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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간판과 작은 현관문의 동성아트홀 입구,
 소박한 간판과 작은 현관문의 동성아트홀 입구,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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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이자 첫 주말이 시작되던 지난 2일 저녁, 대구에서도 가장 번화가인 동성로는 늘 그렇듯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차가운 날씨에 새해의 흥분도 조금은 가라앉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아직은 채 열기가 식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른바 '소비도시' 대구의 중심 상권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너 대구역 방향으로 들어서니 사뭇 풍경이 다르다. 같은 길인데도 한산한 모습이 대조적이다. 마치 도로가 큰 강이라도 되는 듯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이 거리 또한 대구의 중심 상권이었다. 지금은 지나는 행인들의 숫자만 봐도 상권이 가라앉았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옛 화려함을 간직한 바로 이 거리 한쪽에 대구 유일의 예술영화 전용관인 동성아트홀이 있다.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여자 분이 아닐까 했는데 약속 장소인 극장 앞에 나타난 사람은 덩치 크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바로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인 동성아트홀릭 매니저 김효민씨다. 동성아트홀릭은 동성아트홀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커뮤니티다.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 온라인 카페로 둥지를 틀고 있고, 회원수만 2만 명 가까이 된다. 조그만 극장의 팬카페라고 하기엔 꽤 규모가 크다. 김효민씨는 동성아트홀릭의 9대 매니저다.

동성아트홀 관객 커뮤니티인 동성아트홀릭 김효민 매니저
 동성아트홀 관객 커뮤니티인 동성아트홀릭 김효민 매니저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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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동성아트홀의 근황이 궁금했다. 동성아트홀은 대구 유일의 예술영화 전용관으로써 다양한 예술영화를 상영해왔다. 한 해 약 6천만 원의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지원금을 받아 운영해왔는데, 지난해 9월 '운영실적 저조'를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고 만 것이다. 이미 동성아트홀이 1월 중에 폐관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1월이 극장 임대 재계약 시기라 그런(1월 중에 폐관할지 모른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극장주와 건물주가 여러 가지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밀린 임대료가 많아 보증금도 거의 다 까먹은 상황이다. 앞으로 뚜렷한 대책이 없는 한 폐관할 수도 있는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폐관 위기 분명... 월 1~2만 원 정기회원 100명 모집 목표"

동성아트홀의 위기는 그의 말처럼 현재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만 사실 예술영화 전용관이 영진위 지원 없이 독자생존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는 4월 영진위의 지원금 공모가 있을 예정이지만 지난해처럼 수익 실적이나 사업성을 기준으로 심사한다면 선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 와중에 관객 커뮤니티인 동성아트홀릭은 폐관만은 막아야 한다며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처음엔 후원금을 모금해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식 단체나 기업도 아닌 관객 커뮤니티가 모금활동을 벌이기엔 부담이 컸다. 후원금을 누가 모으고 어떻게 관리할지 책임은 누가 질지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동성아트홀을 알리는 게 먼저이겠다 싶어 지난 연말에 콘서트를 열었다."

매표소에서 본 극장 입구 모습, 사방에 포스터로 꾸며져 있다. 동성아트홀은 205석 단관의 작은 극장이다.
 매표소에서 본 극장 입구 모습, 사방에 포스터로 꾸며져 있다. 동성아트홀은 205석 단관의 작은 극장이다.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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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0일 동성아트홀릭은 동성아트홀에서 재능기부 형태의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홍보에서 섭외까지 동성아트홀릭 식구들이 힘을 모았다. 밴드를 하는 지인들의 도움도 받고 직접 거리에 나가 홍보전단도 돌렸다. 당장 해결된 것은 없지만 콘서트를 준비하고 여는 동안 회원들의 의지만큼은 더 높아졌다고 한다.

