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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보낸 문자메시지를 오랫동안 확인하지 않는 엄마가 걱정되어서 무슨 일 있냐며 전화를 걸어보니 차례 준비로 시장을 몇 번이나 다녀오는지 모르겠다는 엄마의 고된 대답이 돌아옵니다.

차례? 제사를 잘못 들은 줄 알고 누구 제사냐고 물으니 "설인 줄도 모르고 사냐"는, 어처구니없다는 엄마의 대답이 이어집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달력에 표시해두고 날짜 맞춰서 한국에 전화를 했었는데 올해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말 할 수 있는 것들이 한두 가지 있었지만 "엄마, 고생이 많네"라는 위로의 말로 변명을 대신합니다.

엄마가 명절 준비로 분주할 동안, 미국은 '밸런타인데이' 분위기로 가득했습니다. 마트, 서점, 쇼핑몰 등은 물론이고 빌리지 관리실에서도 밸런타인데이 과자를 준비했으니 들러서 가져가라는 메일이 왔습니다. TV 뉴스도 빠지지 않고 관련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뉴스는 '삼대가 입은 웨딩드레스'였습니다.

나무상자에 보관 중인 웨딩드레스를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나무상자에 보관 중인 웨딩드레스를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 N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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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등장한 드레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 현재 1대인 할머니의 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1947년 남편이 전쟁에서 돌아온 직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 30년 후에 현재 2대인 딸이 어머니의 드레스를 물려받습니다. 부모님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닮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내린 결정이라고 합니다.

드레스에 얽힌 할머니와 엄마의 추억을 들으며 자란 손녀는 그 드레스가 마법처럼 신비로웠다고 합니다. 그 영향 탓인지, 꼭 그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강요가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그 옷을 물려 입게 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결혼식은 특별한 날입니다. 인생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결혼 전'과 '결혼 후'가 될 만큼 결혼은 인생의 명백한 기준이 됩니다. 그런 특별한 날에 삼대가 같은 드레스를 입었으니 분명 '그냥 드레스'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필자 역시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인터뷰의 마지막에 손녀는 그 드레스는 자신에게 아름다운 옷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린 삼대 모두가 현재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니 '가족의 행복을 이어주는 옷'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결혼생활은 아직 진행 중이니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믿고 싶은 그녀의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삼대의 결혼식 사진. 모두 같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삼대의 결혼식 사진. 모두 같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 N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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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는 초콜릿을 매개로 연인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확인한 연인은 결혼이라는 의례를 통해 가족이 됩니다. 이 웨딩드레스 뉴스는 마치 '밸런타인데이의 연인, 그 후'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연인들이 완성해 놓은 가족의 사랑을  보여준 뉴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명절 준비로 분주할 한국의 가족이 생각났습니다. 미국의 밸런타인데이 분위기에 휩쓸려 까맣게 잊고 있던 설날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설날이 밸런타인데이 뉴스와 연결된 것입니다.

달력을 꺼냅니다. 시차를 고려해서 18일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칩니다. 그리고 이날만큼은 잊지 말고 전화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깊이 해봅니다.


태그:#밸런타인데이, #미국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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