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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에 곡식이 혀 빼물고 자라고 하늬바람에 곡식이 모질어진다'는 말이 있다. 모두 가을바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갈바람과 하늬바람이 저만치 간 지 오래다.

제주 서북 애월(涯月)에는 매서운 된바람이 불고 있었다. 된바람에 어지간히 시달렸는지, 바다도 게거품을 물었다. 바다가 온통 새하얗다. 하귀, 구엄, 신엄, 고내의 달 모양 해안절벽 해안 길은 된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 나온 바닷물로 흥건하였다. 이게 제주 애월의 겨울이다.

하가리는 말방아와 오래된 초가가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마을을 휘감고 있는 돌담 또한 원형이 잘 보존된 옛담이다
▲ 하가리 돌담마을 하가리는 말방아와 오래된 초가가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마을을 휘감고 있는 돌담 또한 원형이 잘 보존된 옛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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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리의 옛 이름, 알더럭

모진 바람을 견디며 수백 년 지탱해 온 마을이 있다. 애월읍 하가리(下加里), 고려 적부터 화전민이 모여 살던 동네로, 조선 초에 이웃마을 고내리에서 분리되어 가락리(加樂里)로 불렸다. 세종 때에 윗동네, 상가락(웃더럭)과 아랫동네, 하가락(알더럭)으로 나뉘더니 정조 때부터 어느새 '락'은 빠지고 상가리와 하가리로 불려 오늘에 이르렀다.  

하가리의 옛 이름은 알더럭(아랫더럭). 가락은 더럭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더는 더할 가(加)자를, 럭은 비슷한 소리, 락(樂)자를 빌려 더럭은 가락으로 되었다. 기록이 없다면 이제 '더럭'을 유추할 끈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이 마을 끝에 자리 잡은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가 마지막 끈을 붙잡고 있다.

마을사람들의 노력으로 폐교의 위기를 벗어났다. 몇 년 전 모기업의 후원으로 꽃단장하였다. 강렬한 색상이 눈길을 잡지만 무엇보다 더럭이라는 옛 이름을 달고 있는 학교가 폐교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더욱 애틋하게 한다
▲ 더럭분교 정경 마을사람들의 노력으로 폐교의 위기를 벗어났다. 몇 년 전 모기업의 후원으로 꽃단장하였다. 강렬한 색상이 눈길을 잡지만 무엇보다 더럭이라는 옛 이름을 달고 있는 학교가 폐교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더욱 애틋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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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럭분교는 1946년 하가국민학교로 출발하였다. 제주 4·3은 육지의 한국전쟁처럼 많은 것을 앗아갔다. 하가국민학교도 이때 건물이 전소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 뒤, 1954년 더럭국민학교로 새출발했다. 교명이 하가와 상가를 아우르는 더럭으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 원래 같은 마을이었던 상가리(웃더럭)와 함께 하려는 것이다. 학생 수 감소로 1996년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으로 변경됐다.

몇 년 전 폐교의 위기를 맞다가 도(道) 지원 아랫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폐교의 위기를 벗어났다. 공동주택을 지어 외지인에게 임대해 주는 공동주택건립사업을 벌인 것이다. 물론 자녀가 더럭분교에 입학하는 조건을 내세웠다. 1차 사업 성공에 이어 2차 공동주택도 완공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모기업의 후원으로 알록달록 꽃단장하여 애월의 명소가 되었다. 강렬한 색상이 눈길을 붙잡지만 그 보다 더럭이라는 옛 이름을 달고 있어 곰살궂어 보인다.   

밭담은 구좌 하도리, 집담은 애월 하가리

밭담을 보려면 구좌읍 하도리로 가고, 집담을 보려면 하가리로 가라했다. 제주 어딘들 돌담이 없으련만, 하가리 돌담은 돌담 중에 으뜸이다. 벌레 먹은 듯 구멍이 숭숭 나고 박박 얽은 곰보마냥 울퉁불퉁 검은 돌을 하나둘 모아 밭담을 만들고 집담을 쌓았다. 

