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연대 단체 참가자들이 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소 앞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는 가운데 카메라를 든 구로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이(붉은 색 표시) 몸을 숨기며 행진단을 주시하고 있다.
▲ 몸 숨기고 오체투지 행진단 따라 다니는 경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연대 단체 참가자들이 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소 앞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는 가운데 카메라를 든 구로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이(붉은 색 표시) 몸을 숨기며 행진단을 주시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정리해고-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이 7일 오전 9시 서울 구로구 쌍용차 구로정비사업소 앞에서 오체투지 2차 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기자를 사칭하면서 사진촬영(일명 '채증')을 하다 발각되는 일이 벌어졌다.

집회 현장에 경찰이 신분을 속이고 출입해서 채증을 하는 행위는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때도 수차례 목격된 바 있다. 경찰은 이런 일들에 대해 경찰채증활동규칙에 따른 적법한 행동이라고 주장하여 왔다. 정말 그럴까?

이번 사안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경찰이 1) 경찰에 미리 신고된 적법한 집회가 평화롭게 경찰의 인도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2) 사복을 입고 출입하면서 사진촬영을 하였고 3) 발각되자 자신이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사칭하면서 자리를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우선 집회현장에 경찰이 사복을 입는 등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출입하며 사진촬영이라는 증거수집활동을 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아무리 따져 봐도 사복 경찰이 채증할 이유 없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은 경찰이 집회현장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집회주최자에게 미리 알리고, 정복을 입고 출입을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로 집회현장에 나가보면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채증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복을 입은 경찰이 집회현장에 출입을 하면서 채증을 한 것이다.

물론 범죄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기에 다른 사람들 특히 범죄 혐의자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대법원은 범죄의 증거로서 누군가의 동의 없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영장이 있어야 하며, 예외적으로 영장없이 하려면 사진촬영 이외에는 증거수집의 방법이 없고, 지금 당장 촬영하지 않으면 안 될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야만 한다고 밝혔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이번 집회는 경찰에 미리 신고가 된 적법한 것이었고, 경찰들의 지시에 따라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진행되던 집회가 순식간에 불법적인 것 그 중에서도 지금 당장 사진촬영을 하지 않으면 범죄의 증거를 확보할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한 것으로 변질되리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영장을 준비해서 촬영을 해야 할 것이다. 설사 급격하게 과격한 것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정복을 입은 채증담당 경찰들이 현장에 배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복을 입은 경찰이 채증을 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이번 사복경찰의 채증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경찰은 경찰채증활동규칙에 근거한 것이라 적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채증활동규칙에서 정의한 "채증"이란 각종 집회·시위 및 집단민원현장 등에서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촬영, 녹화, 또는 녹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경찰청채증활동규칙은 채증이 "법적으로 가능한 상황"에서 채증을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한 것에 불과하다.

채증이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채증을 가능하도록 하거나 법적으로 허용된 방법을 벗어나서 채증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주는 규정은 아니다. 왜냐하면 경찰채증활동규칙은 그 성격이 경찰청 예규-법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하위의 규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채증활동규칙을 이유로 집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채증을 할 수는 없다. 경찰의 변명은 정말 변명에 불과하다.

위법인 걸 알고서도 위법 행위...<오마이뉴스>에 유무형 손해 입혀  

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인근에서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사칭하며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 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단'을 불법채증한 구로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이 행진단에게 발각되자 서둘러 현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 기자 사칭하고 불법채증 벌이다가 붙잡힌 경찰 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인근에서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사칭하며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 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단'을 불법채증한 구로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이 행진단에게 발각되자 서둘러 현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법을 위반한 사진촬영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이나 문제제기가 가능할까? 형사상으로는  먼저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동의없이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널리 알려졌듯이 흔히 초상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이번 사안은 경찰이 법을 위반하여 요건에도 맞지 않게 원하지 않는 사람의 사진을 찍어 초상권을 침해한 것이다. 이렇게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직권남용이라 한다.

다음으로 집회를 방해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집시법이 정하고 있는 집회방해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사복을 입고 집회현장에 들어와 동의 없이 사진을 촬영하였고, 이를 통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심적인 위축을 느끼게 하여 집회의 진행을 방해했다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형사처벌 외에도 집회를 방해한 부분이나 초상권을 침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에 손해배상청구도 가능하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경찰의 행위는 불법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를 사칭한 부분은 어떨까? 이번 사안이 다른 유사한 사안들과 달리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이유는 발각된 경찰이 기자를 사칭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를 사칭했다는 것의 의미를 분석해보면 우선 본인들도 이러한 행위가 적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가가 위법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국민들에 의해 발각되었을 때 이를 시인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위법한 행위임을 알고도 감행했고, 발각되자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은 국가의 부도덕함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런 부도덕한 행위는 집회현장에서 불법하게 채증했던 행위의 불법성을 더욱 강화하며 더 나아가 오마이뉴스라는 매체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고 앞으로의 취재활동에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즉,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현장에 출입하는 오마이뉴스 기자를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고 취재에도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불신은 집회현장에 대한 취재에만 그치지 않고 더 확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국가의 불법하고 부도덕한 행위는 <오마이뉴스>에 유무형의 손해를 입히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오마이뉴스>는 국가를 상대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경찰, 자신의 본질 망각하지 말아야

집회는 범죄가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 행사다. 헌법은 권리 중 일부를 명시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집회의 자유는 여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생명권 다음으로 소중한 권리로 인정받고 있다. 집회가 기본권 행사로서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해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집회를 관리하는 것이 민주사회에서 경찰이 할 일이다.

 박주민 변호사
그런데도 경찰은 자의적으로 심지어는 법까지 위반하면서 집회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 이번 사안 역시 그러한 태도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권력을 위한 것일 뿐이다. 더 이상 경찰은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것이 너무 힘들다면 적어도 위법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 국민들의 눈에 발견되면 시인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주민 기자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입니다.



태그:#경찰, #채증, #사칭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