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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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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이 노동교실로 찾아와 노동교실 관리인인 이양현씨와 이씨 재단사를 찾았다. 그 이유는 이양현이라는 사람은 풍천화섬 노동자들이 농성을 할 때 배포한 유인물을 만들어 주었고,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김씨 재단사와 얼굴이 예쁘게 생기고 눈이 쌍꺼풀이 진 이씨 재단사라는 사람은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그들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이 김씨 재단사와 이씨 재단사는 학생운동 출신인 김세균(이후 서울대 교수)과 장명국(현재 내일신문 이사 대표 사장)이었는데 그 이름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양현은 전남대 학생운동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노동교실 관리를 하면서 조합원들과 친밀하게 지내왔다. 이양현과 김씨 재단사, 이씨 재단사는 풍천화섬 노동자들이 노조결성식을 하지 않고 가두로까지 진출하다가 결국 경찰에 연행을 당하자 일단 자리를 피해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찾지 못한 경찰은 다음 날 노동교실 주위에서 잠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지키고 있어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 경찰은 노동교실 안으로 침입해 노동교실 서류를 뒤지고, 교실을 지키고 있던 배철수를 불법적으로 연행해 갔다. 경찰은 배철수한테 이양현과 이씨 재단사를 찾아내라고 몇 시간 동안 폭행을 가했다. 그러나 배철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므로 나오는 것이 없자 돈 3천 원을 주면서 양승조 총무부장을 잡는 데 협조해 달라면서 내보냈다. 내보내면서 경찰서에서 두들겨 맞았다는 얘기를 하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9월 12일 밤 12시가 넘어서 양승조와 배철수가 이소선의 집으로 잠자러 왔다.

"승조야, 왜 여기에 왔어? 좀 더 두고 보다가 괜찮다 싶으면 들어올 일이지."
"어머니, 괜찮을 거예요. 그 동안 다른 곳에서 잠을 잤는데, 경찰이 박숙녀를 도피시킨 것까지 알 수 없을 것이고 박숙녀는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새벽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잠자고 있는 양승조와 배철수를 끌고 가 버렸다. 이 소식은 즉각 조합원들한테 알려졌다. 날이 밝자 연행 소식을 듣고 노조사무실 간부들은 동부경찰서로 몰려갔다.

그 시각 동부경찰서 경찰들은 노조사무실 간부들이 경찰서로 간 사이 경리 혼자서 노조사무실을 지키고 있는데 들이닥쳐 경리장부를 빼앗아가 버렸다. 경찰들은 경리장부를 빼앗아가면서 "장부에서 백 원이라도 착오가 나면 청계피복지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며 위협을 하고 갔다.

이소선은 이날 오후에 조합원 20여 명과 함께 동부경찰서로 갔다. 이들이 방문하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경찰들은 경찰서 입구에서부터 철통같이 가로막고 이들을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불법으로 연행하고서는 면회도 못하느냐? 왜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느냐?"

경찰들은 이들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로막기만 하고 있었다. 이들은 경찰서 입구에 주저앉아서 소리를 계속 질렀다. 한참을 소리 지르며 버티고 있으니까 계급이 조금 높은 듯한 경찰이 나왔다.

"면회를 하려면 몇 사람만 와야지 이렇게 집단으로 오면 다 해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 온 사람 중에 대표로 3명만 면회를 시켜줄 테니 3명만 들어오시오."
"우리가 다 대표인데 누구는 들어가고 누구는 못 들어가는 것이 말이 돼요?"
"아! 지금 조사 중이라 면회를 할 수 없어요. 특별히 시켜주려고 하니까 3명만 들어와요."
"3명은 너무 적으니 6명이 대표로 들어갑시다."

이에 그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선심을 쓰듯이

"좋아요. 6명만 들어와요."

이렇게 해서 이소선을 포함한 6명이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 4층에 있는 정보과로 올라갔다.
4층 정보과 사무실 입구에 당도하니까 덩치가 집채만한 형사 6명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이봐! 어디 가는 거야?"
"정보과에 면회하러 가는 거요."
"누구 맘대로 면회를 해! 정보과는 면회하는 데가 아니니까 내려가!"

숫제 명령조다. 밖에서 소란을 피우니까 면회를 시켜주겠다고 기만한 것이다.

"야, 이 새끼야! 시켜준다고 해서 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라는 거야, 너희 놈들은 금방 한 약속도 이런 식으로 지키지 못하냐?"

이소선의 입에서 곧바로 욕이 나왔다.

"이게 어디서 큰소리야 큰소리가, 내려가!"

그 집채만한 덩치가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다. 이들은 졸지에 당하는 것이라 밀려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소선은 하도 분해서 계단에 주저앉아서 소리소리 질렀다.

이렇게 한참을 싸우고 있으니까 정보과장이 내려왔다.

