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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을 망가뜨려놓고 사과 한 마디도 없습니다. 오히려 저를 파렴치범으로 만들려고까지 했네요.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지난 13일 종로 '엠스퀘어'에서 제12회 '환자샤우팅카페'가 열렸다. 이날은 유명 척추·관절 전문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김수용(가명, 29)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의료사고를 당했음에도 오히려 A병원 측으로부터 인권을 침해받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지난 2012년 무릎에 통증을 느껴 찾은 병원에서 '장경인대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장경인대증후군은 달리기나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이들이 겪기 쉬운 무릎 질환이다. 처음에는 주사 중심의 시술이 이루어졌지만 두 번째 방문에서 담당 의사가 수술을 권유했다.

"찢어진 이마를 꿰매는 수준 밖에 되지 않으니 수술 받는 것은 어떠냐? 수술 받으면 바로 회복이 되고 퇴원도 할 수 있다."

의사가 수술을 권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수술 이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는 더 나빠졌다. 문제는 과잉진료였다. 보험사에서 받은 '전문의 자문 회신 결과'를 보면 "기록으로 미뤄 판단하기에는 수술이 반드시 필요한 상태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으로 병원 측의 과실을 75% 인정하고 있다. 대학병원 의사들도 수술보다는 약물이나 물리치료를 시도하는 게 더 일반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일반적으로 '장경인대증후군'은 수술보다 약물이나 물리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김수용씨 경우에도 보험회사에서 75% 병원측 과실을 인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장경인대증후군'은 수술보다 약물이나 물리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김수용씨 경우에도 보험회사에서 75% 병원측 과실을 인정하고 있다.

의료사고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김씨를 더 분노하게 만든 것은 사고 이후 병원과 담당의사의 행태였다. 수술에 대해 묻는 김씨의 어머니에게 담당의사는 "수술이 잘 되고 말 것도 없다"며 "별 거 아닌 것 같고 그러냐"고 윽박질렀다. 심지어 수술한 지 이틀 만에 반 강제적으로 퇴원을 당했다.

억울함에 병원 게시판에 항의하는 글을 올려 봐도 삭제되기 일쑤였다. 인터넷에 올려도 블라인드 처리됐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특정 병원 상호를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됐다.

김씨는 "군대도 다녀올 만큼 멀쩡했는데 잘못된 수술로 인해 보행 장애가 온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며 "단지 나 같은 환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이 뭐 그리 잘못된 것인가"하고 분개했다.

병원은 오히려 김씨를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형사고소했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피해자들과 함께 병원 정문에서 시위를 벌이자 병원 측에서 대응한 행동이었다. '채무부존재'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병원은 자신들이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의료사고 발생해도 사과조차 않는 경우 다반사

김씨와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 병원에서 비일비재하다.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들이 겪는 다반사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윤주씨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 1월 최씨의 딸은 응급실에 들어갔다가 겨우 몇 시간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원무과를 찾아가 "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니까 왜 내 딸이 죽었는지 그 이유를 말해 달라"고 물었다. 하지만 원무과는 "최선을 다했고 문제가 없다"며 "더 알고 싶다면 법대로 해라"고 엄포를 놨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나면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을 지려고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와 환자가족을 중상모략해 손해배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하는 병원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나면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을 지려고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와 환자가족을 중상모략해 손해배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하는 병원이 대부분이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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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에 나선 첫날에는 병원에서 여러 명의 건장한 남자 직원들이 나와 겁을 줬다. "신고 하지 않은 1인 시위는 불법 집회"라며 경찰까지 불렀다.

최씨는 "기자들이 이와 관련해서 취재에 들어가자 병원은 내가 합의금을 너무 높게 불러 합의가 되지 않고 있다는 루머를 퍼뜨렸다"며 "예강이가 어떻게 죽게 됐는지 그 원인을 제대로 듣고 병원의 사과만 받으면 되는데, 우리가 거액의 보상금을 원하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니 실소가 나올 지경"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손상현씨의 아들 손영준씨는 지난 2007년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반 식물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손상현씨는 사과 한 마디도 없는 병원과 의사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영준씨는 선택진료한 마취과 의사가 아니라 레지던트가 마취를 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소송을 제기하자 병원에서는 선택진료비를 돌려줬다. 법원에서도 결국 병원 손을 들어줬다. 어이가 없었다. 손씨는 "서류 때문에 병원 원무과에서 갈 때마다 원무과 직원이 나를 고소하겠다며 위협을 가하고 살살 약 올리는 등 폭행 유도마저 했다"고 주장했다.

