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가 이번 겨울 FA 시장에서 다름 팀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는 지난 3일 배영수(33)와 3년간 총액 21억 5000만 원(계약금 5억 원+연봉 5억 50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권혁(32억 원), 송은범(34억 원)에 이은 올 시즌 세 번째 외부 FA 영입이다. 대어급 선수들의 진로가 일찌감치 결정되며 폐장 분위기로 가는 듯했던 FA 시장이 막바지 한화의 과감한 행보로 또 다른 반전을 맞이하고 있다.

'푸른 피의 에이스'... 사자에서 독수리로 이적

배영수, 삼성 떠나 한화로…3년 21억 5000만 원 한화 이글스는 3일 자유계약선수(FA) 배영수와 계약금 5억 원, 연봉 5억 5000만 원 등 3년간 총액 21억 5000만 원에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진은 지난 10월 5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마운드를 내려오는 삼성 라이온즈 선발투수 배영수의 모습.

한화 이글스는 3일 자유계약선수(FA) 배영수와 계약금 5억 원, 연봉 5억 5000만 원 등 3년간 총액 21억 5000만 원에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5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마운드를 내려오는 삼성 라이온즈 선발투수 배영수. ⓒ 연합뉴스


배영수는 지난 2000년부터 15년간 오직 삼성 한 팀에서만 활약했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다. '푸른 피의 에이스'라는 애칭을 지녔던 배영수가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 뛰게 된 것도 놀랍지만, 그 행선지가 한화라는 점도 이채롭다.

부상 없이 한 시즌을 꾸준히 소화하면 여전히 10승 이상을 거둘 수 있는 선수다.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는 배영수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착한 가격'에 한화행을 선택하며 많은 팬을 놀라게 했다. 배영수는 올해 FA 투수 최대어였던 윤성환(80억 원)과는 동갑내기지만, 올해 FA 몸값은 그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한화가 FA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부터다. 당시 한화는 정근우와 이용규의 영입을 비롯해 내부 FA들까지 잡는 데 총 178억 원을 투자했다. 올해도 한화는 전력보강을 위하여 지갑을 열었지만, 2년간 한화가 FA시장에서 선수영입에 투자한 돈은 현재까지 274억 원으로 2위 삼성(261억 원)을 제치고 단독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올해 한화는 3년 연속 꼴찌에 그쳤다. 투자에 비하면 실속이 없었던 셈이다. FA 시장에서 한화와 비슷한 돈을 들였던 삼성이, 정작 외부 FA는 한 명도 영입하지 않고도 통합 4연패에 성공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예년과 달라진 부분은 '신중함'과 '실리 추구'로 요약된다. 올 겨울 한화는 내부 FA 김경언(8억 5000만 원)까지 포함하여 한화는 이번 FA 시장에서 총 96억 원을 투자했다. 지난해의 절반 규모다. 지난 해 이맘때의 경우, 정근우와 이용규는 누구도 인정하는 최대어였지만, 정작 한화가 가장 보강을 필요로 했던 포지션은 마운드였다. 화려한 이름값에 끌려 대어급 FA들에게 과감하게 배팅했지만 실속은 적었다는 평가다.

올해는 냉정히 말해 한화가 영입한 FA중 대어급이라고 할 만한 선수는 없었다. 권혁, 배영수, 송은범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지금은 모두 전 소속팀에서 입지가 줄어든 상황의 선수들이었다. 한화 외에 다른 팀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도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이들은 한화 입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선수들이었다. 내부 FA 김경언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새롭게 영입한 3명이 모두 투수 자원이라는 것만 봐도 한화의 전력보강이 어디에 초점을 맞췄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지난 시즌 팀 평균자책점 6.35로 리그 최하위(9위)이자 프로야구 역대 최악의 자책점을 경시한 한화로서는 검증된 투수 한 명이 절실했다.

선수의 마음을 산 한화... 내년 시즌 웃을까

환하게 웃는 김성근 감독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을 마치고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이 한 여성팬으로부터 과자선물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다.

▲ 환하게 웃는 김성근 감독 전성기를 지난 FA 선수들의 한화행 배경에는, '재활공장장' 김성근 감독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을 마치고 지난 11월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이 한 여성팬으로부터 과자선물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한화가 영입한 투수 FA 3명의 몸값을 모두 합쳐도 87억 5000만 원이다. 올해 FA 최대어로 꼽혔던 SK 최정(86억 원)이나 두산 장원준(84억 원) 개인의 몸값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지만 대신 선발과 불펜을 폭넓게 보강했다.

물론 송은범처럼 몇 년간 부진했던 선수에게 지나치게 많은 몸값을 준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최근 FA 시장의 몸값 거품 현상을 감안하면, 올해는 다른 구단들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실속 있는 선수들을 영입했다고도 할 수 있다. 오히려 다른 구단들처럼 몸값이 뻥튀기된 대어급 선수들을 잡기 위하여 불필요한 눈치싸움을 하는 일이 없었다. 한화는 여유 있게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고, FA 시장 막바지에 필요한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화가 이번 FA시장에서 얻은 수확은 다음 시즌 마운드 운용을 위한 확실한 뼈대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일단 배영수와 송은범은 풍부한 경험을 지닌 선발 자원으로 분류된다. 한화가 새롭게 영입을 타진하고 있는 2명의 외국인 투수와 더불어 배영수-송은범이 3·4선발을 맡아주고, 남은 한 자리를 이태양, 유창식, 송창현 등 젊은 선수들이 경쟁하는 구도로 다음 시즌 한화는 한층 두터워진 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송은범은 유사시, 언제든 불펜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전천후 투수다. 권혁 역시 그동안 한화에 부족했던 좌완 불펜 갈증을 해소해줄만한 대안이다.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다. 그동안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던 한화 마운드에 좀 더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보이지 않는 효과도 기대할 만하다.

'부활과 명예회복'이라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다는 것은 한화행을 선택한 외부 FA들의 공통점이다. 이들 모두 전 소속팀에서 저평가를 받으며 FA 시장에 나온 선수들이다. 냉정히 말해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이미 전성기가 지난 이 선수들에게 야구계가 거는 기대치는 크게 높지 않다.

이들에게는 한화가 야구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기회의 땅이다. 올해 한화의 FA 협상이 돈만으로 선수들을 유혹하지 않았다. 확실한 동기부여를 통하여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고액 FA에 대한 부담은 적고, 자신의 가치를 다시 증명하겠다는 책임감과 의욕은 오히려 높다. '재활공장장'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의 명성에 끌린 것도 FA 선수들이 한화행을 선택한 하나의 이유로 평가된다.

FA 거품의 시대 속에서 한화는 '착한 협상'으로 타 구단과 차별화된 '실리' 노선을 선택했다. 겉보기에 당장 대어급 선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1년 후, 이번 겨울 한화의 FA 영입이 최고의 실속 투자로 재평가 받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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