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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 독일은 고도로 발전한 기독교 문명 국가였다. 독일 음악과 미술은 깊고 넓었다. 문학과 철학은 서양 문명의 꽃이었다. 과학과 기술은 유럽 최고 수준이었다. 루터를 탄생시킨 독일 신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19세기 초 피히테가 주창해 발전시킨 독일의 근대 교육 시스템은 당시 서양식 교육의 본보기였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독일인은 또 어떠한가.

그런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중 학살한 유대인의 수는 600만 명에 이른다. 그것은 인류가 그때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역사상 최대이자 최악의 학살극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더 있다. 그 가공할 학살이 고도로 효율적이고 합법적인 공적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 찬란한 문명 국가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흔히 독일이 저지른 전쟁 범죄는 히틀러가 이끈 나치와 그 광적인 추종자들의 짓으로 여겨지곤 한다. 광기의 시대를 뒤흔든 소수의 미치광이들 때문이라는 것. 미국의 언론인 밀턴 마이어(1908~1986)는 자신의 책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에서 이런 통념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1년간 독일에 거주하면서 나치에 가담했던 '평범한' 일반인 열 명과 심층적인 인터뷰를 진행한 뒤 내린 결론을 통해서였다.

내가 만난 사람은 독일인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단지 특정한 조건 하에서 독일에 있었을 뿐이었다.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그가 이곳에 있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그가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나나 내 동포가 만약 그런 일련의 조건에 굴복하게 된다면 헌법도, 법률도, 경찰도, 심지어 군대조차도 우리를 어떠한 해악에서도 보호해줄 수 없을 것이다. (중략) 그러니 오래전에 나온 말은 지당하다. 즉 국가는 참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인간이 어떠한지에 따라서 그 국가도 어떠한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서문'에서)

나치에 가담했던 '평범한' 일반인과 심층 인터뷰

<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책표지
 <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책표지
ⓒ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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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만난 '나치 친구들'은 재단사, 목사, 고등학생, 빵집 주인, 교사, 경찰관 등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나치에 미쳐 날뛴 '진정한 광신자'는 당시 독일 인구 7000만 명 중 100만 명을 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문제는 나머지 6900만 명이었다. 100만 명이 저지른 광기의 배후에 바로 그들의 암묵적인 동의와 참여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독일의 지역사회가 (즉 나치즘의 전체 기계장치를 조작했던 100만 명쯤을 제외한, 나머지 7000만 명의 독일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단지 '간섭하지 않는 것'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단지 세금을 납부하고, 지역 신문을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예전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뿐이었다. (91쪽)

히틀러가 이끈 나치는 국가사회주의를 기반으로 출현했다. 저자에 의하면 국가사회주의는 의회 정치, 의회 토론, 의회 정부 모두에 대한 혐오의 결과물이었다. 모든 정당들과 당파들의 흥정과 거래, 제휴, 혼란, 공모 등에 대한 독일 일반인의 거부감이 빚어낸 최종 결과물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놈들을 모두 내쫓자"라는 식의 정치 혐오 정서에서 탄생했다고 본다.

저자는 독일 사회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도 '악의 평범성'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는 국가사회주의가 곧 반유대주의였다고 단언한다. '나치 친구들'이 보기에 유대인은 열등하고 비열하여 격리하거나 없애야 할 인종이었다. 저자는 그런 시각이 틀렸음을, 그것은 단지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아무런 논리나 이유도 없이 전해져 온 차별과 편견일 뿐임을 그들에게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렇지 않아도 넓었던 정부와 국민 사이의 간극이 나치 출현 이후 더 커진 점 역시 평범한 독일인이 나치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고 강조한다. 이는 당시 독일인이 '국민'이라는 개념만 알았을 뿐 주권자로서의 '시민'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예컨대 이런 논리다. '시민'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국민'은 정부 수반(최고 권력자)의 명령과 지시에 따르는 존재다. 히틀러가 최고 권력자가 되고, 나치가 독일을 이끌기 시작하면서 독일인은 이런저런 국가의 부름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그 모든 부름에 응했다. 시민이 아니라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정력을 소진했다. 당연히 생각할 시간과 마음도 빼앗겼다.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였다.