현재 극장과 동성아트홀릭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정기회원 모집이다. 매월 1~2만 원의 회비를 내고 그 달 상영작의 티켓을 받는 것이다. 100명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극장주도 최소한의 월세만 마련된다면 극장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정기회원 수익은 극장을 살리는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사실 수도권도 아닌 지방도시에서 예술영화 전용관이 10년 이상 버텨온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렇지만 동성아트홀은 그저 버텨온 것이 아니다. 205석 단관임에도 연간 200여 편을 상영하고 있을 만큼 어떤 상업 극장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그램도 알차다. 재작년의 경우 우수활동을 인정받아 영진위에서 인센티브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작년에는 지원대상에서 탈락했다.

재작년엔 우수활동 인센티브... 작년엔 '실적 저조' 지원 탈락

극장 입구에 걸린 상영시간표,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많은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다.
 극장 입구에 걸린 상영시간표,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많은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다.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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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3년 전 동성아트홀릭 매니저이던 친구의 소개로 회원 활동을 시작했다는 효민씨는 지난해 9월부터 매니저를 맡고 있다. 동성아트홀릭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소개를 부탁했다.

"10여 년 전쯤 출발했다. 말 그대로 동성아트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다. 처음엔 관객들의 모임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독서토론회, 영화제작 모임, 시나리오 쓰기 모임, 영화상영 모임, 리뷰 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비롯해 정기상영회, 자체 영화제까지 벌이고 있는 큰 규모의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최근엔 소모임을 통해 회원으로 가입하고 이를 통해 극장(동성아트홀)을 알게 되는 분들도 많다."

효민씨는 현재 36세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다소 영화와 관련 없을 것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단편영화나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동성아트홀릭에서는 시나리오 쓰기 소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맡게 된 매니저 활동에 대해 물어봤다.

"카페 관리와 매월 있는 정기모임 준비가 (매니저의) 주된 역할이다. 모임엔 늘 40~50명이 참가하는데 함께 영화 보고 뒤풀이도 한다. 관객을 대표해 극장 측과 협의하는 것도 매니저의 역할이다. 그런데 극장 사정이 어렵다보니 요즘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의 비중이 크다. 어떻게든 극장은 살려보려고 노력 중이다."

"극장 살아남아야 선택 폭 넓어져... 일단 한번 와보시라"

극장 매표소라 하기엔 그 꾸밈이 초등학교 뒷 벽 마냥 아기자기하다.
 극장 매표소라 하기엔 그 꾸밈이 초등학교 뒷 벽 마냥 아기자기하다.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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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어렵긴 다른 지역 예술영화 상영관도 마찬가지다. 10월 초엔 경남 유일의 예술영화 상영관인 거제아트시네마가 폐관했고, 안동 중앙아트시네마도 폐관 위기에 놓여 있다. 대전아트시네마도 어렵다고 한다. 수도권 외에는 광역자치단체별로 한 곳 있을까 말까한 예술영화관들이 전반적으로 존폐 위기에 있는 것이다. 동성아트홀은 그중 시설도 오래됐고 운영에 어려움도 많지만 그나마 관객 커뮤니티가 가장 활발해 여러 가지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영화 <명량>이 엄청난 흥행 대박을 기록했지만 스크린 잠식으로 관객들은 다른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 문화는 다양성이다. 멀티플렉스가 보편화되고 여기에 예술영화 상영관도 없지 않지만, 정작 상영 편수는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다. 동성아트홀처럼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이 살아남아야 관객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무엇보다 일단 한번 와보면 좋겠다. 오면 느낄 수 있다."

대구시민들에게 전하는 그의 마지막 당부처럼 무엇보다 대구의 문화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동성아트홀을 지키는 가장 빠른 길은 많은 관객들이 이 작고 특별한 극장을 찾는 것이다. 대구에 유일한 예술영화관이 이번에 문을 닫는다면 다시 이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지금 극장을 살리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 될 것이다.

동성아트홀이 위치한 3층은 좁은 통로를 돌아돌아 들어가야 나타난다.
 동성아트홀이 위치한 3층은 좁은 통로를 돌아돌아 들어가야 나타난다.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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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대구 강북지역 인터넷언론 강북인터넷뉴스(www.kbinews.com)함께 실렸습니다.



태그:#동성아트홀, #동성아트홀릭, #대구, #예술영화전용상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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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살고 있는 두아이의 아빠, 세상과 마을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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