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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산처럼 보이지만 한때는 장좌도라 부르던 섬이었다.
 작은 동산처럼 보이지만 한때는 장좌도라 부르던 섬이었다.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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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옛 친구들과 다시 만나는 연말 술자리는 단명한 꿈들의 묘비명을 서로 읊어주는 시간이었다. 서가 칸칸이 꽂혀있던 문학소년의 고뇌들, 어디 고물상에 처박혀 있을 일렉트릭 기타들, 불의를 겨누던 불온한 미래들이 굳은 살 아래에 무덤이 되어 묻혀 있었다.

우리는 성장하는 대신 무언가를 잃어가며 살아왔다. 각자의 가지에 움트던 빛나는 잎사귀들이 세상의 바람에 벗겨지고 나니 근근이 시간을 버티며 살아가는 생활인만이 앙상하게 남았다. 출근길 지하철 유리에 비친 양복차림의 사내가 자기의 모습인지 다른 이의 모습인지 분간하기 힘들어 놀랍고도 슬펐다고 친구는 푸념했다.

우리의 송년회는 어쩌면 조금씩 멀어져가는 '나'들을 위한 환송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나는 잎사귀의 나무였던 우리를 생각하다가 나는 통영의 잃어버린 섬 하나를 떠올렸다.

통영에는 '육지인 듯 육지 아닌 육지 같은' 섬이 있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통영의 지도들을 보면 지금은 국제조각공원이 들어선 남망산 우측 편에 작은 섬이 하나 보인다. '장좌도'라고 나름 이름도 적혀 있는 섬이다.

1872년에 제작된 <통영지도>의 부분. 
중앙에 보이는 남망산의 남동쪽 가까이에 '장좌도'가 독립된 섬으로 그려져있다.
 1872년에 제작된 <통영지도>의 부분. 중앙에 보이는 남망산의 남동쪽 가까이에 '장좌도'가 독립된 섬으로 그려져있다.
ⓒ 통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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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좌도는 한산대첩이 벌어진 그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큼직한 언덕이 웅크린 모양으로 놓여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들을 속이기 위해 이 섬에 풀을 베어 높이 쌓아 군량미가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통영 토박이들 중에도 장좌도를 아는 이가 드물다. 내가 몇 년간 살았던 동호동 집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었지만, 부모님도 나도 거기에 섬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 통영에 오는 관광객들에겐 완전 '듣보잡' 섬일 것이다. 동피랑 벽화마을을 들른 후 남망산 공원을 구경해 볼까 하고 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장좌도 앞까지 왔다가 '여기엔 아무 것도 없구나'하며 되돌아가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통영엔 해저 금광이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신세가 된 장좌도는 그러나, 나름 탄생의 전설을 가진 곳이다. 우리나라 땅 형성의 전설에 겹치기 출연하는 마고할미가 여기서도 나온다.

남쪽 바다에서 키가 하늘에 닿을 듯한 마구할매('마고할미'의 통영 표현)가 통영 바다로 성큼성큼 걸어왔단다. 그걸 보고 빨래하던 아낙이 '저게 마구할매 온다'고 외치자 할매가 놀라서 치마폭에 들고 있던 금덩이를 바다에 빠뜨리고 안티산(여황산) 너머로 사라졌다 한다. 그리하여 이 금덩이들이 장좌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전설은 전설로만 남지 않고 진짜 금덩이를 장좌도에 남겨두었다. 일제시대 때 대규모 금광이 발견된 것이다. 부경대 환경지질과학과 박맹언 교수는 자신의 책 <돌 이야기>에서 장좌도의 해저광산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최대의 금광이었다고 적고 있다.

한때 금광이었던 장좌도. 채굴 도중 무너져 내린 절개면이 보인다.
 한때 금광이었던 장좌도. 채굴 도중 무너져 내린 절개면이 보인다.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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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폭이 7m나 되는 금광맥이 장좌도 주변 해안을 따라 700m 이상 이어져 있었다. 갱도는 무려 해저 200미터 아래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한다. 금의 순도도 매우 높았다. 그동안 캐낸 금이 20톤이 넘었다는데 현재의 시세로 따지면 9천억 원 가까이 된다.

황금을 품은 섬이란 것을 알게 되자, 노다지를 캐내기 위해 일제는 섬을 파헤쳤다. 그때부터 이 보물같은 섬은 파괴되기 시작했다. 큰 바위덩이같던 섬의 가운데가 채굴로 인해 움푹 함몰되어 섬이 토막 나기도 했다.

