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종료 직후 허탈한 마음에 쓰러져 있는 전남 선수들을 하석주 감독이 위로하고 있다.

경기 종료 직후 허탈한 마음에 쓰러져 있는 전남 선수들을 하석주 감독이 위로하고 있다. ⓒ 심재철


26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거짓말 같은 전남의 동점골이 후반전 추가 시간 4분 가까이 되어 터졌다.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를 얻자 맏형 문지기 김병지까지 인천 골문 앞으로 달려와 공격에 가담했기 때문에 더욱 극적인 장면이었다.

김병지를 비롯한 전남 선수들은 기적 같은 동점골에 환호하며 벤치로 달려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자 했다. 전남 선수들은 상위 스플릿에 포함되기 위해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전남 벤치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기뻐하기보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탄천종합운동장의 경기 결과에 대반전이 생긴 것을 그제야 직감했다. 기적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지만 탄천 경기장 승부가 바뀌며 전남의 상위 스플릿 진출은 불가능해졌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축구였다.

김봉길 감독이 이끄는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26일 오후 2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14 K리그 클래식 33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안방 경기에서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3-3으로 아쉽게 비기며 전남은 7위, 인천은 8위로 정규 라운드를 마감했다. 두 팀 모두 하위 스플릿(11월 1~5라운드)에 묶이게 됐다.

인천 FW 디오고의 벼락골

경기 시작 후 2분도 안 되어 인천의 선취골이 터졌다. 브라질 듀오 이보와 디오고의 합작품이었다. 이보의 번뜩이는 찔러주기와 디오고의 반 박자 빠른 오른발 슛이 제대로 먹혔다. 노련한 전남 문지기 김병지도 손을 쓸 수 없는 골이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 디오고의 벼락골 순간

인천 유나이티드 FC 디오고의 벼락골 순간 ⓒ 심재철


사실 이 경기 결과도 축구팬들의 관심사였지만 같은 시각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성남 FC-울산 현대'의 맞대결 결과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11월 상위 스플릿(1~6위, 5라운드)에 턱걸이하기 위해 전남 드래곤즈는 절실했다. 만약 성남이 울산을 이긴다면, 전남은 비기기만 해도 울산을 밀어내고 상위 스플릿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천에게 먼저 선취점을 내줬다. 전남은 다른 경우의 수는 볼 것도 없었다. 이른바 '닥공(닥치고 공격의 줄임말, 최강희 전북 감독의 발언으로 유명)'을 펼치며 이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절실함이 약 13분 뒤, 안용우의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절대 수문장 유현의 슈퍼 세이브에 1차 슛은 막혔지만 거기서 흐른 공에 대한 집중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전반전을 1-1로 끝낸 전남 드래곤즈 선수들은 탄천 경기에서 울산이 1-0으로 앞서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약 울산이 성남을 이긴다면 아무리 많은 골을 터뜨리며 인천을 이겨도 소용없었다. 그 영향인지 전남은 후반전에 인천에게 내리 두 골을 내주며 맥없이 주저앉았다.

인천의 교체 선수 둘(문상윤, 진성욱)은 탁월한 감각과 빼어난 스피드를 자랑하며 전남 수비 라인을 크게 흔들었다. 68분에 먼저 문상윤의 절묘한 돌려차기 추가골이 터졌다. 이천수의 찔러주기를 받은 뒤 반 박자 빠른 회전 동작이 일품이었다.

 79분, 인천의 슈퍼 서브 진성욱이 전남의 김병지까지 완벽하게 따돌린 다음, 빈 골문에 추가골을 터뜨리는 순간

79분, 인천의 슈퍼 서브 진성욱이 전남의 김병지까지 완벽하게 따돌린 다음, 빈 골문에 추가골을 터뜨리는 순간 ⓒ 심재철


그리고 79분에 진성욱의 추가골이 터졌다. 인천의 슈퍼 서브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진성욱의 빠른 드리블 실력과 뛰어난 집중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전남의 키다리 수비수 코니와 노련한 문지기 김병지까지 따돌리는 동작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경기장 전체의 분위기를 봐도, 이골은 쐐기골이 분명했다.

3-3의 극적인 드라마 만들어냈지만...

