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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햇볕에 몸을 맡긴 수제 김. 지난달 23일 전남 강진군 마량면 서중마을에서 만난 풍경이다.
 바람과 햇볕에 몸을 맡긴 수제 김. 지난달 23일 전남 강진군 마량면 서중마을에서 만난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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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먹던 추억 속의 김을 만났다. 밥 한 숟가락에 올려 먹던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그 김이다. 향기도 일품이다. 생김새는 투박하고 구멍이 숭숭 뚫려 볼품없어 보이지만 맛은 그만이다. 비교를 거부하는 맛이다.

'남도답사 1번지'로 알려진 전남 강진의 작은 어촌마을에서다. 마량포구 언저리에서 강진만을 향해 고개를 내민 서중마을이다. 겨울이면 햇볕에 김을 말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옛 김의 맛을 재현하고 있는 것.

지난달 23일 서중마을을 찾았다. 바닷바람이 거칠었다. 기온도 낮아 한겨울 추위를 견디며 주민들이 김 뜨기 작업을 하고 있다. 대를 엮어 만든 발장이 펼쳐져 있고, 거기에 네모 난 성형 틀을 얹었다. 그 틀에 미리 채취해 놓은 물김을 곰비임비 붓는다.

네모 난 성형 틀에 올려진 물김. 이 틀을 건조장에 붙여 햇볕과 바람에 말린다.
 네모 난 성형 틀에 올려진 물김. 이 틀을 건조장에 붙여 햇볕과 바람에 말린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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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이 발장에 물김을 붙인 성형 틀을 붙이고 있다. 지난달 23일 강진 서중마을에서다.
 마을 주민이 발장에 물김을 붙인 성형 틀을 붙이고 있다. 지난달 23일 강진 서중마을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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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으면서도 고르게 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수숫대와 짚으로 씨줄날줄 촘촘히 엮은 선건장에 김발을 꼬챙이로 꽂는 손길도 조심스럽다. 다른 한켠에선 김이 말라가고 있다. 조금 전 부어놓은 물김이 겨울 햇볕에 물기를 빼앗기고 있다.

"발장을 너무 팽팽하게 잡아 당기믄 안돼. 김이 마르면서 터져 불거든. 그런다고 너무 느슨하게 하믄 김이 매끄럽지 않고, 오글오글 해져 불거든. 어렵겄지만, 적당히 해야 돼. 뭣이든지. 그것이 기술이여."

15살 때부터 바다에 나갔다는 정일선 할아버지의 얘기다. 의욕보다는 오랜 경험과 요령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너무 팽팽하지 않게, 그렇다고 느슨하지 않게 붙여야 해." 정일선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너무 팽팽하지 않게, 그렇다고 느슨하지 않게 붙여야 해." 정일선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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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마을의 재래식 김 만들기 작업은 새벽 6시부터 시작된다. 미리 뜯어서 씻어 놓은 물김을 김발에 올린다. 물김이 머금은 물기가 빠지면 건조대에 널어 햇볕과 바람에 말린다. 말리는 시간은 8시간 정도. 오후 2〜3시쯤 돼서 김을 뜯는다. 모두 손으로만 하는 지난한 일이다.

오전 11시가 넘자 넓게만 보이던 건조장이 김 발장으로 바뀌었다. 오늘같이 햇볕과 바람이 좋은 날엔 4시간 정도만 말려도 거뜬하다.

따닥- 따닥- 딱딱-. 서중마을 앞 바다에 떠있는 가막섬의 절경에 취해 있을 때였다. 가막섬은 상록수로 우거진 섬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작고 가늘던 소리가 이내 굵어진다. 소나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비슷하다.

"김이 말라가는 소립니다. 물기가 빠지면서 바삭바삭 말라가는 거예요. 저 소리가 잠잠해지면 김이 거의 다 말라간다는 얘기고요. 소리가 그치면 김이 다 말랐다는 뜻입니다."

서중마을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남원씨의 얘기다.

서중마을 주민들이 발장에 수제김 성형 틀을 널고 있다. 지난달 23일 모습이다.
 서중마을 주민들이 발장에 수제김 성형 틀을 널고 있다. 지난달 23일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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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햇볕에 말라가고 있는 수제김. 바닷가 마을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바람과 햇볕에 말라가고 있는 수제김. 바닷가 마을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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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가 김 한 장을 뜯어 건넨다. 김이 제법 두툼하다. 구멍도 숭숭 뚫려 있다. 그럼에도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다. 투박해 보여도 군침이 먼저 돈다. 어릴 적 먹던 그 김이다. 김 한 장이 머금은 진한 갯내음과 함께 고소한 맛과 향이 입안에 퍼진다.

햇볕에 말렸다고 해서 '해로 달인 수제 김'이다. 김 맛을 아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고 있다. 가격은 100장 한 속에 3만 원에 팔린다. 일반 김보다 4배 가량 비싼 값이다. 그래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생산량이 부족한 탓이다.

수제김 생산은 날씨가 거들어야 한다. 이번 겨울은 날씨가 고르지 못한 탓에 지금까지 네 번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이날도 오후가 되자 구름이 일더니 금세 해를 덮어버렸다. 주민들은 오후 작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서중마을에서 생산한 수제김은 9000장, 90속에 불과했다. 이 마을에서는 올 겨울 2만 속의 수제김을 생산할 계획이다. 날씨가 도와줘야 가능한 일이다.

서중마을 주민들은 앞바다에서 김을 지주식으로 기르고 있다. 옛 방식 그대로다.
 서중마을 주민들은 앞바다에서 김을 지주식으로 기르고 있다. 옛 방식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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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가막섬과 아름다운 항구 마량항. 서중마을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여행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가막섬과 아름다운 항구 마량항. 서중마을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여행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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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김은 날씨가 좌우하지만 맛은 원초에서 결정된다. 탐진강과 만나는 강진만은 천혜의 김 서식지로 정평이 나 있다. 영양분이 그만큼 풍부한 덕분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에서 김양식을 해온 이유다.

주민들이 김을 키우는 방식도 옛날 지주식 그대로다.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 영양분을 흡수하고, 물이 빠지는 썰물이 되면 햇빛을 보며 자란다. 그렇게 하루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을 체험하며 건강한 김으로 자란다.

다른 지역의 김과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맛과 향, 빛깔을 뽐낸다. 식감이 부드러우면서 달보드레한 맛을 지니고 있다. 국립 수산물 품질관리원도 친환경 무산김으로 인증했다. 최적의 자연환경에서 옛 방식 그대로 생산하고 건조한 김이다.

서중마을 주민들이 선건강에 김발을 꽂고 있다. 지난달 23일 모습이다.
 서중마을 주민들이 선건강에 김발을 꽂고 있다. 지난달 23일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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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제김, #서중마을, #강진, #가막섬, #마량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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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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