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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나무>는 172쪽으로 그리 두툼한 책이 아니다. 그러나 다음 페이지로 넘기며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많은 나무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구나'하고 감탄했을 정도로 나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무척 많이, 그리고 깊이 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처음에는 세계 곳곳의 기념비적이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나무들에 대한 책이려니 했다. 마치 우리의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나 보은의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지레짐작과 전혀 달랐다. 특정한 나무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형태와 쓰임새로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살아왔으며, 살고 있으며, 살아갈 나무들의 이야기였다.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 살아 온 나무들의 이야기

<세상의 나무>(라인하르트 오스테로트 지음 / 모이디 크레치만 그림 / 이수영 옮김 / 돌베개 펴냄 / 2015.01 / 1만3000원)
 <세상의 나무>(라인하르트 오스테로트 지음 / 모이디 크레치만 그림 / 이수영 옮김 / 돌베개 펴냄 / 2015.01 / 1만3000원)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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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무로 얻는 것들은 참 많다. 책이 되거나 누군가의 노트가 되는 종이나, 일상의 필수품인 휴지도 나무에서 얻은 것들이다. 나무를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건축재들이 개발되었음에도 나무는 건축재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 가구와 같은 생활용품도 마찬가지다. 금속이나 플라스틱과 같은 것들로 만들어지기도 하나 대부분의 가구들은 여전히 나무로 만들어진다.

목관악기나 바이올린처럼 나무가 꼭 필요한 악기도, 훈제식품처럼 나무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던 음식들도 있다. 그리고 나무는 수많은 예술작품의 주제나 재료가 되었으며 되고 있다. 우리의 문화유물 중에도 나무로 된 것들이 좀 많은가.

"2008년 런던 시내에 완전히 목재로만 이루어진 9층짜리 공동주택이 완공되었다. 2010년에는 베를린 중심지 프렌츠라우어베르크 지역에 여러 층으로 된 공동주택 세 채가 들어섰다."

"이런 작품은(기자 주: 아프리카 목조각) 가존의 표현방식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새로운 형식을 찾고 있던 유럽 예술가들에게 낯설고 투박하면서도 새롭고 자유롭다는 인상을 주었다.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파리에서 아프리카 목조각을 발견했고, 값이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몇 개를 구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조각들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난 그의 그림들이 탄생했다."

"게르만족을 정복하러 온 로마제국의 군대는 빽빽한 참나무 숲에 가로막혀 몇 번이나 행렬을 멈춰야 했다. 광장도, 거리도 보이지 않고 온통 참나무 숲뿐이었기 때문이다. 기원후 9년 바루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은 빽빽한 참나무 숲에서 길을 잃는 바람에 몰살당했다." - <세상의 나무> 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썼으며, 그간 어떤 가구들을 만들어 썼을까? 나무보다 습기에 강하고 튼튼한 시멘트나 철재를 이용해 집이나 건물을 지으면 수명이 훨씬 오래갈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왜 건축재로서의 나무를 외면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또 인류는 언제부터, 어떻게 인류역사상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종이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일까? 나무는 인류와 어떻게 연결되어 살아왔을까?

<세상의 나무>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 의하면 나무로 집을 짓기 시작한 사람들은 참나무를 번개와 천둥을 지배하는 강력한 '도나르 신'의 상징으로 삼았던 게르만족이다. 책은 게르만족이 기원전 1100년경인 청동기시대부터 통나무집을 짓기 시작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오늘날 가장 심각한 기후문제로 이야기되곤 하는 온실효과와 목재주택과의 관련을 이야기한다.

책에 의하면 오늘날 '많은 건축가들과 기술자들은 나무가 미래의 물질이 될 거라고' 한단다. 베어져 건축 재료로 쓰인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그대로 품고 있기 때문에 나무가 많이 쓰이는 그만큼 이산화탄소는 줄어들 것이며, 다른 건축 재료를 만들 때 에너지를 써야만 하는 것과 달리 나무는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계속 자라고, 자랄 수 때문이다.