거릿길에서 집 앞으로 나있는 올렛길은 올렛담이 안내한다. 집 코앞에까지 쌓여있어 검은 돌은 오는 이를 반기는 검둥이 개를 보는 것 같다
▲ 하가리 올렛담 거릿길에서 집 앞으로 나있는 올렛길은 올렛담이 안내한다. 집 코앞에까지 쌓여있어 검은 돌은 오는 이를 반기는 검둥이 개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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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튀튀한 돌은 어디를 갖다놓아도 튀지 않아 미움 받지 않고 어느 곡식, 어느 집과도 잘 어울린다. 촘촘히 이어진 돌담, 바다의 한숨 같고 대지의 탄식 같은 제주바람도 이 안에서는 숨을 죽였다. 구멍 난 돌담 사이로 용케 들어왔어도 기세는 한풀 꺾인 것이다.

 밭담 안에서 브로콜리가 된 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담 구멍으로 들어온 바람은 밭 안에서 갈 길을 잃고 숨이 죽는다
▲ 하가리 밭담 밭담 안에서 브로콜리가 된 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담 구멍으로 들어온 바람은 밭 안에서 갈 길을 잃고 숨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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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덕택에 애월의 월동작물인 양배추와 마늘, 브로콜리 잎쪽파는 된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세가 등등하다. 집담 위로 빼꼼히 고개 들고 있는 하귤과 육지의 감나무마냥 지붕 위까지 솟은 당유자, 밭담 안에서 조용히 익어가는 감귤도 찬바람 맞고 농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폭낭과 담이 뒤엉켜 한 몸이 되었다. 아랫단은 잔돌로 여러 겹 쌓고 윗단은 외줄로 쌓은 백켓담이다.
▲ 하가리 백켓담 폭낭과 담이 뒤엉켜 한 몸이 되었다. 아랫단은 잔돌로 여러 겹 쌓고 윗단은 외줄로 쌓은 백켓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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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얼마나 돌담이 많기에 잣동네라 불리었을까? 잣은 성(城)의 옛말, 작은 돌이 성처럼 쌓여 있다 하여 잣동네로 불린 동네다. 아니나 다를까 민회관(民會館)을 지나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마을이 돌담으로 시커멓다. 돌담은 흑룡이 승천하려 몸부림치다 수천 년 묵은 용 비늘을 툭툭 떨어트린 자국마냥 온 동네를 휘감았다.

돌담은 흑룡이 몸부림치다 툭툭 떨어트린 용비늘마냥 여기저기 흩어져 밭을 나누고 집과 집을 이었다
▲ 하가리 돌담 돌담은 흑룡이 몸부림치다 툭툭 떨어트린 용비늘마냥 여기저기 흩어져 밭을 나누고 집과 집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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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늘'을 피해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면 폭낭 그늘이 드리운 마을 한가운데에 이른다. 이 나무 옆 세 갈래길 모퉁이에 제주에 두 개밖에 없다고 마을사람들이 자랑하는 말방아가 있다. '잣동리말방아'다. 

하가리 마을의 중심 길이라도 되나보다. 돌담길이 마을 한가운데로 곧게 뻗어 있다. 이 길 끝에 세 갈래길이 나오고 길모퉁이에 말방앗간이 자리하고 있다
▲ 하가리 돌담길 하가리 마을의 중심 길이라도 되나보다. 돌담길이 마을 한가운데로 곧게 뻗어 있다. 이 길 끝에 세 갈래길이 나오고 길모퉁이에 말방앗간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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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방아 앞에 세워진 설명문에는 "이 말방아는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의 잣동네라는 동네이름을 따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해안마을을 뱅둘러 트여 있는 일주도로에서 하가리로 들어서면 잣동네가 있고 이 동네 세갈랫길에 '잣동리 말방아'가 세워졌다"라고 되어 있는데 읽기에 좀 불편하다. 제주공항이나 박물관에 붙어있는 설명문처럼 들린다. 다른 마을 얘기하듯 하고 있는 것이다.

