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의 독재자>의 이해준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나의 독재자>의 이해준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개봉 직전 영화 <나의 독재자>에 대한 평은 크게 둘로 갈렸다. '새롭고 신선한 구성이다' 와 '진지하고 늘어진다'.

분명 근래에 보기 힘든 구성이었다. 설경구와 박해일을 부자 관계로 놓고 크게 이야기를 둘로 나눴다. 무명 연극배우 성근(설경구 분)과 아들 태식(박해일 분)의 친밀했던 관계가 국가의 폭압에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린 1막과, 좀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 같았던 부자 관계가 제3의 인물인 여정(류혜영 분)의 도움과 태식의 각성으로 전환점을 맞이하는 2막으로 말이다. 갈등과 해결의 간극이 멀고 장면마다 호흡 또한 긴 편이다.

영화에서는 두 시대가 서로 대구를 이룬다. 독재 정권 시기인 1972년과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4년이다. 이해준 감독은 일부러 시대를 분절시켜 대조 혹은 비교해서 관객에게 날 것 그대로 제시한다. 늘어진다는 표현은 어쩌면 빠른 흐름 일색이었던 한국 상업영화에 너무 길들여진 결과 아닐까. 이해준 감독이 직접 영화를 변호했다.

"둘 다 제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면 있는 때죠. 197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고, 1990년대는 청년기를 보냈으니까요. 인물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시대와 정치적 상황, 사회 세태를 어찌 무시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1970년대와 1990년대는 현대사적 의미도 있잖아요. 그걸 다루는 건 당연한 겁니다.

아버지 세대가 산업화를 일궜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면 그 열매를 우리가 따먹은 거예요. 소위 엑스 세대, 신세대가 등장한 거죠. 두 세대를 충돌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어요. 물론 이 구성을 낯설어 하는 분도 있습니다. 완전히 연결한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걸 너무 낯설게만 보지 마시고 새롭게 보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이해준 감독의 배우론...설경구-박해일-윤제문 조합에 담겼다

 영화<나의 독재자>의 이해준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는 전체적으로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여주는 형식을 취했다.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 대역이 돼야 했던 아버지는 결국 일생을 걸어 아들에게 마음을 던졌다. 그의 삶 자체가 연기였던 셈. 이해준 감독은 "영화 속 연극의 형태인 건 결국 배우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였고, <나의 독재자>는 곧 배우가 빛나는 영화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 목적의식은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뚜렷했다.

"언론 시사 이후 연기 호평이 나오는 걸 보고 일단 됐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배우들은 욕 먹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설경구, 박해일 두 분이 제 영화에 출연한 자체가 영광인 상황에서 과연 설득력 있게 두 사람이 부자 관계로 보일지가 걱정이었어요. 설경구씨가 출연을 승낙하는 자리에서 저와 악수를 했는데 두툼한 게 딱 제 아버지 느낌이었어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인물의 손을 강조하기 위해 이해준 감독은 2.35:1로 찍던 영화를 1.85:1로 바꿔 찍었다. 김일성 자체가 손동작이 많은 인물이었고, 그걸 흉내 내는 성근의 모습을 보다 극적으로 보이기 위함이었다.

류혜영의 합류도 극적이었다. 이해준 감독의 전작 <김씨 표류기> 때 류혜영은 여주인공이던 정려원의 대역으로 한 장면 등장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류혜영은 이후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했고, 멀리서나마 지켜보던 이해준 감독이 문득 이번 영화에서 그를 떠올린 것이다.

미국 LA에서 유학 중이던 류혜영을 화상 채팅으로 테스트하고 결국 설득해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이해준 감독은 "여러 모로 불리한 조건임에도 흔쾌히 출연했고, 박해일씨와 호흡에서도 손색없을 정도로 자기 색깔을 잃지 않았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여기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바로 윤제문의 등장이다. 그가 맡은 역은 중앙정보부 간부로 성근을 무참히 짓밟는 오계장. 22년이 지난 뒤 장관이 돼 다시 성근 앞에 나타난 오계장은 유독 다른 인물에 비해 덜 늙어 보인다. 설경구의 제안과 이해준 감독의 노림수가 담긴 대목이었다.

"윤제문의 분장 실수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의도한 거였죠. 설경구씨가 술자리에서 오계장은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무릎을 탁 쳤죠. 늙지 않는 권력의 모습입니다. 성근의 입장에서도 22년 후 재회한 오계장은 바로 어제 봤던 그 모습이었을 거예요. 1970년대 권력의 그림자가 여전히 유효한 걸 상징합니다. 실제 지금의 시대도 그렇잖아요."

"'나의 독재자'는 곧 나의 아버지를 위한 찬가"

 영화<나의 독재자>의 이해준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해준 감독은 "영화든 뭐든 어떤 행위든 인물은 시대를 떼놓고 말할 수는 없다"며 "1970년대는 한 사람의 정치권력이 개인의 삶을 파고드는 시대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오히려 시대와 개인의 삶이 관계가 없어야 행복하다고 믿지 않나"고 반문했다. 

"<나의 독재자>를 처음 기획했을 당시가 <김씨 표류기> 끝난 직후였는데, 그때는 그냥 말리거나 괜히 영화 잘 못 만들어서 이상한 데 엮이면 안 된다는 분도 있었어요. 오기가 생겼고, 남들처럼 그렇게 걱정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보이고 싶었죠. 개인사적으로는 아버지가 건강도 안 좋아질 때여서 마음이 안 좋았거든요. '시간이 얼마 없구나', 빨리 만들어서 보여드리고픈 생각이 든 거죠."

요양 차 캐나다에 있는 이해준 감독의 아버지는 현재 거동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극장에 가실 처지는 아니라 꼭 영화의 DVD든 뭐든 준비해서 보여드리고 싶다"고 인터뷰 말미에 그는 말했다. <나의 독재자>를 찍은 후 영화에 대한 이해준 감독의 생각은 더욱 분명해진 것 같았다.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 표류기> 때 막연하게 했던 생각의 발전이었다.

"이 발언이 흥행엔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많은 관객이 한 번 보고 마는 영화와 적은 관객이지만 그들이 오래 기억하는 영화 중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면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고민은 하겠지만 영화의 본질은 후자에 있는 거 같다고요. 물론 많은 관객이 오래 기억하는 게 가장 최고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전 오래 남는 작품을 만들고 싶답니다."

 영화<나의 독재자>의 이해준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나의 독재자 이해준 박해일 설경구 윤제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