게다가 나무는 자라면서 인류에게는 물론 수많은 생명체들에게 유익한 것들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준다. 그러니 건축가나 기술자들이 미래의 물질로 손꼽는 이유가 이해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무가 친환경적인 건축재인 것은 맞으나 시멘트로 지은 건축물보다 약할 것이라 알고 있었던지라 목재로만 지어진 9층짜리 공동주택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3갈래로 구성된 각각의 이야기, 소소한 즐거움

<세상의 나무> 내용은 3갈래로 구성되었다. 한 갈래는 운동기구를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는 수납장이 필요한 한 청소년의 이야기다. 아버지와 함께 어디를 가던 중 마땅한 수납장 하나가 버려진 것을 발견하고 집으로 가져와 수리를 해 나만의 가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조금만 수리하면 쓸 만한 수납장이 될 거란 기대와 달리 누군가 버린 낡은 수납장을 나만의 가구로 만들기까지 많은 재료들과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고치는 재료비에 돈을 조금만 더 보태면 새것을 살 수 있을텐데'와 같은 생각과 함께, 시간낭비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책을 통해 수많은 나무들을 만나는 동안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소년이 낡은 수납장을 수리해 가는 과정을 통해 여러 번 덧칠한 페인트를 제거할 수 있는 재료, 나무를 좀먹는 벌레를 퇴치하는 방법, 벌레가 갉아먹은 구멍을 메우는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가 새것을 너무 선호하고, 나무 한 그루의 혜택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와 같은 자책 비슷한 생각까지 들었다. 

두 번째 갈래는 참나무가 숲을 이루는 과정이다. 참나무는 수많은 나무 중 그동안 인류에게 가장 많은 것들을 줬으며, 여전히 많은 것들을 주는 까닭에 '진짜' 나무로 불린다. 나무들의 열매인 도토리 한 알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숲을 이루는 모습을 그렸다. 이 갈래의 이야기에선 나무와 숲에 관련된 다양한 지식 혹은 상식, 그리고 자연의 생명력과 신비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갈래는 위에서 언급한 목재주택처럼 인류에게 다양한 형태와 용도로 쓰이는 나무들 이야기다. 집·가구·악기·땔감·배·종이·예술작품 등, 없으면 인류의 생활이 불편해질 수많은 물건들이 있다. 나무로 된 이 물건들의 시작과 발전과정 그리고 숨은 이야기 등을 들려줌으로써 나무의 중요성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책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부분이며, 소소한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책은 이 세 갈래의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섞어 들려준다.

▲ 가을에 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진 뒤에도 나뭇잎은 한동안 나무에 매달려 있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떨어지면 바닥 위에 있는 열매를 보호해 준다. ▲ 침엽수인 가문비나무, 낙엽송, 소나무는 특별한 '신호 능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나무들은 압박을 견디지 못해 부서지기 전에 일찍부터 신음을 낸다. ▲ 바다에서 선원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은 해적선이 아니라 나무판자를 갉아먹는 벌레였다. 실은 벌레가 아니라 배좀벌레조개라고 부르는 20센티미터 크기의 조개다.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해발 3천미터 높이에 있는 브리슬콘소나무로 수령이 4700년이라고 한다. ▲ 세상의 나무 중 가강 가벼운 나무는 발사나무, 가잘 무거운 나무는 구아약나무로 불리는 유창목이다. - <세상의 나무> 본문 중에서

아마도 책을 읽다가 문득 필자처럼 자신의 주변에 나무로 만든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새삼스럽게 돌아볼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무심코 보곤 했던 나무를 다시 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그리고 나무란 존재가 고마워지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그간 나무와 관련해서 참 많은 책들이 나왔다. 그런데 특정 나무나 생태에 관한 것들을 들려주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처럼 나무의 다양한 쓰임새 위주로 깊이 있게 들려준 책은 없었지 싶다. 겨울을 견뎌낸 나무들이 싹을 틔울 봄을 앞두고, 올 봄 나무를 한 번 더 보거나 나무의 혜택을 고마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세상의 나무>(라인하르트 오스테로트 지음 / 모이디 크레치만 그림 / 이수영 옮김 / 돌베개 펴냄 / 2015.01 / 1만3000원)



세상의 나무 - 겨울눈에서 스트라디바리까지, 나무의 모든 것

라인하르트 오스테로트 지음, 모이디 크레치만 그림, 돌베개(2015)


태그:#나무, #목재주택, #참나무, #바이올린,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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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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