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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0일, 서울시 국감에서 서울시 버스업체들이 정비직 노동자 임금 44억 원을 지급하지 않고 유용했다는 사실이 국토교통위 오병윤 국회의원(통합진보당)을 통해 밝혀졌다.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정비직 노동자 임금 유용 문제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표준운송원가란?
버스준공영제 하에서 지방정부가 버스업체에게 버스운영비용을 모두 보전해주기 위해서 마련한 기준.

각 지역마다 표준운송원가항목 수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보편적으로 인건비(운전직, 정비직, 임원, 관리직), 연료비, 정비비, 업체이윤, 차량 보험료, 차고지 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시는 표준운송원가에 따라 2013년 기준, 버스 1대 당(대형버스 기준) 0.1458명의 인원에게 1일 평균 1만8573원의 임금을 버스업체에 지급해왔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서울시내버스 면허 대수가 7485대이므로 정비직 노동자 1091명(1대 당 인원 0.1458명×7485대, 대당 정비직 노동자 인원과 임금은 서울시가 산정하고 발표한 표준운송원가에 명시되어 있다)이 고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2013년 현재 서울시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버스업체들은 정비직 노동자로 총 940명만 고용해서 서울시가 표준운송원가에서 규정한 1091명보다 151명이나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비직 고용 낮추고, 임금 줄이고... 그 돈은 어디로?

5515 버스(한남운수)를 기다렸다가 타고 있는 시민들 모습.
 5515 버스(한남운수)를 기다렸다가 타고 있는 시민들 모습.
ⓒ 조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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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버스업체들이 표준운송원가에 미달되는 정비직 노동자 940명을 고용하고도 1091명에 대한 정비직 노동자 임금 전액을 지원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인해 총 44억 원을 유용한 것이 밝혀진 것인데, 이것조차 과소 추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홈페이지에는 2013년 말 기준으로 서울시의 정비직 노동자인원이 890명으로 기재되어 있다. 실제로는 201명이 미달이라는 말이다. 인원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서울시가 국감 때 보고한 인원은 세차와 청소 등의 인원까지 정비직 노동자에 모두 포함시켰기 때문이었다.

수입금공동관리형 버스준공영제란?
한국의 버스준공영제는 지방정부가 민간업체들의 노선조정권과 배차권 등의 권한을 이양 받아 노선을 공적으로 관리하고 개편하는 대신, 운영비용과 적정이윤을 민간업체에게 모두 보장하는 운영체제이다. 

수입금공동관리형이라고 하는 이유는 지방정부와 민간업체들이(버스사업조합) 운송수입금을 공동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2004년 부터 서울시를 필두로 부산,대구,인천,대전,광주 등의 광역시에서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버스노동자들에 따르면, 버스준공영제 도입으로 버스업체가 정비직 노동자들을 대부분 연봉제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모든 사업장에서 임금삭감이 이뤄졌다. 서울시에서 정비직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표준운송원가상 임금보다 실제로는 더 적은 임금을 수령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용인원뿐만 아니라 임금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국감에서 밝힌 44억 원 보다 훨씬 많은 돈이 유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돈은 어디에 쓰인 걸까. 버스업체 임원 인건비 항목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서울시는 2013년 표준운송원가에 따라 총 86억 원을 임원 인건비로 버스업체들에게 지급했다. 그런데 66개 버스업체들가 실제 지불한 임원 인건비는 총 262억 원이다. 서울시가 지급한 액수보다 2배가 넘는 금액을 임원들에게 추가로 지급한 것인데, 이 돈이 어디서 나온 걸까?

버스준공영제의 구멍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운전직 임금은 노사가 합의하면 서울시가 실비로 보전해주지만(버스 1대 당 2.77명 한도에서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반영), 정비직 노동자과 관리직 노동자 인건비는 서울시가 표준운송원가에 따라 버스업체에게 지급만 할 뿐 이들 노동자들에 제대로 지급했는지 따로 정산하지 않는다는 허점이 있다. 즉 유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서울시는 제도의 개선은 인정하면서도 '재정 지원 항목에 맞춰 지출하지 않았더라도 전용했다고 볼 만한 규정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한남운수 정비직 노동자들은 임금삭감은 물론 해고까지 당했다. 회사 부도 위기 이후 부임한 박복규 대표이사는 2009년 2월에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15% 임금삭감, 1년 단위 비정규직(연봉제) 전환을 정비직 노동자들에게 강요했다.

심지어 버스 운전 기사는 부족한 반면 19명이던 정비 인력이 너무 많다며 6명의 정비직 노동자를 운전직으로 강제 전직시켰다. 한남운수 정비직 노동자들은 정비 업무에 필요한 차고지 내 시범 운전을 위해 선택적으로 대형면허를 취득했을 뿐 도로 운전 경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사측의 터무니 없는 요구에 대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버스지부 한남운수 이병삼 지회장은 "서울시가 적정이윤까지 보장해주는데 왜 정비직 노동자 임금을 삭감해야 하며, 하루아침에 정비직 노동자를 운전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그 대가로 2010년 10월에 이병삼 지회장은 끝내 해고를 당해 4년 동안 기나긴 원직복직투쟁을 감내해야 했다.

해고 이후 이 지회장은 민사소송을 제기해 지방법원에서는 승소했지만 고등법원에서는 패소했고 현재는 1년 넘게 기약 없는 대법원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정비직 노동자들이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서 자신은 물론 시민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사업주들의 지시가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린 사법부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비직 노동자 인건비 유용 문제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는데도 서울시 교통본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실비 정산하는 운전직 인건비 이외 정비직 노동자 인건비와 같이 표준운송원가에 명시 된 대로 업체에게 지급하는 항목들은 포괄적인 사용을 보장하므로 업체가 임의적으로 유용해도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비직 노동자 노동 조건은 버스안전과도 직결... 서울시는 제도 개선 나서야

한남운수 투쟁천막 사진과 이병삼 지회장님
 한남운수 투쟁천막 사진과 이병삼 지회장님
ⓒ 이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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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고용은 줄이고, 임금은 낮추는 등 정비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해지고 정비불량이 만성화되면서 버스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버스지부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정비직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월 30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휴일에 제대로 쉴 수 없고,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 집에 있다가도 바로 출근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정비직 노동자는 회사마다 소수이다 보니 인력이 1명이라도 줄면 노동강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예방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고장이 난 후에야 처리할 수밖에 없어 정비불량으로 인한 교통사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버스준공영제를 도입한 다른 5개 광역시(인천·대전·광주·대구·부산)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어서 매우 우려스럽다. 그러므로 서울시가 모범을 보여 이 문제가 전국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원들의 고액 연봉을 과감히 줄이고, 정비직 노동자 고용 인원과 인건비는 서울시가 표준운송원가로 책정한 만큼 그대로 현장에 적용되는 방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버스안전을 위해서는 억대 연봉을 받는 임원들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정비직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상식을 서울시는 실천해야 한다. 아울러 한남운수 대학동차고지 앞에서 지난 10월 31일부터 원직복직을 위해서 무기한 천막을 치고 투쟁하고 있는 이병삼 노동자도 얼른 원직 복직해서 따뜻한 겨울을 가족들과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빈다.

덧붙이는 글 | - 이영수 기자는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태그:#서울시 버스, #버스연합회, #버스 준공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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