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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베란다에서 본 풍경.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베란다에서 본 풍경.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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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자연은 아름답다. 특히 시드니를 조금 벗어나 1번 도로(Pacific HWY)를 타고 한두 시간 정도 달리면 호주 특유의 해안 풍경과 아직도 순진함이 넘쳐흐르는 호주 토박이도 만날 수 있다.

호주에 정착한 1980년도 중반에 '캐러밴 파크'라는, 한국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곳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유난히도 맑고 깨끗한 푸른 하늘과 바다, 신선한 공기를 타고 오는 시골 특유의 냄새…. 호주에서의 첫 번째 여행이라 그런지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에는 멀리 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터클리(Toukley)라는 시드니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도시를 떠나 이렇게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시드니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사는 게 무엇인지, 이런 저런 이유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시드니를 떠나 시골에 정착한 지인은 없다.

퇴직 그리고 '무식'

퇴직했다. 호주의 직장인이 꿈꾸는 퇴직 생활의 시작이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이러한 삶을 복잡한 시드니에서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대답은 각양각색. "시드니를 떠나면 외로울 것이다" "한국 식품점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려고 하는가?" "시드니 집값은 계속 오를 텐데…" 등등.

어느 영국 시인이 읊었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두 갈래 길에 서 있는 나는 시드니에 살아도 후회할 것이고 시드니를 떠나도 후회할 것이다.

복덕방과 이야기를 나눠 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생각보다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조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아내와 상의 후 일단 집을 내놓기로 한다. 이런 면에서는 아내도 꽤 '무식한' 편이다. 

한적한 곳을 찾아

시드니에서는 생각도 못할 전망 좋은 집, 응접실에서 바라본 전경
 시드니에서는 생각도 못할 전망 좋은 집, 응접실에서 바라본 전경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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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퇴직해 살 곳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 지도로 시드니에서 멀지 않은 곳을 기웃거려 본다. 예전에 놀러 다녔던 곳 중에서 생각나는 곳을 찾아가 보기도 한다. 시드니에서 가깝지 않으면서도 너무 멀지 않아 지인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곳.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산과 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와도 멀지 않은 곳으로….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 바다 색깔이 유난히 아름다웠다고 기억되는 포스터(Forster)라는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시드니에서 3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바닷가 동네다. 텐트 하나 차에 싣고 포스터를 찾아 떠난다. 포스터의 아름다운 비취색 바다가 있긴 하지만 아파트가 즐비하고 관광객을 위한 도시라는 냄새가 너무 진하게 풍긴다.

한적한 곳을 찾아 포스터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본다. 바닷가에서 4~5분 떨어진 곳에 톨우즈(Tallwoods Village)라는 동네가 있다. 골프장을 중심으로 새로 조성된 동네다.

한 번 살다 가는 세상인데...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아본다. 전망 좋은 집이 많다. 집값도 시드니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편이다. 몇 집을 정해놓고 아내와 의논한 끝에 전망 좋은 집을 사기로 결정한다.

너무 쉽게 시드니를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키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사한다는 소식을 들은 시드니에서 가까이 지내던 지인이 한 마디 한다.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당신의 두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해부해보고 싶다"고….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내 생긴 대로 사는 게 최선의 삶이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해본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틀을 떠난 나만의 삶,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

이사 준비를 한다. 낯 선 곳에서는 어떠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제2의 인생은 어떻게 전개될까. 1980년도 중반 호주로 이민 길을 떠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 번 살다 가는 세상,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많이 만들며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것을 한국 독자를 위해 수정해 쓴 글입니다.



태그:#호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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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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