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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발 빠른 대처로 큰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의 발 빠른 대처로 큰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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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보는 보통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 8일, 기자에게 조금은 특이한 내용의 제보가 들어왔다. 제목은 '공포의 크리스마스'였다. 부산에 거주하는 40대 주부 A씨가 자신이 겪은 사건을 설명하면서 범인을 검거한 해당 경찰관을 극찬하는 내용이었다.

A씨가 겪었던 내용은 사건 다음날인 지난 2014년 12월 26일 <연합뉴스> 등이 짧게 보도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부산판 제2의 오원춘 사건이 될 수 있었던 심각한 범행이었다. A씨가 보내온 제보내용을 바탕으로 취재에 나섰다. 지난 12월 25일 밤 10시 20분부터 50여분 동안 부산 해운구 재송동 주택밀집 지역에서 벌어졌던 '강도강간미수' 사건을 재구성해 보았다. 

귀가 중이던 40대 주부... 20대 남자에게 습격당해

지난 201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오후 10시 20분경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 거주하는 40대 주부 A씨는 외출을 했다가 막 집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자신의 뒤로 다가서는 인기척을 느꼈다. A씨는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 인줄만 알고 뒤를 한번 돌아본 후 출입문을 막 열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갑자기 건장한 체격의 남성 B(20)씨가 A씨의 머리채를 잡더니 원룸 뒤쪽의 주차장 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A씨는 그제야 놀라서 "사람 살려"라고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성탄절 밤이어서 사람이 없던 탓인지 사건 발생 주변 원룸과 단독주택에 사는 그 누구도 112신고를 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 남성은 A씨의 머리채를 잡은 채 질질 끌고 가면서 "조용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 했다. B씨는 A씨를 원룸건물 주차장 뒤쪽 구석진 곳으로 갔다. 구석진 곳으로 끌려간 후 A씨는 겁에 질려 고함을 멈췄다. A씨에게 그 남성은 주차장 땅바닥에 있던 깨진 타일을 내밀며 "다섯 셀 때까지 옷을 벗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공포스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다 용기를 내 "현금도 있고 신용카드도 얼마 안 되지만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 남성은 돈을 꺼내달라고 한 후 "신용카드 사용한도가 얼마 남았냐", "비밀번호가 무엇이냐" 등을 물었다.

A씨는 사용한도와 비밀번호 등을 알고 있었지만 시간을 끌기위해 ARS로 조회하는 척 했다. 그 남성은 A씨에게 "끼고 있던 반지를 빼 달라"고 말했다. A씨가 "아이들이 집에서 기다린다"고 말하니 "니하고 할까 딸 하고 할까"라며 위협했다.

겁에 질려 있는 A씨를 향해, 한눈에 봐도 20대인 B씨는 자신의 나이를 51세라고 속였다. A씨가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다. B씨는 "여자친구가 임신했다가 죽었는데 오늘이 기일이다"며 "그래서 술을 마셨는데 욱해서 그런다"고 답했다.

A씨가 "그 여친이 이 상황을 보면 마음이 안 좋을텐데 제발 이러지 말라"며 달랬다. B씨는 A씨의 말에 마음이 풀어졌는지 "나가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A씨는 일단 좁은 공간에서 나가야 살 길이 있겠다 생각하고 이에 응했다.

당시 길에는 사람들이 1~2명씩 간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A씨와 그 남성은 원룸에서 약 500미터 거리를 걸어갔다. 그 남성은 "모텔에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A씨는 "싫다"며 거부했다.

순찰차에 타고 있던 경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다

500여 미터를 이동한 상황에서 A씨는 조금만 더 가면 파출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순간 마침 순찰차가 보였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빛을 보는 거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의 집주변에서 그렇게 고함을 질렀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상황이 떠올라 경찰에 도움 요청을 망설였다. 당시 순찰차에는 부산 해운대경찰서 재송지구대 소속 서준표 경위와 송상호 경사가 동승해 있었다.

서준표 경위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12 순찰차에 송상호 경사와 동승한 후 순찰 업무를 하고 있던 중 해운대 경찰서 뒤쪽의 어두운 골목길로 남녀가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좁은 골목길이어서 간격은 1미터도 안됐습니다. 지나치면서 쳐다보니 나이 많은 여자와 젊은 남자가 어색한 표정으로 있는 게 수상했습니다. 두 사람을 지나쳐 10여 미터를 나아간 상황에서 검문을 하기 위해 차를 세운 후 내리는 순간 피해자가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면서 뛰어왔습니다."

그 남성은 A씨가 순찰차로 뛰어가면서 고함을 지르자 지체 없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운전석 옆에 있던 송상호 경사는 차에서 내린 후 곧 바로 추격에 나섰다. 500여 미터 남짓 도주하던 그 남성은 끝내 두 경찰관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하고 붙잡혔다.

서 경위와 송 경사는 B씨를 체포한 후 A씨에게 "범인이 맞냐"고 물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A씨는 "그 남성은 범행 당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체포 당시에는 모자를 벗고 있어서 순간 헷갈렸다"며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은 그대로여서 범인이 맞다고 지목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며 태연하게 부인했지만 A씨의 범인 지목에 따라 긴급 체포된 후 해운대 경찰서 재송지구대로 압송됐다. A씨가 머리채를 잡힌 채 원룸 주차장으로 끌려가던 시간에서 50여 분이 경과한 11시 10분경이었다.

강도 강간 미수라는 강력 범죄가 일어났으나 A씨의 침착한 대응과 해운대 경찰서 재송지구대 경찰의 예리한 눈초리가 더 이상의 큰 범행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A씨는 기자에게 제보한 글을 통해 "정말 이런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면서, "그날 저를 구해주신 재송지구대 서준표 외 지구대 직원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거듭 고마움의 뜻을 표했다.

서준표 경위는 "피의자는 젊은 남자이고 건장한 체구이다 보니 검거하는 데 애를 먹었다"면서, "골목길로 도망가기에 죽을 둥 살 둥 쫓아가 기어이 잡은 후 강도강간 미수 현행범으로 경찰서 형사당직에 넘겼다"고 밝혔다.

서 경위는 이어 "사건 다음날 여러 매체에서 보도가 많이 나왔다"며 "댓글을 읽어보니 독자들이 제2의 오원춘 사건을 막았다고 칭찬 글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피의자는 다수의 전과가 있어 조기에  검거가 되지 않았다면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경위는 마지막으로 "오원춘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장님은 물론이고 부산경찰청장님 그리고 저희 서장님도 계속해서 '시민안전 최우선'을 거듭 강조해 직원들도 이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기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지방검찰청은 피의자인 B씨를 강도강간미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재송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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