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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의 상징이 돼 버린 전모. 지거비의 눈길을사로잡은 건 어우동의 잘록한 허리나 풍만한 유방이 아니라 바로 그녀가 쓰고 있던 전모였습니다.
 어우동의 상징이 돼 버린 전모. 지거비의 눈길을사로잡은 건 어우동의 잘록한 허리나 풍만한 유방이 아니라 바로 그녀가 쓰고 있던 전모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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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족보)에서 파낸다'는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어 본 경우도 있을 겁니다. 애물단지의 지경을 넘어 끊임없이 속을 썩이는 자식을 둔 부모들이 노발대발하며 자식들에게 퍼붓는 최후의 엄포이자 마지막 공갈 중의 하나가 바로 '족보에서 이름을 파낸다'는 말입니다

말은 그렇게들 하지만 막상 족보에서 이름을 파냈다는 사람을 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족보에서 이름은 파낸다는 건 그를 낳아 준 부모들조차 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끔찍한 경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족보에서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 있습니다. 조선 성종임금 대 이래 희대미문의 음녀이자 탕녀로 기록되어 온 어우동이 바로 족보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 주인공입니다.

야동보다 더 야한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지은이 김별아, 펴낸곳 (株)해냄출판사)는 어우동의 삶을 소설로 그려낸 내용입니다. 어우동은 고관대작의 딸로 태어나 왕실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효와 정절을 목숨보다 더 강조하던 조선 왕실의 며느리가 된 어우동이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족보에서 조차 그 이름이 지워지게 되었는지가 책에서 서사시처럼 전개됩니다.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지은이 김별아 / 펴낸곳 (株)해냄출판사 / 2014년 9월 15일 / 값 1만 3800원)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지은이 김별아 / 펴낸곳 (株)해냄출판사 / 2014년 9월 15일 / 값 1만 3800원)
ⓒ (株)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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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관대작의 집이기는 하나 부부간의 멸시와 가족 간의 불화가 끝이지 않는 집에서 자란 어우동. 왕실의 며느리가 되긴 했으되 얼마 되지 않아 소박을 맞게 된 어우동은 천성적으로는 어쩜 휴화산만큼이나 펄펄 끓는 피를 갖고 있었던 뜨거운 여자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시대적 가치와 문화적 굴레에 속박되어 그 뜨거움을 발산하지 못하다 소박을 계기로 맞은 독립된 자유(?)에서 발산한 그 뜨거움이 연달아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어우동은 시대적 가치와 문화적 굴레에 파열을 일으키는 역사적 파문으로 기록됩니다.

어우동이 남자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한 순간들은 관음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할 만큼 야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사랑, 기기괴괴한 체위, 성적 쾌감을 증가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별별 성인용품들… 어우동이 육체적으로 느끼는 순간순간의 짜릿함은 살갗을 태울 만큼 뜨겁고,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황홀한 오르가즘이기에 읽는 이의 숨결조차 거칠어지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열 여자 싫어할 남자 없다'는 말은 회자되고 있어도 '열 남자 싫어 할 여자 없다'는 말은 회자되고 있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우동은 열 남자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나이도, 신분도, 미추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본능적으로 사랑하고 암컷의 본능인 양 짝짓기를 하듯이 관계를 가졌을 뿐입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정답이 없고, 비밀이 없다고 하더니 그 말을 증빙이라도 하듯 어우동이 누리던 사랑 또한 왕의 귀에까지 전해집니다. 결국 어우동은 붉은 올가미를 목에 감은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삶의 끈을 놓습니다.

오직 어우동. 그녀만이 죽었다. 처형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종부시에서『선원록(璿源錄)』에 남은 그녀의 이름을 지우기를 청하였다. 왕실의 족보인『선원록』에 그녀는 태강수의 처로 이름이 올라 있었다. 왕이 명을 내려 그녀의 이름을 지웠다. 이제 그녀는 누구의 딸도 아내도 어미도 아닌, 그리하여 착하고 정숙하고 자애로울 필요가 없는 순정한 암컷이 되었다.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339쪽-

어우동에게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죽을 듯이 짝짓기를 갈구하던 대개의 남자들은 막상 일이 터지자 자신을 구명하기 위한 변명에 급급합니다. 하지만 전 남편 태강수 이동의 팔촌인 이난만큼은 어우동을 구하기 위한 마음을 놓지 않으니, 어우동을 만난 이난만큼은 진솔한 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막상 죽음을 맞게 된 어우동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그녀는 그렇게 죽음으로 어떤 가치와 제도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몸이 됩니다.

종실의 관계가 민간과 다르긴 하나, 어쨌든 촌수로 치면 방산수 이난은 전 남편 이동의 팔촌이었다. 나이로는 이동이 윗길이나 항렬이 낮아 이난이 그녀의 시아주버니뻘 되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유복친(有服親)이었다. 상(喪)이 났을 때 복제(服制)에 따라 서로 상복을 입어야 하는 친척이니 꽤 가까운 일가라 할 만했다.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67쪽-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 부분이 있습니다. 소설일지라도 근거가 있고 배경이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전 남편 이동과 간부로 만난 이난은 팔촌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항렬이라면 삼종형제가 될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이성계는 고조할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나이로는 이동이 더 많다(윗길)고 했으니 이동은 이난에게 삼종형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난이 그녀(어우동)에게 시아주버니뻘이 된다고 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항렬이 낮다는 것은 세(대) 수가 다르다(낮다)는 말이 되는 데, 세(대) 수가 다른(낮은) 팔촌이라면 항렬이 같을 수 없는 조손(祖孫)관계가 돼 이 또한 시아주버니뻘이란 설명은 맞지 않을 것입니다.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를 읽으며 느끼는 야함은 상상력까지 뿌리 채 자극되는 깊고도 진한 야함입니다. 게다가 역사의 뒤안길을 서성이는 감칠맛 같은 재미까지 더해지니 가을밤을 뜨겁게 해줄 불쏘시개 같은 독서가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지은이 김별아 / 펴낸곳 (株)해냄출판사 / 2014년 9월 15일 / 값 1만 3800원)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김별아 지음, 해냄(2014)


태그:#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김별아, #(株)해냄출판사, #전모, #어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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