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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갖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내년부터 보육료 지원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모들은 잠시 술렁이는 듯 했으나,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지난 몇 년간 보육료 지원을 둘러싼 내홍을 겪은 터라 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부처 간 예산을 둘러싼 기싸움을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인 듯하다.

교육감협의회 "누리과정 지원 중단" vs 정부 "위협"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은 7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보육예산을 부담하는 건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누리과정 등 정부시책사업은 중앙정부가 부담해 지방교육 재정을 정상화 해달라"고 촉구했다.
▲ 시도교육감들 "어린이집 보육료, 중앙정부가 부담하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은 7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보육예산을 부담하는 건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누리과정 등 정부시책사업은 중앙정부가 부담해 지방교육 재정을 정상화 해달라"고 촉구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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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사태는 지난달부터 예고되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9월 18일 열린 총회에서 결의문 "2015년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중앙정부가 책임져라!"를 통해 내년부터 만3~5세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편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급기야 교육감협의회는 지난 10월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부금 예산으로 누리과정 중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은 편성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해 논란이 커졌다. 교육감협의회의 입장은 단호하다. 영유아 무상보육은 정부의 공약사항인데 이 비용을 지방 재정 책임으로 돌리고, 정부가 나몰라라한 데 따른 반발이 크다.

지방정부는 이미 지방채 발행으로 3조 원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고, 내년에 추가되는 누리과정 부담 2조 원까지 떠안으면 재정이 파탄에 이른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갑작스런 기자회견이 이뤄진 다음날 기획재정부의 반박이 이어졌다.

기획재정부는 '2015년도 누리과정 사업, 차질 없이 시행 가능'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공통 보육과 교육 과정인 '누리과정' 제도는 2012년에 합의해 개정된 내용이며, 지방교육교부금의 자금 악화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일축했다.

같은 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교육감의 반발을 질타하며, "누리과정은 지난 정부 때부터 합의된 사항"이라며,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발언이 또다시 교육감들의 반발을 샀고 국고로 지원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며 평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본질은 '대선 공약' 파기한 정부 책임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선 공약'을 파기한 중앙정부 책임이다. 노인 기초연금과 영유아 무상보육은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이다. 2012년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으나, 이마저도 소득하위 70%로 대상을 줄인 데다 국민연금과 연동해 실질적으로 기초연금 20만 원을 받는 노인층은 56.2%밖에 되지 않는다(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윤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한 '기초연금 수급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초연금·영유아 무상보육도 새 정부 시작과 함께 전 연령과 소득층으로 본격화되었으나, 정부의 재정 책임이 불분명해 매년 지방정부와 다투고 있다.

이번에 교육감협의회와 정부 간에 빚어진 날선 대립은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서 시작되었다. 지난 9월 18일 기획재정부는 '2015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전체 복지 예산 중에서 보건복지부 예산은 5조 원이 증가했으나, 기금 지출을 제외하면 사실상 2조 원 정도만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이 예산으로는 새 정부가 공약한 노인 기초연금에 필요한 예산을 배정하기도 부족한 실정이다 보니,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예산편성이 반복되었다.

정부가 발표한 9·18 예산안을 보면, 전체 총지출은 376조 원으로 전년 대비해 20조2100억 원이 확대되었다. 이 가운데 내년도 복지, 보건, 노동을 합한 복지분야 총지출은 115조5000억 원으로 전년대비 9조1000억 원이 늘었다. 이 중 보건복지부 예산은 51조9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5조 원이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의 증가한 예산의 절반은 공적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기금으로 지출될 부분이라, 사실상 이를 제외한 복지부의 증가한 예산은 2조2000억 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노인 기초연금이 원래 공약보다 후퇴되었음에도 내년에 필요한 예산이 2조3800억 원이다. 사실상 영유아 보육료 등 다른 분야 예산을 편성할 여력이 없는 안이다. 오히려 영유아 보육 예산은 4000억 원이나 삭감되었다. 그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만 3세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 2948억 원이 줄었다. 이는 현재 교육감들의 반발을 산 해당 예산으로, 내년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몫으로 편성되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적정' vs '부족' 대립

누리과정을 홍보하는 교육부의 '유치원 시스템' 홈페이지 모습.
 누리과정을 홍보하는 교육부의 '유치원 시스템' 홈페이지 모습.
ⓒ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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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둘러싼 시각 차이도 갈등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내년도 예산만 문제가 될 뿐, 지속적으로 학생수가 감소해 교육복지 지출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 총액의 20.27%로 정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적정규모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가 추정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증가율 추이는 연평균 6.3%로, 2015년 39.5조원에 지방채 인수분 1.9조원을 포함할 경우 41.4조원이며, 2016년에는 45.5조원으로 계속 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 관계자의 시각은 다르다. ①정부가 국민과 약속한 교육복지 부담이 계속 지방정부의 몫으로 넘어오고 있다 ②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지출과 관계가 깊은 학생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지출이 줄어드는 게 아니며, 교부금의 60%를 웃도는 교원의 인건비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코 높은 게 아니다 ③경기 불황으로 내국세 수익의 어려움이 총체적으로 맞물려 지방재정 압박이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현재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교부율을 적어도 지금보다 2~5%p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지방교육재정의 적정 규모 및 향후 재정소요 등에 관한 연구(2012년)'를 보면, 만3~5세의 누리과정 예산을 반영하지 않더라도 지방재정소요 규모는 이미 2014년 50.4조원, 2015년 51.3조 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지방정부 간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 이 때문에라도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영유아 복지가 왜 중요한지, 이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와 합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보육료 갈등과 턱없이 부족한 '예산'은 부모들의 피로감과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결국 섣부른 선심성 공약이 불필요한 갈등만 부추긴 셈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최정은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새사연 홈페이지(http://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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