했다.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을 호소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울산시민들은 무상급식을 원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동안 무상급식 반대에 대한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은 거셌다. 하지만 보수성향이 주류를 이루는 울산에서는 이 반발이 소위 좌파들의 치기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상급식 예산을 요구하는 행동을 보인 사람들의 면면이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 많은 학부모들이 무상급식을 원했을지라도,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행동에는 항상 정해진 사람들만 나서면서 전체 시민의 여론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노동계가 무상급식 문제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양대 거대노조로 불리는 현대자동차노조와 현대중공업노조의 영향력은 무시하기 힘들다. 하지만 두 노조는 무상급식 문제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면 무상급식으로 실질적인 가계비 혜택을 볼 수 있는 시민들은 그동안 정말 무상급식에 무신경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무상급식 요구를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일까.

입학을 선택할 수 있는 비슷한 환경의 두 초등학교를 두고 전체 18명의 입학생 중 17명이 무상급식이 시행되는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그 답을 말해주는 것 같다. (관련기사 : 입학생 쏠린 울산지역 초교, 무상급식 때문이었다)


태그:#무상급식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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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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