잣동리 말방아가 있는 초가, 말방앗간이다. 설명문을 읽고 있으면 다른 마을 얘기하는듯하여 마음이 언짢아진다
▲ 잣동리 말방앗간 잣동리 말방아가 있는 초가, 말방앗간이다. 설명문을 읽고 있으면 다른 마을 얘기하는듯하여 마음이 언짢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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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동네라는 동네가 따로 있고 이 말방아는 그 동네에서 가져온 것처럼 읽힌다. 내가 난독증에 걸린 것인가? "이 말방아는 우리 마을, '잣동리'에 있던 것으로 이름도 거기서 유래하여 '잣동리 말방아'라 지었다"라고 해야 될 것 같다.

돌담박물관 같은 하가리 문시행가옥

말방앗간에서 올렛담 골목 따라 조금 가면 문시행가옥이 나온다. 살림채인 안거리와 밖거리, 쇠간(외양간)이 있고 변소인 통시와 텃밭, 우영이 딸려있다. 우영과 통시를 싸고 있는 담을 각각 우영담, 통싯담이라 하고 안팎거리, 쇠간 몸체에 쌓은 담을 축담이라 한다. 바람이 들지 않게 모두 지붕까지 담을 쌓아 잔뜩 웅크린 모양이 되었다. 

안거리 뒤편에는 두둑이 잣담이 쌓여 있다. 잣담은 작은 돌을 성처럼 쌓은 담을 말한다. 지역에 따라 잣벡담, 사그락담, 보말담으로 불린다. 안거리 몸체는 축담을 지붕까지 쌓아 올렸다
▲ 하가리문시행가옥 잣담과 안거리 축담 안거리 뒤편에는 두둑이 잣담이 쌓여 있다. 잣담은 작은 돌을 성처럼 쌓은 담을 말한다. 지역에 따라 잣벡담, 사그락담, 보말담으로 불린다. 안거리 몸체는 축담을 지붕까지 쌓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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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낭 오른쪽에서 안거리 뒤편까지 작은 돌을 마치 성처럼 쌓아 바람 불면 자글대는 잣담(잣벡담, 사스락담, 보말담)이고 나머지는 한 줄로 쌓은 외톨이 외담이거나 겹겹이 쌓은 겹담(접담)이다. 밖거리 담은 아랫도리는 잔돌로 쌓고 윗도리는 큰 돌로 쌓은 잡굽담이다. 누워있는 돌담마냥 마당 한쪽 구석에 짚을 보관하기 위해 평평하게 돌을 깔아 만든 눌굽도 있다.

밖거리에 붙은 담은 작은 돌은 아래뿌리에 다지고 그 위에 큰 돌을 얹은 잡굽담이다
▲ 하가리문시행가옥 잡굽담 밖거리에 붙은 담은 작은 돌은 아래뿌리에 다지고 그 위에 큰 돌을 얹은 잡굽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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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리는 돌담박물관 같다. 환해장성, 잣성담, 원담 말고는 모든 담을 다 볼 수 있다. 그마저 애월바닷가에 나가면 환해장성과 원담을 볼 수 있고 윗동네 상가리, 중산간지역에 오르면 잣성담도 볼 수 있다. 

형체가 사라지면 이름도 사라진다. 흔하디 흔하다는 제주돌은 이제 귀한 몸이 되었다. 구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돌담이 구하기 쉽고 만들기 쉬운 시멘트벽으로 대체되면 우리가 부르는 돌담의 이름도 하나씩 사라질지 모른다.

밭담과 원담, 축담, 환해장성은 제일 많이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하가리는 돌담의 원형이 그런 대로 잘 보전되어 등록문화재 후보로도 올랐었다. 보존의 가치가 있다는 얘기인데 보존에는 희생과 비용이 수반된다. 보존과 희생, 마을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합리적인 보전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천만 번 또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 사랑해라 했던가? 까무잡잡하고 벌레 먹은 돌담, 천만번 또 보아도 기분 좋아진다면 이는 진정 사랑이다. 난 돌담과 사랑에 푹 빠졌다.

덧붙이는 글 | 2014년 12월 5일부터 12월 6일에 다녀와 쓴 글입니다.



태그:#하가리, #더럭분교, #문시행가옥, #잣동리말방아,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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