손씨는 "선택진료비를 돌려준다고 내 아들이 수술 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정말 무책임하고 양심도 없다"며 "사과 한마디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환자가족을 마치 폭탄 보듯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환자들이 약자가 되는 이 사회가 원망스럽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도촬'까지 서슴지 않는 병원의 태도, 소름 끼칠 정도

특히 김수용씨는 병원 측이 자신을 '도둑 촬영'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보행장애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도촬'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자신의 집 앞에서 계속 감시를 당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게다가 김씨는 병원 측이 거짓 동영상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병원이 경찰에 제출한 동영상에는 김씨와 비슷한 체구의 남자가 운동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3D 카메라를 부착한 보행 분석 검사에서 이미 보행 장애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병원이 도촬도 모자라 거짓 동영상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그는 보행 분석 검사를 통해 보행 장애 판정을 받은 상황이다.
 김씨는 병원이 도촬도 모자라 거짓 동영상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그는 보행 분석 검사를 통해 보행 장애 판정을 받은 상황이다.

김씨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함에 눈물만 나온다며 하소연했다. 의료사고 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부정맥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여러 번이다. 자기 마음도 추스르기 힘든 상황인데 병원이 제기한 소송을 방어하려면 너무 벅차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에 법무법인 제현의 구영신 변호사는 "채무부존재 민사소송과 관련해서는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으로 반소를 제기할 수 있다"며 "보험회사에서도 병원 측 과실을 75% 인정한 것이니 만큼 유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사진 및 동영상 촬영과 관련해서는 '초상권 및 사생활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로 기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도 제기도 해 볼 수 있다"며 "타인을 촬영해 허위의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다면 이 부분은 '증거위조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형사소송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의 대표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최근 일부 대형병원이나 네트워크병원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법무팀과 홍보팀이 달라붙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추세다. 이번 김씨의 경우도 경찰에 옥외 집회신고까지 하고 합법적으로 집회를 했고 KBS <소비자리포트>에서 방영된 (자신의 사례) 내용을 캡처해 올린 것뿐이다.

그럼에도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고소와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의료사고로 인한 채무부존재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것을 보면 최근의 병원의 추세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만일 해당 병원이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김씨 관련 거짓 증거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허위 동영상까지 찍은 것이라면 이것은 심각한 환자인권침해행위로서 환자단체연합회 차원에서 적극 대응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A병원 "과잉진료 의도 없었다... 도촬 아닌 정당한 증거수집"
김수용씨의 진료를 담당했던 A병원 홍보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및 서면 인터뷰를 통해 김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우선 과잉 진료에 대해서 A병원 관계자는 "김씨는 2~4년 전부터 같은 증상으로 다른 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아왔었다"며 "본원에 내원 후 운동 치료와 주사 치료를 병행했으나 이런 보전적 치료로는 효과가 크지 않아 수술을 권유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수익을 위해 과잉 진료를 의도했다면 처음부터 MRI 촬영 등 높은 수가의 진료 수단을 썼을 것"이라며 "당초 우측 무릎 수술부터 진행하려던 것을 대학 개강을 앞둔 김씨의 요청으로 양측 동시 수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소송 관련 건은 "민사소송과 형사고소를 한 것은 맞으며, 현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초 김씨를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며 "김씨가 법원이 금지한 표현 및 행위를 지속해서 이에 따른 민사소송을 따로 제기했고, 지난 7월 승소했다"고 밝혔다. A병원 관계자는 또 "김씨는 본원에게 상당 금액의 보상금을 배상해야 하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본원은 이를 집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A병원은 김씨를 촬영한 것은 인정했지만 '도촬'이 아니라 정당한 증거 수집이라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김씨의 집회 모습과 김씨가 방문한 인근 식당 업주의 증언을 토대로, 김씨의 상태가 김씨의 주장만큼 심각한 상태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집회 당시 목발을 짚지 않고 있는 모습을 촬영하여 경찰에 제시했으나 경찰이 '민사 소송에 대해서는 사건당사자들이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며 '동영상 촬영을 포함한 증거수집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허위 동영상 제작과 관련해서 A병원은 "촬영을 한 당사자는 김씨가 맞다고 주장하고, 김씨는 본인이 아니라고 완강하게 부인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해당 동영상 분석을 의뢰했다"며 "결과는 판독 불가였다"고 말했다. A병원 관계자는 "해당 동영상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고의적으로 대역을 동원해 증거를 조작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환자 리포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환자샤우팅카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장경인대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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