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언론 감시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2014년 발표한 '세계 언론 자유 보고서'에서 한국은 작년보다 네 계단이나 하락한 68위를 기록했다. 총 23개 항목을 평가해 0점에서부터 100점까지, 언론자유가 보장될 수록 낮은 점수를 받는 이 보고서가 선정한 언론자유 1위 국가는? 바로 10점으로 공동 1위가 된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언론자유가 가장 잘 보장된 국가들의 예능 프로그램은 어떨까? 그 해답을 찾아, < SBS 스페셜 >이 떠났다. 8일 방영된 < SBS 스페셜 > '쇼에게 세상을 묻다' 편에서는 방송인 박재민이 직접 세계 곳곳의 쇼에 참가하며 TV쇼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좀 벗으면 어때?' 공영방송에서 나체쇼를?!

 < SBS 스페셜 > '쇼에게 세상을 묻다' 편에 담긴 네덜란드 국영 방송의 나체 TV쇼 장면

< SBS 스페셜 > '쇼에게 세상을 묻다' 편에 담긴 네덜란드 국영 방송의 나체 TV쇼 장면 ⓒ SBS


박재민이 처음 찾은 나라는 네덜란드. 그곳에서 그는 공영방송사에서 10년째 방영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조정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던 그는 결국 얼굴을 돌리고 만다. 도대체 방송 중에 무슨 일이?

'누드'를 주제로 한 방송에서, 실제 얼굴만 가린 채 나체를 한 남성들이 스튜디오로 들어서 자신의 성적 고민을 토로한다. 또한 전직 누드 모델로 국회의원까지 된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그렇게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스튜디오의 한 편에선 누드 모델을 모델로 삼아 누드화가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누드'만이 아니다. 실제 이 방송에서는 '섹스'와 '마약'조차 금기의 대상이 아니다. 방송에 참가한 박재민은, 보드카을 앞에 두고 한 진실게임에서 마약·섹스와 관련된 질문에 당황하지만, 전직 누드 모델 국회의원은 오히려 '이런 건 자신에게 불리하다'며 당당하게 보드카를 들이킨다.

과연 이 볼장 다 볼 것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어떻게 가능할까? 심지어, 네덜란드의 방송 제한 연령은 16세이다. 이 방송을 몇 살 부터 볼 수 있겠냐는 질문에 거리의 부모들은 '성에 관심을 가질 12~3세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여유롭게 답한다. 한국 같으면 방송 게시판이 다운되고도 남을, 아니 애초에 방송 불가 판정을 받고도 남을 일이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가능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거리의 부모는 말한다. 어차피 보고 싶으면 보지 말라고 해도 찾아볼 것이니, 차라리 까놓고 설명해 주는게 낫다고. 프로듀서 마야 브라운 역시 '섹스와 마약의 좋고 나쁜 점을 제공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라고 주장한다. 실제 네덜란드에서는 성인이 된 사람이라면 마약을 할 수 있는 카페까지도 존재한다.

이렇게 섹스와 마약까지도 허용하는 네덜란드의 정서는 바로, '관용'이라는 국가적 가치관에 근거한다. 일찍이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오랜 식민지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다. 그 과정에서 구교의 스페인의 종교적 억압에 대응한,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베스트 팔렌' 조약이 네덜란드 국가 성립의 근간이 되었다. 이렇게 사상과 종교의 자유는 현대에 이르면서 '섹스'와 '마약' 등에까지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한 무제한적인 '자유'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영국 여왕조차도 나체 원주민에 합성하는 것을 주저치 않는다. 그 이면에는 바닷물 범람에 대비하여 민족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전국민이 합심해야 하는 상시적 위기의 역사가 존재한다. 국가적 재난만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허용되는 네덜란드 식 '관용' 정신의 출발점이다. 이런 국민적 정서 속에 나체 해변에서 온 몸을 드러낸 남녀의 만남이 가감없이 전해지고, 누드의 몸으로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밤 10시 메인 시간대에 방영될 수 있는 것이다.

'느리게, 느리게' 노르웨이의 슬로우 TV

 노르웨이의 슬로우 TV 속 장면

노르웨이의 슬로우 TV 속 장면 ⓒ SBS


느리고 심심하면 곧 바로 리모컨을 찾게 되는 우리의 정서와 달리, 노르웨이의 TV 쇼는 광고 한번 없이 최대 6박 7일간 생방송을 한다. 그렇다고 그게 특별한 내용도 아니다. 그저 노르웨이 전역을 다니는 크루즈 여행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화면은 10분 이상에 걸쳐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걸어가는 젖소 한 마리를 비춘다.

