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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이 르포작가를 하겠다고?"

르포작가를 하겠다는 내 얘기에 친구는 놀랍다는 표정이다. 너 같은 공대생이면 요즘 취업에도 유리하고, 더구나 성적도 좋은데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를 못하겠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동 전문 르포작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 노동자의 삶을 전달하는 르포작가가 되려면, 지금 우리 사회의 일원인 노동자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게 필수란 생각 때문이다. 물론 글쓰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공대생이면 대기업 취직 잘 되겠네요?"

요즘 들어 공대생은 ‘취업깡패’라 불릴 만큼, 대기업이 많이 찾는 인재가 됐다. 광운대는 공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삼성전자와 함께 S/W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요즘 들어 공대생은 ‘취업깡패’라 불릴 만큼, 대기업이 많이 찾는 인재가 됐다. 광운대는 공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삼성전자와 함께 S/W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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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작가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현재 나는 공학을 전공한다. 게다가 요즘 '핫'한 로봇학과 출신이다. 사람들에게 내 학과를 소개하면 이런 질문이 쏟아진다.

"로봇학과면 대기업에 취직 잘 되겠네요?"

우리 과 교수와 선배들도 취업이 잘 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대학 OT 때, 어떤 선배는 나에게 우리 과가 취업률이 높다고 귀가 닳도록 설명해준 적이 있다.

"우리 과에서 삼성, LG에 많이 가거든. 열심히 해봐."

전공과목 교수님도 선배와 비슷한 충고를 했다.

"우리 과 학생들 취업이 잘 돼. 학교 통틀어서 최고야. 너희 중에 취업 못해서 취업률만 까먹지 좀 마라."

공대생은 요즘 들어 인기가 많아졌다. 취업이 잘 돼서다. 취업률이 높은 학과를 줄 세워보면 공학계열 학과가 매번 상위권을 차지한다. 사람들이 공대생을 이른바 '취업깡패'라 부르는 이유다. 이를테면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LG 등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이 찾는 인재 대부분이 주로 공대생이다.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춘 공대생이라면 누가 뭐래도 대기업 취직은 따 놓은 당상이다.

일어일문과를 졸업해 오랫동안 취업이 안 되던 친구는 자신이 공대생이었으면 좋겠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만연했는데, 이제는 공대생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만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공대생의 삶을 포기하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까지 대학생활을 하며 전공에 흥미를 가진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자본과 기업이 배척하기 시작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법학부·미디어영상학부 등 다른 과의 전공과목은 물론이고, 철학·역사 등의 교양과목을 내 전공과목보다 더 많이 수강하거나 청강해왔다.

무늬만 공대생인 내가 사회 문제나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을 사람들은 굉장히 신기해했다. 공대생이라면 자기 전공만 잘 알고 있을 것이란 편견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세간의 선입견만큼이나 내 주변의 상당수 공대생들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삐딱한 공대생이었다.

전공에 흥미를 잃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컴퓨터 앞에서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전공과 관련된 프로그래밍을 수없이 해왔다. 납땜을 하며 로봇도 만들고, 부족한 글 솜씨로 논문도 썼다.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며 시험기간 때마다 밤새서 전공 과목을 공부해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전공에 힘을 쏟아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졸업장이나 받자는 마음만 남게 됐다.

그사이 나의 중요 관심사는 노동이 됐다. 공대생 대부분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또한 알려 하지도 않는 분야나 마찬가지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문제 등이 그것이다. 특히나 우리 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은 노동 문제에 주목하던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진리의 전당이라 자부하던 대학에서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은 결국 노동법을 정식으로 배우는 계기가 됐고, 노동 전문 르포작가를 꿈꾸게 했다.

우리 과 안에서 나는 어느새 골칫덩어리가 되어갔다. 취업률을 떨어뜨리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내가 되려는 작가는 4대 사회보험의 적용이 안 돼서 대학의 취업률에 포함되지 않는단다. 우리 학교가 취업률이 낮은 학과와 단과대학을 통폐합하려는 추세인 탓에 나는 우리 학과나 대학에서 불필요한 존재인 듯하다.

오늘도 르포를 위해 현장에 나간다

노동 현장을 담기 위해 르포 촬영에 나서고 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가 학교 중앙도서관을 청소하는 모습이다.
 노동 현장을 담기 위해 르포 촬영에 나서고 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가 학교 중앙도서관을 청소하는 모습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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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르게 취업 준비에 소홀한 아들의 낌새를 눈치 채셨는지 우리 엄마는 이런 나에게 한 마디 건네신다. 할 거 없으면 공무원 시험이라도 보라고. 아빠도 옆에서 거드신다.

"이번에 경기도에서 공무원을 역대 최대로 뽑는다는데?"

엄마, 아빠는 취업 준비보다 글쓰기와 노동 문제에 정신 팔린 아들이 못마땅하신 듯하다. 최근 들려오는 친구들의 취업 소식에 불안해진다. 내가 선택했지만, 이 길이 맞는지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되묻는다. 주변 사람들처럼 그냥 토익, 자격증 시험 등 스펙 쌓기에 지금이라도 나서고 싶어진다. 괜히 공대생의 삶을 포기한 건 아닌지. 물론 공대생의 지위를 유지해도 취직이 잘 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돈도 못 벌고, 미래도 불확실한 직업을 아무리 내가 좋아서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꿈만 좇는 게 과연 올바른 선택인 건지 아직까지도 가치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다. 정말 아무 밑천도 없이 무작정 르포작가에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 하나쯤은 세상의 판단과 다르게 살아도 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곧 나는 졸업을 한다. 르포작가가 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엄마, 아빠의 곱지 않은 시선도 부담스럽다. 누군가는 내 선택이 미친 짓이란다. 그래도 나는 나를 믿어 보련다. 실패해도 도전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내 꿈을 위해서 오늘도 노동자를 취재한다. 아직 아무런 성과는 없지만, 르포 취재를 할 때만큼은 행복한 요즘이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지금은 볼품 없지만 멋진 르포작가가 될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덧붙이는 글 | 저는 광운대 학생입니다. 공학을 전공합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태그:#공대생, #르포작가, #노동자,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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