"독재정치는, 그리고 독재정치가 나타나게 된 과정 전체는 무엇보다도 '기분전환'이 되었습니다. 그건 어차피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핑계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사람이란, 바로 제 동료와 저 자신 같은 사람(저자의 동료인 한 독일인 언어학자-기자 주), 배운 사람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근본적인 것들에 관해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결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 그리고 지속적인 변화와 '위기'를 가지고 우리를 계속 바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외부와 내부에 있는 '국가의 적들'의 책동에 워낙 매료되었습니다. (237쪽)

군수품공장에서 일한 한 공학자의 증언은, 평범하지만 배울 만큼 배운 우리가 '악'의 편에 서는 일이 얼마나 손쉽게 이루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의 고백은 서늘하다. 그는 스스로를 대부분 사람이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것보다도 훨씬 더 폭넓고 더 나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그러한 교육이 한 일은 결국 그 자신이 겪은 '믿음의 상실'을 합리화하도록 도와준 것뿐이었다고 지적한다. 무지했을 때보다 더 쉽게 자신의 비겁과 치부를 합리화하도록 도와준 것 뿐이었다고 말이다.

'처음부터 저항하라'

나치에 비판적이었던 예의 언어학자는 나치의 죄상을 목도하면서 '처음부터 저항하라'와 '끝을 생각하라'는 두 가지 격언을 여러 번 숙고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처음부터 저항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참회였다.

각각의 행위, 각각의 사건이 먼젓번보다 더 나빠지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약간만 더 나빠질 뿐이에요. 그래서 당신은 다음을, 또 다음을 기다리게 되죠. 당신은 한 가지 크게 충격적인 사건을 기다리게 되는 거예요. 그런 충격이 닥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당신과 뜻을 같이해서 어찌어찌 저항하게 되리라 생각하는 거죠. 당신 혼자서는 행동하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말하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 당신은 굳이 '자기 길에서 벗어나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거예요. 왜 아니겠어요? 그렇게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당신 하나만도 아니에요. (239~240쪽)

저자가 만난 '나치 친구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솔직하고 진실되게 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 현실이 그랬으며,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면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라고 거듭 반문한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알게 모르게 '악'에 가담하고 동조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이 있다. '금'이긴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아니다. 언젠가 마틴 루터 킹(1929~1968)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우리는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로 시작되는, 에밀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마틴 니묄러(1892~1984) 신부의 시를 잘 알고 있다. 옮긴이에 따르면, 밀턴 마이어의 이 책은 니묄러 신부가 쓴 그 유명한 시를 세상에 알린 최초의 자료로 평가된다고 한다.

니묄러 신부는 원래 군인 출신이며,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치 정권 초기에 히틀러를 독대하여 종교계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한동안 정부 정책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치의 광포한 전횡은 종교계를 비껴가지 않았다. 뒤늦게 저항에 나섰으나 많은 희생만 치렀을 뿐이다.

침묵 대신 '처음부터 저항하라'는 격언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평범한 나치들의 입을 빌려 증언하는 메시지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악과 불의 앞에서의 침묵은 '금'이 아니라 참극을 불러올 뿐이다. 다른 이는 물론 나 자신에게조차 말이다. 니묄러 신부가 쓴 시의 나머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침묵했다.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 이어서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에게 왔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 이어서 그들이 내게 왔을 때 / 내 곁에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밀턴 마이어 지음 /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4. 11. 27. / 482쪽 / 1,85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 나치 시대 독일인의 삶,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만든 오욕의 역사

밀턴 마이어 지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2014)


태그:#<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밀턴 마이어, #나치와 히틀러, #"악의 평범성", #침묵하는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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