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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마을숲, 도로로 숲이 둘로 나뉜 모습.
 수월마을숲, 도로로 숲이 둘로 나뉜 모습.
ⓒ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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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이 유난히 곱습니다. 누구라도 교외로 떠나고 싶은 맑은 하늘이 있는 가을날입니다. 그럼에도 차를 타고 도로에 접어들면 짜증나기 일쑤입니다. 전주에서 임실을 지나 수월 마을까지 가는 동안 이렇게 넓게 뚫린 도로에 많은 자동차가 질주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래 전 <한겨레>신문에서 주관한 풍수학교가 있었습니다. 풍수학교에서 민중화가 홍성담 선생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는 강연에서 "백두대간에 닿아 있는 산을 파헤쳤을 때 그 아픔이 산줄기를 따라 백두산까지 전달된다는 생각을 하면 쉽게 우리가 조국산천을 파헤쳐서는 안 될 것"이라 언급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감명 깊었던 강연이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산천의 지맥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몽염 장군 이야기가 전합니다. 진시황제가 죽고 후계 문제가 거론되고 있을 때 당대의 명장 몽염이 진시황의 시종 조고(趙高)의 모략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자 몽염 장군의 마지막 독백이 다음과 같이 전해집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만리장성 쌓는 일을 감독하면서 수많은 산룡지맥(山龍之脈)을 끊어 국토에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 - <사기(史記)> '몽염 열전(列傳)' 중

대지의 기맥을 끊으므로 몽염은 그의 국토에 위란을 초래했다고 자각한 것입니다. 실제로 몇 년 지나지 않아 진나라는 멸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도로망 체계는 일제에 의하여 수탈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철도를 부설하면서 우리나라 산천 곳곳의 지맥을 다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쇠말뚝을 박아 민족정기를 말살했습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우리는 국토에 도로를 건설하면서 산의 혈맥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하여 산의 혈맥을 자른 것과 지금 우리가 도로 건설을 위하여 무차별적으로 산을 헐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전북 임실 수월(水越)마을은 물이 마을 언덕으로 넘어왔다고 하여 '무내미'(물넘이)라 부릅니다. 오늘날에는 수월제 물이 '무내미'까지 흘러와 농사를 짓기 때문인 것으로 마을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월제는 일제 강점기에 축조된 것으로 수월마을이 편안하게 농사를 짓게 해 주었습다. 수월마을은 성수산, 오봉산 뻗어 내린 줄기에서 복호산, 옥녀봉 아래 자리 잡았습니다. 마을뒷산인 성산에는 삼국시대 성터가 있는데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고 합니다. 일명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인 셈입니다.

봉은 전설상의 상서로운 날짐승으로, 그 생김새가 닭의 주둥이, 제비의 턱, 뱀의 목, 거북의 등, 용의 무늬, 물고기의 꼬리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태평성대와 제왕를 상징하는 짐승으로, 봉은 오색의 깃털을 지니고 오름(五音)을 내며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의 열매를 먹고사는 새라 하여 고결한 성품을 지닌 인물에도 비겼습니다. 비봉포란형의 경우 혈(穴)은 양 날개(兩翼)안, 즉 알을 품어주는 날개 안에 혈처가 있다(飛鳳形抱卵案穴兩翼)고 합니다.(김두규)

수월 마을 숲은 마을 뒤편 북동쪽 방향에 니즈막한 산줄기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마을 뒤편 산줄기가 낮기 때문에 겨울철 바람을 막기 위하여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마을 숲은 느티나무와 개어서나무로 마을 북동쪽 산줄기를 휘돌아 조성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나지막한 언덕으로 성수면 소재지를 가려면 이곳을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새마을운동 이후 길이 나며서 오늘날처럼 마을숲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도로는 마을사람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도로로 인하여 나뉜 마을 숲이 허전한 마음을 들게 합니다. 그럼에도 마을 숲 사이에 고즈넉하게 수월정(水越亭)이 있어 마을사람들이 정겹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맞은편 당산나무 아래에서 지금도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지내기 때문에 위안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새전북신문(2014.10.7)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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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북 전주고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갖고 전북지역 마을 곳 곳을 답사하고 틈틈히 내용을 정히라여 97년에는<우리얼굴>이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전북지역의문화지인 <전북 문화저널> 편집위원을 몇년간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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