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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6개월째 '4월16일'에 멈춰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이제 거리에서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발생 6개월을 맞아, 유가족과 실종자가족, 생존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편집자말]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있는 분들께 작은 힘이나마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 '리멤버0416' 회원들. 왼쪽부터 김현영, 조진영, 오지숙, 강영희씨.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있는 분들께 작은 힘이나마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 '리멤버0416' 회원들. 왼쪽부터 김현영, 조진영, 오지숙, 강영희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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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엄마 한 명이었다.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두 눈으로 목격한 뒤, 집에서 울기만 하는 건 '자기 연민'일 수 있다고 생각한 5남매의 엄마 오지숙(39)씨가 4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섰다.

"안타깝지만 어쩌겠어요, 늘 그랬듯 잊히겠죠" 체념한 듯 뱉은 한 유가족 어머니의 말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나선 게 1인 시위의 시작이었다(관련기사: 독수리 오남매의 엄마 "저에게 1초만 주소서").

참사 6개월이 지난 지금, 오씨와 같은 마음으로 길거리에 나선 또 다른 '엄마', '아빠'는 약 150명에 이른다. 일부는 안산 분향소와 광화문 광장, 국회 등 장소를 정해 돌아가며 1인 시위 중이고, 나머지는 진도·제주도 등 각 지역에서 시간이 될 때마다 피켓을 든다. 이들 '리멤버0416'의 SNS소개에는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있는 분들께 작은 힘이나마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설명이 달려있다.

14일 오후 '리멤버0416'의 회원 4명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이 날 만난 김현영(46·서울 구로구)씨와 조진영(36·경기 광명시)씨, 오지숙(39·서울 강남구)씨와 강영희(52·강원 춘천시)씨는 당일 오전에도 대법원·MBC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나이도, 지역도 다르지만 모두 "혼자 울다가 나와서 함께 우니 치유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와 강씨는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기도 하다. 이들이 1인시위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모두 자녀들의 '질문' 때문이었다. 전직 교사인 강씨는 딸과 영화 <변호인>을 본 뒤, "엄마는 그 때 뭐했어?"라는 딸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친구들이 한창 (민주화)운동할 때 저는 공부하면서 (그 친구들에게) 노트나 빌려줬다"던 강씨는 "나중에 손주들이 '할머니는 세월호 사건 때 뭐했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안전사회'는 모두를 위한 경기이자 마라톤... 함께 가요"

'적당히 착한 일 하고 가끔 남 도우면서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던 김씨는 세월호 참사 후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한다. 김씨는 "중학생 딸이 그 때 한창 학교에서 사회과목으로 '민주시민의 정치참여'를 배운 모양이다, 어느 날 제게 '어른들은 왜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가만있었어?'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라"며 그간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했던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6개월은 이들에게도 짧은 시간은 아니다. 오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쳐서 그만두는 분들도 있다"며 "사실 이건 긴 마라톤이기 때문에 서운하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공백을 메꾸기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를 열렬히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 중 몇 분만 짧게라도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며 "'안전한 대한민국'이라는, 모두를 위한 경기(마라톤)인 만큼 적더라도 한 걸음만 함께 뛰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을 위한 1인 시위는 언제까지 하게 될까. 인터뷰 말미 던진 질문에 이들은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라고 대답했다. "이제 매일 울고만 있던 단계는 지났다"며 "지금 저희가 피켓을 드는 건 아줌마들이 하는 지극히 작은 행동일 수 있지만, 이것이 저 개인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는 김씨의 말에 회원 네 명 모두 다시금 고개를 끄덕거렸다.

('리멤버 0416' 참여방법: 그룹 http://omn.kr/8t1s / 페이지 http://on.fb.me/1yG2w1m)

"나 혼자 투표하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1인 시위를 벌인 뒤 광화문광장 농성천막에 모여앉은 김현영, 오지숙, 조진영, 강영희씨.
 서울 시내 곳곳에서 1인 시위를 벌인 뒤 광화문광장 농성천막에 모여앉은 김현영, 오지숙, 조진영, 강영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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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유성애 <오마이뉴스> 기자)
: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먼저 어떻게 1인 시위에 나서게 됐는지 궁금하다."


김현영(아래 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아이들이 뱃속에 갇혀서 죽어가는 걸 보면서… (눈물을 삼키며) 저는 정말 세상이 뒤집어 지는 것 같았다. 그간 적당히 착한 일 하고 가끔 남 도우면서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믿어왔는데 이건 정말 제 잘못이구나 싶었다.

마침 그 때 중학생 딸이 사회과목으로 '민주시민의 정치참여'를 배운 모양이다. 어느 날 집에 와서는 제게 '어른들은 왜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가만있었어?'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 저는 저 혼자만 투표하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안 했다. 사회에 대해 무관심, 무책임한 제 모습에 죄책감을 느꼈다."

