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정부에서 또다시 '항명 사태'가 발생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파동 2년여 만에 이번에는 청와대 내부에서 비서실장의 지시를 민정수석이 거부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항명'의 당사자인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의를 표했고, 청와대도 김 수석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 건의를 하겠다고 했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김 수석의 처신을 둘러싼 정치적  파문이 커지고 있다. 또 공직기강이 무너진 청와대의 인적쇄신이 불가피해 보여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상식을 벗어난 청와대 민정수석의 '항명'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김 수석은 9일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파문을 다루는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했다. 이날 국회 운영위는 김 수석의 출석 문제를 놓고 파행을 겪다 여야가 어렵게 합의를 이뤘고, 이에 김 실장은 김 수석에게 국회에 나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김 수석은 "(야당의) 정치공세에 굴복하지 않겠다"라며 버텼다. 국회의 여야 합의는 물론, 공직자가 직속상관의 지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침묵하던 김 수석은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해명을 내놨다. 민 대변인은 "김 수석은 '지난 25년간 특별한 경우 외에는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정착돼 왔다, 정치공세에 굴복해 (국회에 출석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출석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이 도리"라며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김 수석의 해명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야당의 정치공세에 굴복해 민정수석의 운영위 출석이라는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정치적 파장과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직접 총대를 멨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김 수석의 말대로 청와대 입장에서는 일단, 이날 운영위에서 예상됐던 야당의 파상공세를 민정수석의 불출석과 사퇴로 막을 수 있게 됐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정윤회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한아무개 경위를 민정수석실이 회유했다는 의혹을 집중 추궁할 예정이었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김 수석의 출석을 촉구하면서 "청와대를 경호하는 서울경찰청 101단 소속원이 문건유출 혐의자로 지목됐던 최아무개 경위와 한아무개 경위를 협박했고, 이를 민정수석실에서 지시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라고 밝혔다.

김영한 사퇴 파동은 준비된 시나리오?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해 9일 오전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에 대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자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국회 나온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해 9일 오전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에 대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자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수석의 출석거부→해임→운영위 파행 및 회유의혹 무마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여권이 준비한 사전 시나리오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특히 김 수석이 국회에 나오라는 여야의 합의는 물론 비서실장의 지시까지 거부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혼자만의 판단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가 잃은 것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반대의 시각도 있다. 우선 김 수석의 항명으로 국정을 이끌고 나가야 할 청와대의 공직기강이 붕괴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또 '영이 서지 않는' 김기춘 실장도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돼 거취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실장은 지난 2일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에서 "기강이 문란한 정부조직이나 집단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 비서실 기강과 규율을 더욱 확립해서 모든 정부기관의 모범이 돼야한다"라며 군기 잡기에 나섰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만에 청와대에서 가장 핵심부서 중 하나이자 공직기강을 다잡는 데 앞장서야 할 민정수석실의 수장이 '일탈'을 했다.

김 실장은 이날 운영위에서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운영위 소속인 한 야당 의원은 "김 실장도 황당무계하다는 표정이었다, '공직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김 수석의 처신을 놓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반응이 나왔다. 민경욱 대변인도 "이번 일은 청와대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상황"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비판도 거세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공직기강의 문란함이 생방송으로 전 국민에게 중계된 초유의 사태"라며 "청와대 내부시스템이 철저하게 망가졌고, 근무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김기춘 실장의 약속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무참히 짓밟혔다"라고 비판했다.

'문고리 3인방' 중 맏형격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이날 운영위 처신도 논란거리다. 김 실장은 정윤회 문건 유출에 사과하면서 거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김 실장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이 비서관은 사과를 거부했다. 다만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할 따름"이라는 대답만 했다.

유임 가능성 점쳐지던 김기춘... '항명 사태'로 교체?

김 수석의 항명 사태는 박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우선 청와대 인적쇄신 요구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 유출을 '개인적 일탈'로 마무리 지으면서 김 실장은 책임론에서 비켜나 박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 실장이 청와대 내부 단속에 실패하면서 청와대 비서실 장악력에 문제점을 드러낸 데다 이번 사태로 정윤회 문건 유출 및 사후 대처 과정에서 불거졌던 책임론이 다시 부각되면서 거취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박 대통령도 오는 12일로 예정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서실의 항명사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입장을 직접 밝혀야 한다"라고 압박하고 있다.

또 '정윤회 문건' 사태를 검찰의 '면죄부'로 마무리 짓고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경제 및 남북관계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정동력을 회복하겠다는 구상도 흐트러지게 됐다.


태그:#김영한, #김기춘, #항명
댓글10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