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 <워터 디바이너>, <언브로큰>, <아메리칸 스나이퍼>, <허삼관> 포스터.

(좌로부터) <워터 디바이너>, <언브로큰>, <아메리칸 스나이퍼>, <허삼관> 포스터. ⓒ 더블앤조이픽쳐스, UPI, NEW


미국 유명배우 3인과 한국의 대세배우 1인이 맞서는 형국이다. 출연료와 연출료만 따져도 얼마일까. 그 이름만으로도 이목을 끄는 러셀 크로우, 안젤리나 졸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하정우. 데뷔작부터 노장의 신작까지, 배우들의 연출작이 줄줄이 1월 극장가를 찾아왔다.

장르도 흥미롭다. 할리우드의 세 감독이 모두 전쟁(제1,2차 세계대전과 이라크 전쟁)을 경유해 부성애와 휴머니즘, 전쟁의 참상을 그린다면, 하정우 감독은 중국 3세대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한국식으로 번안해 부성애를 강조했다.

흥행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닐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에서 개봉 4주차 와이드 릴리즈로 주말 9천만 달러라는 '잭팟'을 터트렸고, 반면 마케팅비 포함 100억 가까이 들어갔다는 <허삼관>은 한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일찌감치 개봉한 안젤리나 졸리의 <언브로큰>은 한국에서의 뜨뜻미지근한 반응과 달리 북미에선 1억 달러를 돌파했고, 28일 국내 개봉 예정인 러셀 크로우 감독, 주연의 <워터 디바이너>는 미국에선 4월 개봉 예정이다.

이 네 배우 출신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연출력' 위주로 짚어 보도록 하자. 편의상 '업'과 '다운'으로 구분했다. 어찌됐건, 누구들은 연기도 하랴, 누구는 일본에서 반대 시위 겪으랴, 또 누구는 고령에도 정력을 쏟으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10년 동안 미뤄왔던 데뷔 꿈 이룬 러셀 크로우의 <워터 디바이너>, '업↑'

 영화 <워터 디바이너>의 러셀 크로 감독과 스틸컷.

영화 <워터 디바이너>의 러셀 크로 감독과 스틸컷. ⓒ 더블앤조이픽쳐스


<레미제라블>의 흥행에 힘입어 한국을 찾은 러셀 크로우의 미소는 무척이나 환했다. 마치 성공적인 연출 데뷔를 자축하는 것처럼. 그만큼, <워터 디바이너>는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호주 출신 배우의 연출력을 뽐내는 듯 능수능란한 영화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갈리폴리 전투에서 아들들을 잃은 아버지가 그들을 찾아 떠난 터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전쟁과 부성애, 멜로를 넘나들며 '휴머니즘'을 설파한다.

복합장르라기보단 고전적인 전쟁 멜로드라마의 내러티브 안에 부성애와 적군과의 우정, 정의로움과 휴머니즘을 곳곳에 포진시킨 경우인데, 이 조합이 의외로 신선한다. 예상보다 진중함만을 강조하지도 않으며, 전쟁의 흉포함은 물론 정치적인 공정함까지 담으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연출하기 쉽지 않은 이 복합장르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연하게 완성한 러셀 크로우는 분명 차기작을 기대케 하는 '감독'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데뷔를 무려 10년 간 준비했다는 러셀 크로우 감독님, 흥행 여부를 떠나 부디 '소포모어 징크스'는 피해가시기를.

절치부심한 안젤리나 졸리의 두 번째 영화 <언브로큰>, '다운↓'

 <언브로큰>을 연출한 안젤리나 졸리와 스틸컷.