"이 여사, 이러지 마시고 돌아가세요. 양승조하고 배철수는 우리가 조금 조사를 할 것이 있어서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왜 면회시켜 준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못 시켜 주겠다고 하는 거야? 사람 놀리는 거요, 뭐야?"
"지금은 조사 중이고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오시면 면회시켜 드리겠소. 내일 오세요."
"당신들이 두 사람을 고문하고 있으니까 면회를 안 시켜주는 것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요? 손을 안 댈 테니까 염려 마시고 오늘은 돌아가세요."

이소선은 저녁에 조합원들이 모여 노동교실에서 집회를 갖기로 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경찰서를 물러나왔다.

노동교실에 돌아와 보니 조합원들이 벌써 모여 농성을 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불법연행 중지, 연행자 즉각 석방,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불법적으로 장부를 탈취해가고 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발언에 대한 사과, 면회금지 철회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저녁 9시 30분쯤 되었을까, 중부경찰서 정보과 형사 10여 명이 농성장에 난입하려고 하자 조합원들이 문 앞을 가로막고 이들을 못 들어오게 했다. 경찰은 무조건 해산하지 않으면 전원 연행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러자 조합원들이 더욱더 흥분을 하고 해산하지 않을 움직임을 보이자 정보과장이 청계피복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발언에 대해 사과토록 할 것이며, 면회금지 조치도 해제토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에 이날의 농성은 밤 11시경에 자진해산했다.

14일 오후에 이소선은 지부장과 부녀부장과 함께 동부경찰서에 면회하러 갔다. 경찰은 어제 보여주었던 태도와는 달리 이들을 정보과로 안내하고 양승조와 배철수를 면회시켜주었다.

이 둘은 불과 며칠 사이에 얼굴이 형편없이 여위었다. 말은 안 해도 심하게 맞은 표시가 났다. 이소선이 맞았으면 맞은 사실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니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보과 형사들이 정보과장이 만나보고 싶어 한다며 이소선 일행을 억지로 정보과장실로 데리고 갔다. 이소선은 어차피 정보과장을 만나서 따질 것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을 양승조와 배철수한테 전해주고 정보과장을 만나보고 오겠다고 말하고 과장실로 갔다. 정보과장실에서 소파에 여유잡고 앉아 있던 과장은 이소선 일행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하였다.

"여기 앉으시죠."

이소선은 시큰둥하게 앉으면서 말했다.

"왜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때리는 거요?"
"때리기는 누가 때려요? 그럴 리가 있나요."

정보과장은 과장된 몸짓을 하면서 변명을 하는 것이다.

"아니, 청계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면서? 한번 쑥대밭으로 만들어봐! 어떻게 만드는가. 쑥대밭을 만들기 위해 양승조하고 배철수를 잡아다가 고문을 하는거여?"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안 했어요? 청계노조에 와서 무슨 근거로 경리장부를 빼앗아가는 거요?"
"그것은 잠깐 조사할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잘못된 일이라면 사과하겠습니다."
"청계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얼버무릴 거요?"
"그런 발언을 했다면 사과하겠소. 누가 했는지 조사를 해서 잘못을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보과장은 노조에서 빼앗아간 경리장부를 가져오라고 부하에게 지시했다. 장부는 즉시 도착했다. 장부압수와 노동조합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정보과장의 공식적인 사과 정도로 끝냈다.

그 후에도 매일 밤 8시 이후에 노동교실에서 집회를 가지면서 그날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를 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결정했다.

조합원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회를 열어서 당국의 불법 부당한 탄압을 항의 규탄하자, 중앙정보부에서 노조사무실에 찾아왔다. 그들은 집회를 하려면 사전에 집회보고서를 내고 모든 결의는 운영위원회나 대의원대회와 같은 공식회의에서 하라며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다.

경찰이 양승조와 배철수를 연행해서 붙들어놓고 있는 이유는 중심적인 인물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즉, 이양현이나 이씨 재단사 그리고 박숙녀를 잡아야 하는데, 정작 구속시켜야 할 당사자들의 소재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은 양승조나 배철수에게 배후조종 혐의를 두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승조는 뭔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뚜렷한 물증은 없고, 배철수는 아는 게 워낙 없어서 배후조정자로는 적당한 인물이 아니었다.

경찰은 고민 끝에 배철수를 공무집행방해로 구류 4일에 처했다. 양승조는 직책이 총무 부장이었기 때문에 장부상 2천 원의 출처가 기록되지 않은 것을 트집 잡아서 추궁하기 시작했다. 돈 2천 원은 박숙녀가 도피하기 위한 택시비였다. 경찰은 이것을 가지고 양승조를 범인은닉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덧붙이는 글 |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은 매일노동뉴스와 함께 연재합니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청계피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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