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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영 연세대 총장님께.

안녕하세요? 정갑영 총장님, 저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송준석입니다.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2014년이 가고, 새해가 왔습니다. 총장님께 우리학교 기숙사 우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편지를 씁니다. 지난 12월에 생활관, 기획실, 예산팀 등의 대학 본부 관계자들과 이미 여러 차례 우정원 기숙사비에 관해 면담을 진행했기에 그 이유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는 2013년 4월 부영그룹에게 100억 원을 기부받아 2014년 10월 우정원 기숙사를 새로 지었습니다. 설렘과 기대로 기숙사가 개관되기를 기다린 저는 지금 실망감과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우정원 기숙사비가 턱없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2015년 1학기 우정원 기숙사비는 1실당 월 69만 원에 달합니다. 정문 주변 원룸이 1실당 약 56만 원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수준입니다.

학교 주변 원룸보다 비싼 기숙사비 69만 원

연세대학교에 새로 지어진 우정원 기숙사, 부영그룹에게 100억의 건축비를 기부받았다.
 연세대학교에 새로 지어진 우정원 기숙사, 부영그룹에게 100억의 건축비를 기부받았다.
ⓒ 민달팽이 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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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2년 3월 입학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월 40만 원에 달하는 주거비를 부담해야 했던 저는 2010년도부터 계속되었던 총학생회와 민달팽이 유니온의 기숙사 건립 운동에 당연히 참여했습니다. 주거 문제는 제 문제였고 친구들, 선후배들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기숙사 건립 운동을 한다 하더라도 당장 지어질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압니다. 그래도 앞으로 이 학교를 다닐 후배들은 저렴하고 안전한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당시 저와 함께 기숙사 건립 운동을 한 친구들은 '착한(비용) 기숙사'를 요구했습니다. 앞으로 신축될 기숙사는 학교 돈으로 지어서 안전하고 저렴한, 또 그 건립 과정 역시 민주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줄곧 해왔습니다. 기숙사를 지어준 기업에게 임대료를 주는 민간투자사업 방식인 BTL이나 운영권을 주는 BTO는 기숙사에 대한 임대료나 기업의 운영 수익에 대한 부담을 학생들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BTL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SK 글로벌 학사처럼 말입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연세대학교 기숙사 건립 운동은 몇 해를 걸쳐 2012년 말, 드디어 총장님이 직접 기숙사 건립을 약속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2013년 4월 부영그룹에게 100억 원을 기부받아 '우정원'이라는 기숙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학생들의 마음을 이제나마 알아준다는 사실에 힘이 났습니다. 비싸고 환경이 좋지도 않은 신촌의 원룸, 하숙가를 전전하던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학교 본부도 그리고 정갑영 총장님도 지방 학생들이 집 때문에 격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학교로서 그 책임을 다한다는 사실도 기뻤습니다.

그러나 민자 기숙사 비용에 관한 책정 근거를 학교 측에 물으면 대답은 늘 '경영상의 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건축기금으로 기숙사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기숙사비에 대한 부당한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2014년 10월, 우정원이 완공되었고 입사생을 받게 되면서 환상은 모두 깨졌습니다. 2인실 기숙사비가 1실 당 72만 원으로 발표되었습니다. 3인실은 조금 낮은 69만 원이었습니다. 연세대 정문 주변에 있는 원룸 1실당 56만 원에 비하면 더 비싼 가격입니다. 한 방을 나눠쓰니 1인당 부담이 낮아지기는 하겠지만 대학 기숙사가 36만 원이 넘는 수준인 것입니다. 똑같이 학교 땅에, 학교 돈으로 지은 무악학사의 기숙사비 25만 원과 비교되는 금액입니다. 직영 기숙사인 우정원 기숙사비를 책정할 때 민자 기숙사의 기숙사비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학교 측은 밝혔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 입주할 수 있을까요?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은 연세대학교에 기숙사 기금을 기부하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지방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나아가 대학과 기업이 손잡고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산학 협력의 좋은 본보기가 되길 희망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정원 기숙사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지방 학생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부까지 받아서 만든 기숙사가 대체 무엇 때문에 학교가 지은 기숙사보다 비싼 걸까요? 학생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012년 사립대학 이월·적립금 현황표를 보면 우리 학교의 대학적립금은 이화여대에 이은 2위입니다. 이처럼 재정 구조도 탄탄한 우리 학교가 어떤 이유 때문에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걸까요?

기부금에는 항상 목적이 있습니다. 장학금, 특정 건물의 건축, 도서 구입 등등 기부자들은 자신의 뜻을 가지고 기부를 합니다. 우리 학교가 기부 받은 기숙사 건축 기금이 이중근 회장님의 뜻대로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을 위하여 쓰이지 못하고 있는 건 문제입니다. 기부자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학교에 누가 기부를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기부자의 뜻을 제대로 살리고,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되게 하려면 지금의 우정원 기숙사 비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떤 학생들도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가 되어야 합니다.

연세대학교가 일류를 선도하는 학교가 되려면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높은 등록금, 주거 비용 등에 학생들이 시달린다면 그만큼 우리 학교는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연세대학교를 위한 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왜 우정원 기숙사가 주변 원룸보다 비싼지 기숙사비 책정 근거를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기부금을 100억 원 받고도 지은 기숙사가 왜 바로 옆 무악학사보다 10만 원이 더 비싸야 하는지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지난 5일, 비서실장님을 통해 우정원 기숙사비에 대한 요구를 전달하고 왔습니다. 새해에 더 좋은 얼굴로 만나뵙길 기대하며 이 편지에 대한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제52대 총학생회장 송준석 올림.


태그:#연세대, #기숙사, #대학생, #주거권,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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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을 외치며 청년 세입자 대상의 교육, 상담, 현장대응 그리고 제도개선을 위한 실천행동을 함께 합니다. 무법지대와 다름없는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세입자 청년들이 겪는 부당한 관행에 2013년부터 함께 대응해왔고, 보증금 먹튀 대응 센터 운영 및 법안 발의 등 세입자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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