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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동조합 사무실을 상상해 보자. 집행부들은 곧 있을 임단협을 앞두고 회의 탁자에 둘러 앉아 적정 수준의 임금인상률과 사내하청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 등을 토론 중이다. 사업장 별로 쟁점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늘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정당한 대우'로 모아진다.

우리 사회를 진전시키기 위한 노동의 역할도 주요 논의거리. 회의가 길어질수록 커피를 마신 종이컵도 늘어간다. 안타깝지만 탁자 위 종이컵이 쌓여갈수록 지구 반대편 노동자들이 받는 불공평한 대우도 늘어간다는 사실은 미처 신경 쓰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믹스커피의 원료는 대부분 베트남에서 들여온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전 세계 커피수출 2위 국가다. 인스턴트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선 10년간 전체 커피수입량의 38%로 2위인 브라질(14.8%)의 두 배가 넘는다.

공정무역 커피를 생산하는 베트남 농부들의 모습
 공정무역 커피를 생산하는 베트남 농부들의 모습
ⓒ Fairtrade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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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커피가 유명해진 만큼 생산자들의 삶도 나아졌을까? 원하청 관계에서 빈번히 이뤄지는 '단가 후려치기'와 다단계마냥 1차, 2차 밴드로 내려가는 중간 생산과정은 비단 자동차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커피산업 역시 마찬가지.

뉴욕과 런던 선물시장에서 메이저기업들끼리 가격을 책정하고 중간상인들의 착취를 통해 원두가 모아진다. 공급망 맨 아래에 위치한 생산자와 노동자들이 가장 큰 착취대상자임은 당연하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 전체 빈곤비율 평균이 28.9%인데 반해 주요 커피생산지인 중앙고원지역 빈곤율이 51.8%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더욱이 프랑스 식민지배기 커피가 심어졌고,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해당산업이 발전해 왔다는 역사적 배경은 매일같이 마시는 믹스커피가 경제적 이슈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과도 복합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70%는 서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생산되며, 코트디부아르에서만 약 30만명의 아동들이 노예노동에 착취당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70%는 서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생산되며, 코트디부아르에서만 약 30만명의 아동들이 노예노동에 착취당한다.
ⓒ Make Chocolate 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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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노조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이런 상황은 주변에 흔하다. 엄마들은 동네 유명 커피프랜차이즈에 모여 육아와 교육문제에 열변을 토하지만, 정작 에티오피아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못한 채 노예노동에 착취당한다. 밸런타인데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전한 초콜릿도 실체는 전혀 사랑스럽지 못하다.   

작년 10월 한국에서 열린 WFTO아시아-서울컨퍼런스에서 생산자들은 최저임금을 넘어 실질적인 생활임금을 공정무역에 도입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작년 10월 한국에서 열린 WFTO아시아-서울컨퍼런스에서 생산자들은 최저임금을 넘어 실질적인 생활임금을 공정무역에 도입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아름다운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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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등장한 '공정무역(Fair Trade)'은 이처럼 자본과 힘 있는 나라에 맞춰진 무역불균형에 대안적 모색으로 시작됐다. 그래서 소비자보다 생산자와 노동자에, 잘사는 나라보다 제3세계 빈곤한 나라에 더 중심을 둔다. 소농들의 최소한 생계를 보장하는 최저가격(minimum Price) 원칙은 30여 년 전 노동자들이 싸움으로 쟁취한 최저임금과 맥을 같이한다. 현재 노동계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최저임금 현실화는 공정무역업계 내 생활임금 도입 논의와 닮았다.

우리 앞에 놓인 커피 한 잔은 생각보다 공정하지 않다. 수많은 비정규직 '장그래'들이 탕비실 한켠에서 본인과 비슷한 대우 속에 생산된 커피를 타며 눈물짓는 모순된 현실. 당장 우리의 커피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공정무역, #노동,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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