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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안 내려올 거가?"

지난달 13일, 눈을 뜬 시각은 오전 7시 반. 설연휴 기차표 예매 시작은 오전 6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번 설에도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다. 어머니께 전화로 이 비보를 알려드리자 어머니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아뇨… 가야죠."

매년 명절마다 벌어지는 귀성길 교통편과의 싸움. '전국민의 수강신청'이라고도 불리는 예매전쟁에서, 학교 수강신청에서도 전승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까. 한 번은 학교에서 마련한 귀향버스를 타고 평소의 2배 넘는 시간을 버스에 앉아 갔던 적도 있다.

녹초가 돼 집에 들어와 그 다음날 아무것도 못하고 앓아 누운 뒤로는 귀향버스를 타는 데 상당한 용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렵게 어렵게 구한 기차표가 특실이었던 때는 돈도 안 벌면서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타도 되는지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분명 편한 자리였지만 가시방석이었다. 지방출신 취준생의 명절 스트레스는 귀성길, 아니, 티켓팅을 실패한 순간부터 시작된 셈이다.

취준생이 명절 때마다 가족들 눈치 보는 이유

고향에 내려온 날부터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특히 친척들 모두 모인 자리에서는 더더욱. 어른들께는 부모님이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지방에서 힘들게 서울로 보낸 자식이 서울서 무슨 일을 하는지 여간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지난 추석엔 인턴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당장에는 둘러댈 거리가 있었다. 내가 했던 일들을 보여드리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좋아하셨던 건 어머니였다. 당신의 딸이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곳에서 친척들 앞에 보여줄 성과-라기보단 단순한 결과물에 가까웠지만-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없었을 땐 부모님과 마주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졸업하면 뭐 할 거니?"였다. 졸업을 앞둔 딸의 장래가 걱정되는 부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투명한 나의 미래에 대해 말씀 드리는 건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막연한 꿈만 꾸고 전공을 택했던 때와 실제로 그 꿈을 이뤄내야 하는 나이가 됐을 때, 그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생각보다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허우적대기 바빴던 내게 그 괴리를 벗어나는 것보다 당장 현실에 대한 안주와 '귀차니즘'이 더 컸다.

결국 그 괴리는 여전했고 나이만 하나 더 먹는 설이 돌아와버렸다. 나이는 먹고 꿈에 대한 준비는 한 게 없으니 "졸업하면 뭐 할 거냐"는 부모님의 질문엔 어물쩍 피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친척들 앞에서는 대답을 피할 수가 없다. 떡국을 한 번 더 먹는 동안 내겐 큰 변화가 없었는데 친척들 앞에선 무엇이든 변했다고, 혹은 변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만 같다. 스스로 기죽지 않고 부모님을 기죽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먹을 거냐" 먹는 것도 눈치 보이고...

설날 떡국
 설날 떡국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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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가 나름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친구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할 수록, 다음 설이 오기 전까지 기대에 부응할 만한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말이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등수의 변화가 그랬고 고3때는 대입 결과가 그러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학점의 변화에 시달리다가 대학이 끝나가는 지금 시점에는 '취업'인 것이다.

설은 그런 의미였다. 먹은 떡국만큼 '나잇값'해야 한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기였다. 한 살 더 먹은 만큼의 변화를 기대하고 그 기대에 맞춰 변해야만 하는 의미였다. 오랜만에 친척들과 만나는 반가운 자리이지만 한 해의 시작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추석과는 또 달랐다. 복스럽게 먹는 걸로 유명했던 내 먹성도 이제 '식탐'이란 이름으로 바뀌어버렸다.

어릴 땐 마냥 많이, 잘 먹는 게 최고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많이 먹는 것도 '나잇값' 못하는 일 중 하나가 됐다. '나잇값' 하려면 먹는 양은 예전보다 많아졌는데 풍족한 명절 음식 앞에서 함부로 젓가락을 들이대기도 힘들다. 어린 시절 먹으면 다 키로 갈 거라던 어른들의 말은 "언제까지 먹을 거냐"란 꾸중이 되어 돌아왔다. 늘 통통했던 나에게 적게 먹는 체면치레는 힘들다. 이젠 먹는 것에서도 기대만큼 먹어야 하고 기대만큼 배불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 몇 년 간은 명절이 가까워지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다지 기쁜 마음이 들지 않는다. 고향 가는 교통편을 구하는 것부터 친척들과 주변 어른들에게 듣는 말까지… 어쩌면 명절 분위기를 즐길 수 없으니 교통편마저 절실하게 구할 기분이 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 설 연휴 전날 인턴십이 끝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래를 모르는 '취업준비생'이 된다. 그래서 올해 설은 친척들 앞에서 어떤 이야기로 내 미래에 대해 둘러대야 할 지 고민하게 하는 씁쓸한 시간이 될 것 같다. 지난 추석 내가 만들어내던 성과-아닌 결과물-에 내가 취직이라도 한 양 기뻐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이번 설은 유달리 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이젠 임기응변으로 둘러댈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피하려 했던 미래와 꿈을 향해 정면으로 부닥칠 수밖에 없는 시기다. 올해 설은 내게 피할 곳 없는 낭떠러지, 혹은 막다른 길이다. 이젠 사회에 발을 내디뎌야 할 만큼의 떡국은 먹지 않았나.


태그:#취업준비생, #예비졸업생, #취업, #청년실업, #설날 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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