이 슬로우 TV의 시초는 기차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차 여행 과정에 비친 풍경을 고스란히 24시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도 방송이 되겠어?'라는 의문과 달리, 노르웨이의 시민들 다수가 동시간대 방영된 타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 대신 이것을 지켜보았다. 여기서 착안한 제작진이 다음에 기획한 것이 바로 크루즈 여행이다.

처음 한가롭게 노르웨이 연안을 비추던 TV화면에 어느 땐가부터 노르웨이 국기를 든 시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느리게 가는 여객선의 항로를 예측한 시민들이 앞서 그곳에서 배를 기다리며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이어 연안에서 배를 기다리는 대신 각종 요트를 타고 배를 따라잡으며 각종 이벤트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여왕까지 참여했다. 결국 느리게 시작한 크루즈 여행은 시청률 40%라는 대박을 쳤다.

박재민이 참여한 슬로우 TV는 전국의 합창단이 2박 3일에 걸쳐 총 900여 곡의 찬송가를 부르는 이벤트이다. 박재민은 전통있는 교회 남성 합창단에서 솔로로 출발을 함께 하고, 또 다른 마을 합창단의 일원이 되어 피날레를 장식한다. 밤이 긴 노르웨이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합창단을 만들고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고 한다. 2박  3일간의 합창 이벤트는 바로 그런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다.

이 합창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재소자도 있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교도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 섬이 고스란히 교도소인 이 곳에서 재소자는 아담한 오두막에서 한국에서 온 TV를 포함한 각종 생활 편의 기구를 놓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하루 종일 노동에 종사한 그는 그 노동의 합당한 댓가를 받아 원하는 물건을 사서 생활할 수 있다. 가족과 떨어져 이곳에서 생활한다는 제약만 있을 뿐이다. 재소자의 사회적 구금보다도 언젠가 그가 돌아가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점을 우선시하는 노르웨이 행형 제도가 낳은 산물이다.

더구나 재소자들은 합창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단 한 명의 여성 간수와 함께 마을을 찾는다. 그곳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그들을 반긴다. 죄수들과 함께 합창단을 만드는 건 그들에게 늘상 있어 왔던 일이다.

합창단 역시 IT 업계 종사자에서부터 의사, 농부 등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농부와 노동자가 낮은 소득에 30%의 세금을 내는 대신, 의사가 그들보다 높은 소득을 가지고 40% 이상의 세금을 냄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한 노르웨이의 사회적 제도가 합창단의 숨겨진 배경이다. 슬로우 TV는 그런 노르웨이의 전통과 정서를 담고자 한다. 죄를 지었건 짓지 않았건, 혹은 더 가졌건 덜 가졌건 모두 노르웨이의 일원으로 함께 노래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예능 프로그램, 슬로우 TV다.

총성이 오고가는 전쟁의 와중에도 쇼는 계속된다?

 레바논의 인기 프로그램 <슈퍼 아카데미>

레바논의 인기 프로그램 <슈퍼 아카데미> ⓒ SBS


반면 언론의 자유는 커녕, 언제 전쟁이 벌어질 지 모르는 중동 지역에서도 쇼는 계속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공습을 발표한 그날, '중동의 파리' 레바논에서는 한국의 < 슈퍼스타K >와 같은 스타 탄생 프로그램인 <슈퍼 아카데미>가 한참 준비 중이었다.

유럽에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한 <유러비전 송 컨테스트>가 있다면, 중동 지역에는 아랍인들을 대상으로 한 <슈퍼 아카데미>의 전통이 있다. 이 <슈퍼 아카데미>에서는 아랍 지역은 물론 이슬람 권에 있는 북아프리카 국가들 출신의 참가자 17명이 노래로 승부를 펼친다.

수니파 국가이건, 시아파의 국가이건, 이스라엘의 억압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조차 이 <슈퍼 아카데미>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이슬람권의 문화적 유대를 강화한다.

이라크 출신의 수니파 여성이 '이라크 침공'을 잊지 않은 사람들 덕에 2007년 우승을 거머쥐었고, 자신을 드러내며 노래를 통해 표현하는 이 프로그램 덕에 쿠웨이트에서는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기도 하였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2014ㅕ년 우승자는, 독립을 향한 그의 호소력있는 소감 덕분에 전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그저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 사회적 자각의 분출구로 작동하고 있는 <슈퍼 아카데미>는 여전히 중동 전역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진행 중이다.

언론자유 1위 국가에서 그 국가적 정신인 '관용'과 '평등'을 담보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그리고 그 정반대편에 억압과 전쟁 위기 속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중동의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이 극과 극의 예능을 보면서 자연스레 되돌아 보게 되는건, 어쩔 수 없이 한국 예능이다. 과연 외국인의 눈에 비춰진 한국의 예능은 한국의 어떤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세계의 다양한 쇼 프로그램을 찾아나선 여정. 결국 이는 우리 예능의 본질을 묻는 것으로 귀결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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