<언브로큰>을 연출한 안젤리나 졸리와 스틸컷. ⓒ UPI 코리아


안젤리나 졸리는 각본까지 쓴 극영화 데뷔작 <피와 꿀의 땅에서>로 좋은 반응을 얻진 못 했다. 그리고 절치부심 끝에 거장 코엔형제가 각본을 담당하고 할리우드 일급 스태프들이 뒷받침한 <언브로큰>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19세에 육상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47일간의 태평양 표류, 그리고 일본에서 850일간의 전쟁 포로를 경험한 루이 잠페리노의 실화를 극화한 이 작품은 북미에서만 1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그런데 기이하게 평이하다. 코엔형제의 각본이 맞나 싶을 정도다. 루이의 실화는 분명 '드라마틱' 그 자체다. 그러나 이 궤적을 따라가는 영화의 연출은 <진주만>과 <라이프 오브 파이>를 연상시키는 것도 모자라, 한일 관객들에겐 강제규의 <마이 웨이>나 오시마 나기사의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만들만큼 독창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노인이 된 후 일본을 찾는 등 평화 운동에 매진한 실제 루이의 화면들이 더 인상적일 정도. 전쟁을 해석하는 관점 역시 지나치게 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인간승리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중평이다. 미 영화비평전문사이트 '로튼토마토' 지수 역시 50%에 머물렀다.

85세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쟁드라마 <아메리칸 스나이퍼>, '업↑'

 영화 <그랜 토리노>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스틸컷.

영화 <그랜 토리노>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스틸컷. ⓒ UPI 코리아


지극히 미국적인 관점일까, 노장 감독의 관록과 경험이 빛을 발한 것일까.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지난 주말 북미에서만 9천만 달러를 쓸어 담으며 역대 1월 오프닝 수익 1위와 R등급 영화 오프닝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실제 전쟁영웅 크리스 카일의 실화를 극화한 것과 빼어난 완성도의 전쟁실화극이 미국 관객들에게 제대로 먹힌 결과라 볼 수 있다. 영화는 85세 노장감독이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여러 면에서 우직하고 정직하며 무엇보다 로튼토마토 지수 역시 73%로 호의적이다. 

이라크전의 영웅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그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를 그리려는 노장의 의도는 결코 '미국만'의 가치에 함몰되거나 우파 프로파간다를 지향하지 않는다. 텍사스 깡촌의 (단순무식한) 카우보이가 9.11 테러 이후 전쟁영웅이 됐다 자신과 가족마저 흔들릴 위기에 처한다는 스토리는 직선적이다. 반면 카일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정신적 장애를 겪게 되면서 전쟁이 개인을 희생시키는 국가 간의 싸움일 뿐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그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비정치적인 것이 더 정치적일 수 있다는 걸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통해 증명해 내고 있다. 개개인의 비극을 희생시키는 전쟁이야말로 결국 미국인들(과 그의 적들 모두)에게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영화의 마지막, 크리스 카일의 죽음을 추도하는 장면들은 그런 노장의 충고가 담긴 애도에 가까워 보인다.

'대세배우' 하정우의 두 번째 연출작 <허삼관>, '다운↓'

 영화 <허삼관>의 하정우와 스틸컷.

영화 <허삼관>의 하정우와 스틸컷. ⓒ NEW


'하정우 +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크랭크인 소식이 들려왔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대세 배우의 소품 코미디 <롤러코스터>에 이은 두 번째 연출작, 게다가 '매혈하는 아버지'란 충격적이지만 매력적인 소재와 캐릭터, 그리고 2013년을 달궜던 배급사 NEW의 만남까지. 신인 감독으로서는 차고 넘치는 제작비에 하지원을 비롯한 '하정우의 친구들'까지 캐스팅된 이 영화는 뚜껑을 열자 하정우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비견될 수는 '부성애' 코드를 선보이는 독특한 코미디+드라마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원작의 상황을 1960년 한국으로 이식한 것은 '왜 매혈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를 약화시켰고, 전반부의 코미디와 후반부의 감동을 연결하는 이음매도 심각하게 덜컹거렸다. '원맨쇼'에 가까운 허삼관의 심리 변화가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사회주의 격변기 시대의) 한량 허삼관의 강력한 한방을 기대했던 원작 팬들의 원성을 사야만 했다.

무엇보다, 그간 하정우가 연기한 지질하지만 귀여운 남성 캐릭터가 짖고 까부는 전반부와 그 남자가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만을 사건으로 쫓는 후반부는 작품과 캐릭터 양면에서 해석의 깊이에 있어 힘이 붙이는 양상이다. 적지 않은 제작비에 대한 부담이었을까, 출발부터 예정된 해석이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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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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