오지숙(아래 오) "저도 세월호 참사를 보고 너무 슬펐는데, 그저 집에서 울기만 하는 건 '자기 연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으로만 침잠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유가족 어머니를 만났고, 이 방법으로라도 그 분 손을 잡아드릴 수 있겠다, 마음을 함께 한다는 걸 알릴 수 있겠다 싶었다."

강영희(아래 강) "저는 전직 교사다. 5월 말에 오지숙씨가 점심도 거르면서 1인 시위를 한다는 얘기를 SNS에서 봤다. 저러다 쓰러지지 싶어 점심 교대로 1인 시위에 나갔다. 사실 우리 4월 16일로 돌아가 보면, 정말 많이 울고 힘들어하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서 저 같이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모인 초기 '리멤버 0416' 엄마들이 8명 정도였다."

조진영(아래 조) "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 친구들과 만나 놀고 있었다. '전원구조' 소식 듣고 마음을 놓았다가, 아니라고 해서 조마조마하며 그날 저녁 TV를 봤다. 그런데 보는 것만으로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는다는 게 보이는 거다. 이성적으로는 '아이들이 다 죽겠구나'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어떻게든 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사실 (이런 활동을) 피하고 싶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인도 똑같고, 국민들도 늘 그렇듯 끓는 냄비처럼 분노하다 식어버리겠지'하면서 저는 제 삶으로 돌아갔었다. '우리나라가 한두 번 이런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겠나' 싶어 그렇게 살고 있는 중에 오씨 얘기를 기사로 접했다. 늘 핑계만 대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뭔가 할 수 있겠다' 싶어 바로 나왔다."

오지숙 "세월호 참사를 보고 너무 슬펐는데, 그저 집에서 울기만 하는 건 '자기 연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숙 "세월호 참사를 보고 너무 슬펐는데, 그저 집에서 울기만 하는 건 '자기 연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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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피켓을 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1인 시위 후 본인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까 말했듯 저는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이렇게 1인 시위를 하면서 그걸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1인 시위는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개인의 권리라는 것도 알게 됐고. 주변에서는 '지금 상황에서 이게 되겠어?'하면서 가능성이 적다고들 하는데, 나마저도 안 하면 가능성은 아예 제로다. '내가 나오면 희망은 있지 않나'라고 되묻고 싶다."

  "예전에 딸과 영화 <변호인>을 봤는데 딸이 '엄마는 그 때 뭐했냐'고 묻더라. 엄청 찔리고 말문이 막혔다. 친구들이 한창 (민주화)운동할 때 저는 공부하고 (그 친구들에게) 노트나 빌려주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머지않은 미래에 손주들이 '할머니는 세월호 사건 때 뭐했냐'고 물어보면 '어, 할머니는 1인 시위도 하고 그분들과 같이 있었어'라며 할 말이 있을 것 같다(웃음)."

 "저는 최근에 함께 하면서 피곤하고 바빠진 반면, 오히려 삶이 단순해져서 좋은 면도 있다. 예전에는 학부모 모임이나 교회 등에 적극적으로 나갔는데 4월 달 이후로는 그런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옛날에 이거(1인 시위)를 안 했다고 해서 특별히 더 가치 있는 일을 하지도 않았다고 본다(웃음)." 

- 아무래도 1인 시위로 인해 가족에게 소홀해질 수도 있는데, 반대는 없었나. 자녀들 반응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지금 저희와 함께 하는 분들 중에는 집에서 지지해주는 분들도, 반대하는 분들도 있다. 원래 해오던 일에 1인 시위를 더해야 하다 보니 어떤 쪽이든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심정적 지지조차 못 받는 집안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저 또한 5남매 엄마로서 챙겨야 할게 많다보니 집에서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그러나 저는 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따돌림 받는 친구가 있으면 꼭 친구가 돼 줘라'고 가르쳐왔다. 이번에도 그렇다. 유가족들은 정말 아픔을 겪는 당사자들인데,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걸 안 한다면 애들에게 가르친 걸 제가 뒤집는 게 되는 거다. 부모가 말하는 것과 삶이 일치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도 부모를 보고 배운다."   

"교사였던 제가 퇴직한 이유는 애들 홈스쿨링(home-schooling)을 위해서다. 이걸로 정작 아이들 교육이 소홀해지는 건 아닌가 내심 걱정이 됐는데, 얼마 전 딸이 자기는 (1인시위에) 못 가서 미안하다고, 엄마가 대표해서 해달라면서 피켓을 직접 만들어 주더라. 이제는 100% 아이들을 믿게 됐다. 아이들도 제 갈 길을 찾아가면서 저를 응원해주고 있다."

강영희 "딸이 피켓을 직접 만들어 주더라. 아이들도 제 갈 길을 찾아가면서 저를 응원해주고 있다."
 강영희 "딸이 피켓을 직접 만들어 주더라. 아이들도 제 갈 길을 찾아가면서 저를 응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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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에 대한 오해 여전해... '더 나은 민주주의' 물려주는 건 어른들 의무"

- 길에서 사람들과 직접 만나다보니 다양한 일을 겪을 것 같다. 직접 해보니 어떤가.