파낸 흙은 광석을 운반하는 길을 만들기 위해 바다를 메우는데 쓰였다. 그런 이유로 육지와 연결된 장좌도는 결국 섬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수탈할 대로 탈탈 털다가 더 이상 채산성이 맞지 않자 광산의 문을 닫아버리고 만다.

지금의 장좌도는 조용히 바다를 유랑하던 섬의 흔적도, 매력도, 풍채도 잃어버리고 폭격 맞은 듯 무너진 채 누워있다. 품었던 금빛 재능도 다 빼앗긴 채 어느 도시에든 있는 후미진 변두리의 무언가로 버려졌다. '장좌로'라고 표시된 도로명 주소만이 겨우 남았을 뿐이다.

남망산 조각공원(좌측 녹지)이 있는 육지와 붙어버린 장좌도(우측 녹지) 위성지도
 남망산 조각공원(좌측 녹지)이 있는 육지와 붙어버린 장좌도(우측 녹지) 위성지도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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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가치를 잃고 변두리에 묻혀있는 장좌도
 섬의 가치를 잃고 변두리에 묻혀있는 장좌도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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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기고 내동댕이쳐진 우리가 장좌도

존재가 사라진 장좌도를 생각해보면, 한 때 빛나는 보물을 간직했던 내 친구들이 버져진 듯한 느낌이 든다. 착취당한 섬처럼 우리의 열정은 누군가의 탐욕스런 호주머니에 축적되었다. 다 쓴 것 같으면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변변한 이름도 갖지 못한 흔한 동산이 된 장좌도처럼 우리는 무기계약직1, 비정규직2, 백수3이 되어 길을 헤매고 있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카트>는 우리 사회 곳곳에 제 가치를 빼앗긴 채 버려진 장좌도들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탈탈 털리다가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비정규직들의 현실을 다룬 <카트>의 노동자들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며 스스로 다져나갔다. 과연 작은 힘들이 모여 탐욕으로 뭉친 바위를 깨어낼 수 있을까?

영화 속 마트 노동자들이 실제로 파업을 벌였던 것은 2007년의 여름이었다. 강남 반포의 매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이 침탈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수백 명이 인의 장막으로 마트 주변을 밤새 지키던 날, 나도 그곳에 있었다. 돌아가며 불침번을 선 후 다시 종이박스 위에 쪽잠을 청하려 누우면 한여름인데도 강남의 아스팔트는 참 차갑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여전히 <카트>의 장좌도같은 처지들이 여기저기에서 털리거나 내동댕이쳐지거나 아무 것도 아닌 무언가로 부유하고 있다. 몇몇 낙숫물들이 오늘도 고공굴뚝, 광고탑 위 등등에서 바위를 뚫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을 수 있을까?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서울에 있는 집 근처의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가 나는 바위에 맞서기 위한 작은 조언 하나를 건지게 되었다. 산길에 고집이 세 보이는 큰 바위 하나가 버티고 서서 사람들을 돌아가게 만들고 있는게 보였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데 얼핏 바위를 째려보니 거기에 웬 나무들이 달라붙어있었다.

 나무들이 협력해 뿌리를 내려 바위를 쪼개고 있다.
 나무들이 협력해 뿌리를 내려 바위를 쪼개고 있다.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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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그루의 나무들이 바위를 다루는 방법을 몸소 선봉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덩어리로 뭉친 바위 위에 언제 진을 치고 들어갔는지 모를 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들의 뿌리가 바위를 쪼개고 있는게 아닌가. 바위를 비집고 들어가 틈을 만들어 마침내 바위를 뚫고 있었다.

지금 장좌섬에는 절망처럼 갈라지고 무너져 내린 동산 위에 수북하게 나무들이 기어 올라가 있다. 이 나무들이 절망을 뒤덮어 생의 숨결을 장좌섬에 다시 돌게 하려는듯 하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잎사귀와 강인한 뿌리를 가진 나무들이다. 우리 땅 곳곳의 절망 같은 바위도 나무같은 우리들이 뿌리를 내리고 기어이 생명이 움틀 수 있는 흙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태그:#통영, #통영에세이, #장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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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노래 만들고 글을 쓰고 지구를 살리는 중 입니다. 통영에서 나고 서울에서 허둥지둥하다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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