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90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두 번째 기자회견에 걸린 시간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첫 기자회견보다 8분여가 더 늘어난 25분 동안 원고지 67장 분량의 신년구상 회견문을 발표했다. 이후 외신 기자 1명을 포함해 15명의 내신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질의응답을 정리한 내용만 원고지 122장 분량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소식, 즉 '뉴스'는 거의 없었다. 박 대통령이 모두 연설에서 '정윤회 비선개입 문건' 유출에 대해 "송구스럽다"라고 사과하고, 마지막에 청와대 조직개편을 예고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뉴스'가 없었던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날 기자회견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비선실세 논란과 대통령 기록물 유출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인적쇄신을 포함한 구체적인 국정쇄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정윤회 문건' 파문에 이어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항명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청와대 내부 기강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박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 여론과 온도 차가 너무 컸다. 우선 박 대통령은 "문건파동으로 국민 여러분께 허탈함을 드린 데 대해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라며 처음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책임자 문책은 없다고 못박았다. 대통령이 사과할 정도의 지휘 책임 문제와 공직기강 해이가 생겼지만 이를 일부 개인의 욕심을 차린 일부 공직자들의 일탈로 규정했다. 인적쇄신의 표적이었던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재만 총무·정호성 제1부속·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강력한 신뢰를 나타내면서 인적쇄신 요구를 보란 듯이 물리쳤다. 

박 대통령은 김 실장에 대해 "정말 드물게 보는 사심 없는 분"이라고 하면서 김영한 전 수석의 항명사태에 대해서도 "항명파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정라인의 정윤회 문건 유출을) 책임지고 간다는 차원에서 사표를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방어막을 쳤다. 정윤회 문건 유출 수습 실패와 비서실 장악력에서 문제를 드러낸 김 실장을 겨냥한 책임론을 일축한 셈이다.

다만 박 대통령은 "당면 현안들이 많아서 먼저 수습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면서 교체 여지를 열어놨다. 김 실장을 문책성으로 불명예 퇴진시키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기춘 재신임... 더 힘 세진 '문고리 3인방'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앞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앞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비서관 3명에 대해서는 정윤회 문건 파문 이후 신뢰가 더 두터워졌음을 시사했다. "검찰이나 언론, 야당에서 비리가 있나 샅샅이 찾았지만 그런 게 없지 않았느냐" "묵묵히 고생하면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 비리가 없을 것이라 믿었는데 '진짜 없구나' 확인했다"라고 강조한 점이 대표적이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조직개편'을 언급하면서 청와대 조직 확대를 해법으로 내놨다.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주요 수석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주요 부문의 특보단을 구성하려고 한다"라며 "국회나 당청 간에도 좀 더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정책을 협의해 나가는 구도를 만들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사이동을 언급하긴 했지만, 박 대통령이 핵심 참모들을 재신임한 이상 공석 중인 민정수석 인선 등 소폭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개각에 대해서도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해수부 등 필요한 부처를 대상으로 한 제한적 변화 가능성만 내비쳤다. 

정윤회 문건 파문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대로 정리되면 '문고리 3인방'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은 현실이 됐다.

박 대통령의 '마이웨이' 선언... 정치적 갈등 커질 듯

결국 이날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식대로 가겠다'는 '마이웨이'를 다시 한 번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윤회 문건' 파문과 항명사태로 내부 기강은 물론, 소통 체계, 위기 관리 등 청와대의 핵심 기능에 심각한 기능장애가 생겼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박 대통령은 '개인적 일탈'이라며 덮고 가는 쪽을 택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와 통일 시대 준비라는 익숙한 구호 외에 어떤 쇄신책도 내놓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심해지고 있는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지적에도 "인재 위주로 하다 보니 일부러 골고루 하는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을 때가 있다, 그렇다 해도 전체적으로 어떻게 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라면서 "유능한데 특정지역이라고 해서 차별받는 것도 있을 수 없다"라고 답했다. 지역 탕평 인사 필요성에 대한 원론적 언급마저 주저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함께 협력해야 할 야당은 물론 여당의 쇄신 요구에 귀를 막아 정치적 갈등이 더 커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전면적 인적쇄신, 청와대나 국정운영 시스템의 획기적인 변화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고 국정동력을 확보하는 핵심인데 쇄신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라면서 "우려가 많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소통 점수 몇 점? 대답하지 않은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청와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회견장 배치를 크게 바꿨다. 원래 설치돼 있던 데스크를 모두 치우고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기자들이 타원형으로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연단에 선 대통령과 기자들의 거리도 크게 가까워졌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올 수 있는 기자들 수도 늘었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소통을 강화하려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기자회견 내용에서는 국정을 쇄신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데 그 형식만으로 청와대의 불통 징후를 없애기엔 역부족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소통 점수 100점 만점에서 몇 점을 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춘추관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재차 질문이 나오자 박 대통령은 "그런 건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다, 모호하게 남겨 둬야 한다"라고 농담을 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오늘 회견에서 뭐가 가장 핵심이 될 것 같은가"라고 되물었다. 답은 '불통'이다.


태그:#박근혜, #김기춘
댓글2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