"제가 경기도 광명이라 철산역 쪽에서 자주 피켓을 드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말 모른다. 아직도 '유족들이 의가사 지정 원한 거 아니냐, 대학특례 달라고 하지 않았냐'라면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아예 세월호 사고가 다 끝난 줄 알고 있다가 '아직도 진행 중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 반응은 주로 좋은 편인데, 가끔 70~80대 어르신 중 자기 주장이 강하신 분들이 와서 본인 할 말만 하고 가시기도 한다."  

 "저는 반대하는 사람보다는 되레 격려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해보니까 주로 유가족들에 대한 오해가 많다. 대리기사 폭행하지 않았냐, 불합리한 걸로 고집부리는 거 아니냐는 거다. 저는 이런 이미지를 언론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제가 한참 설명을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는 한다. 자세히 설명할수록 효과가 큰데, 문제는 매번 설명하려니 너무 힘이 든다는 거다."

 "1인 시위를 통해 정보를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피켓 문구를 만들 때도, 피켓을 통해 (자세한) 정보를 줄 건지, 아니면 한 번 고민할 지점만 던져 줄 건지 정해야 한다. 저희가 주로 하는 피켓팅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 각자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거다. 다만 참사에 대한 정보는 언론이 줘야 한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 등을 언론에서 충분히 다뤄줘야 하는데, 어떤 언론도 그런 얘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조진영 "생각보다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말 모른다. 아직도 '유족들이 의가사 지정 원한 거 아니냐, 대학특례 달라고 하지 않았냐'라면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조진영 "생각보다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말 모른다. 아직도 '유족들이 의가사 지정 원한 거 아니냐, 대학특례 달라고 하지 않았냐'라면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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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참사 초기처럼 매일 집에서 울고만 있던 단계는 지났다. 지금 저희가 피켓을 드는 건 아줌마들이 하는 지극히 작은 행동일 수 있지만, 피켓을 든 저 개인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도 변화시키는 일이 될 거라고 믿는다. 저를 지탱해주는 힘은 그런 거다."

"저는 참사 초기 정혜신 박사(심리치유 전문가)가 '슬픔 속으로 뛰어들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적극적으로 슬퍼할 때 슬픔이 극복된다는 뜻인데, 집에서 계속 울기만 하다 나와서 이렇게 함께 슬퍼하니까 아픔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노력하는 만큼, 우리도 할 수 있는 일로 도우면서 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저는 어릴 때 늘 어른들 탓을 하면서 핑계만 댔다. 어른들이 잘못해서 이런 사회에 내가 살고 있다고 불평 했다. 그런데 최근 문득 든 생각이, 나도 이제 36세 어른인데 뭘 했나 싶은 거다. 10대 어른들을 보며 비난했던 것과 똑같은 모습을 지금 내가 하고 있구나, 그냥 인터넷과 지인들에게 투덜거리는 일 외엔 한 게 없구나 싶어서.  

사실 1인 시위 나오기 전에는 혼자서 많이 걱정했다. 비난할 대상이 이제 나밖에 없는데, 가긴 가야겠는데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피켓 들고 딱 1분 있으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민주주의를 물려줘야 하는 건 어른들의 권리이자 의무다. 가능성이 낮아도, 내 의무를 제대로 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리멤버 0416'에는 남자 회원들도 있다. 주로 40~50대 아버지들인데 퇴근 후 저녁에 피켓을 든다. 그들도 마음은 같다. 한 회원은 '제 딸이 고2인데, 이번 사고로 친한 친구가 죽었다더라'며 딸과 유족을 위로하고 싶어 안산 분향소에서 1인 시위를 하신다고 했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아십니까? 우리가 곁에 있겠습니다'란 문구의 피켓이다.

처음엔 한 사람의 애끓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에 지금은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시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참사 후 시간이 지나면서 갈수록 지쳐서 그만두는 분들도 나온다. 사실 이건 비유하자면 긴 마라톤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분들에게 서운하거나 하지는 않다. 다만 한 사람의 공백이 생기면 그걸 메꾸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저희는 열렬한 응원단보다는 미숙한 선수가 필요하다. 비록 걷다 뛰다 하더라도, 단 1Km만 같이 뛴다 하더라도 같이 하면 좋겠다. 우리가 '이민가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어느 선진국도 역사를 들여다보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피를 흘렸다. 지금은 '안전 사회'란 모두를 위한 경기(마라톤)이니만큼, 미숙하더라도 모두 선수로 뛰었으면 좋겠다."

김현영 "지금 저희가 피켓을 드는 건 아줌마들이 하는 지극히 작은 행동일 수 있지만, 이게 피켓을 든 저 개인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도 변화시키는 일이 될 거라고 믿는다."
 김현영 "지금 저희가 피켓을 드는 건 아줌마들이 하는 지극히 작은 행동일 수 있지만, 이게 피켓을 든 저 개인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도 변화시키는 일이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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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리멤버0416, #세월호 유가족 1인시위, #세월호 1인시위,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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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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