하지만 전남 벤치에서는 경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탄천종합운동장 경기 소식에 놀라운 반전이 생겼기 때문이다. 0-1로 끌려가던 성남이 3-1로 판세를 뒤집어 버린 것이다. 전남이 극적으로 비기기만 해도 울산을 밀어내고 상위 스플릿에 올라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희망은 후반전 교체 선수 코니에게 전달됐다. 키다리 수비수로 뛰기 시작했지만 코니의 특명은 큰 키를 이용해 기습적인 공격에 가담하는 것이었다. 87분에 그 희망이 싹을 틔웠다. 오른쪽 측면에서 김태호가 날카롭게 띄워준 공을 코니가 머리로 방향을 살짝 바꾸며 2-3으로 따라붙는 골을 터뜨린 것이다.

그리고 후반전 추가 시간도 거의 다 끝날 무렵, 용현진 대신 오른쪽 측면 수비로 자리를 바꾼 최종환의 밀기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이 인천 벌칙구역 바로 밖에서 만들어졌다. 이 기회에 문지기 김병지까지 전남 골문을 비우고 달려왔다. 그만큼 절실한 순간이었다. 김영욱이 오른발로 감아올린 공은 인천 문지기 유현이 1차로 막아냈지만 코니의 절묘한 뒷발질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터진 전남 드래곤즈 코니의 극적인 3-3 동점골 순간

후반전 추가 시간에 터진 전남 드래곤즈 코니의 극적인 3-3 동점골 순간 ⓒ 심재철


전남 선수들은 뒤엉켜 3-3의 극적인 드라마를 기뻐했다. 김병지는 누구보다 기뻐하며 벤치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 사이에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또 다른 반전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석주 감독을 비롯한 전남 벤치에서는 김병지를 활짝 웃는 표정으로 끌어안을 수 없었다.

1-3으로 끌려가던 울산 현대가 73분부터 84분까지 무려 세 골을 몰아넣으며 4-3 재역전승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정규리그 33라운드 여섯 경기가 같은 시각에 시작된 것은 어쩌면 이러한 축구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탄천에서 울산이 한숨을 돌리며 활짝 웃을 때, 인천의 숭의 아레나에서 전남은 땀과 눈물을 닦아야 했다. 이것도 축구다. 두 팀 앞에 우승 트로피가 놓여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위 스플릿에 올라가 11월 한 달 간 다섯 경기를 치르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다.

특히, 전남은 가을로 접어들기 전까지는 상위권을 유지하며 내년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 리그 티켓(3위 이내)까지 넘보던 팀이었다. 높이 있었기에, 하위 스플릿으로 미끄러진 충격도 더욱 컸다.

이제 하위 스플릿에 묶인 팀들은 강등을 걱정해야 한다. 겨우 다섯 경기로 최종 순위표가 나온다.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11위 경남과 8위 인천의 승점 차이는 6점밖에 나지 않는다. 12위 '꼴찌' 상주 상무는 승격 1년 만에 다시 2부 리그(K리그 챌린지)로 미끄러질 위기에 처했다.

 K리그 클래식 33라운드 순위표, 1~6위까지 상위 스플릿 / 7~12위까지 하위 스플릿으로 나뉘었다

K리그 클래식 33라운드 순위표, 1~6위까지 상위 스플릿 / 7~12위까지 하위 스플릿으로 나뉘었다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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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4 K리그 클래식 33라운드 인천 경기 결과(26일 오후 2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

★ 인천 유나이티드 FC 3-3 전남 드래곤즈 [득점 : 디오고(2분,도움-이보), 문상윤(68분,도움-이천수), 진성욱(79분) / 안용우(15분), 코니(87분,도움-김태호), 코니(90+4분)]

◎ 인천 선수들
FW : 디오고(64분↔진성욱)
AMF : 최종환, 이보, 이천수
DMF : 김도혁(78분↔임하람), 구본상
DF : 박태민, 이윤표, 안재준, 용현진(38분↔문상윤)
GK : 유현

◎ 전남 선수들
FW : 스테보
AMF : 심동운(55분↔김영욱), 이종호, 안용우
DMF : 이승희, 송창호(72분↔김영우)
DF : 현영민(76분↔코니), 홍진기, 임종은, 김태호
GK : 김병지
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FC 전남 드래곤즈 K리그 클래식 울산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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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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