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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거리의 주인공 삼치 안주.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아 삼치거리의 명물이지만 사실 인하의집 주인 홍재남사장의 손님사랑으로 탄생한 뉴질랜드 산 '바라쿠다'라는 생선이다.
 삼치거리의 주인공 삼치 안주.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아 삼치거리의 명물이지만 사실 인하의집 주인 홍재남사장의 손님사랑으로 탄생한 뉴질랜드 산 '바라쿠다'라는 생선이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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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이 개막했다. 때맞춰 인천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바로 <삼치 거리 사람들>(최희영 지음, 썰물과밀물 펴냄).

'삼치와 막걸리'로 대표되는 동인천 삼치 거리를 현장 취재로 담아낸 책이다. 책 속에 소개된 에피소드들이 흥미롭다. '장사가 안 되는 집이 있으면 자신의 손님을 직접 그 집으로 모시고 갔다'거나 '절대로 가게 터를 확장하지 마라, 다른 집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상인까지. 무한경쟁이 난무하는 대한민국 속에서 이렇게 소담한 이야기가 있을 줄이야.

"허름한 나무 대문안에 왁자하니 모여 앉아 찌그러진 주전자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놓고 밤새 정치와 이념을, 그리고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한 사람이 어디 인하대생뿐이었겠는가. 허름하고 비좁은, 생선 냄새와 막걸리 냄새와 사람 냄새가 섞여 있는 이 집에는 인천의 불안한 청춘이 다 모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시국을 논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과 이별을 얘기하고 또 한쪽에서는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술잔을 높이 들었던 것이다."
- <삼치 거리 사람들> 중에서 (49쪽)

인간 냄새 그득한 삼치 거리 골목

'사람 냄새' 나는 이 거리를 책으로 엮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동인천 역 '대한서림'에서 홍예문을 향해 걸어가면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삼치 거리가 있다. 지난 20일 오후 최희영 작가와 만났다. '정치와 이념' 그리고 '사랑과 인생'을 토로했다는 삼치 거리로 들어섰다.

"책에서 읽었어요. 이 집 대통령 방!"

책에서 본 대목을 말하며 인터뷰할 자격 있음을 은근히 밝혀봤다. 식당의 첫 번째 방 불을켜니 '박정희' 방이다. 다음 방 불을 켜자 '노무현' 방. 우리는 곧 방 안으로 들어섰다. 1963년생 동갑내기다 보니 우리는 1980년대 향수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술술 풀렸다.

- 인천 출신도 아닌데 동인천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1980년대 5·3 인천항쟁 외에는 인천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항쟁에 깊이 발을 담그지 못한 후회가 있었는데 문예창작과(중앙대)를 다니며 강경애의 <인간문제>, 현덕의 <남생이>을 읽으며 인천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배다리 헌책방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인천 거리가 배경인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와 <파이란>을 보게 됐는데,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거리가 마음에 다가왔지요. 그러다 삼치 거리 이야기를 책으로 기획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마치 운명처럼 맡았달까요."

최희영 작가는 중국 중앙민족대학에서 소수 민족및 문화인류학을 공부했고, 북한에서 영상 기록자이자 '문학 PD'도 경험했다. 2년여간 라오스에 머물며 <잃어버린 시간을 만나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삼치거리 사람들
 삼치거리 사람들
ⓒ 썰물과 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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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치 거리 이야기를 쓰는데 적임자셨군요.
"삼치 거리라고 해서 먹거리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주제는 다른 작가들이 많이 다루니까. 출판사와 만났을 때 공동체와 공동체 문화로 주제를 맞춘다고 하길래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거지요."

- 이 책의 감동은 삼치 거리의 모태인 '인하의 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치 거리 취재에 접근하면 할수록 인하의 집 홍재남 사장님 부부의 진정성이 보였어요. 진짜 멋있게 살다가 가신 분들이에요. 이 분들은 배가 고팠어요. 어릴적부터 서러운 삶을 사셨죠. 배고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약자를 돕는 삶을 사셨어요. 홍 사장님은 월남한 '38따라지'로 인천에 정착했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힘든 생활을 하셨고, 부인 이초자 여사 역시 고아셨지요."

- '인하의 집'이 인심을 얻은 요인은 뭘까요?
"1968년 문을 열고 난 후 배고픈 시절을 잊지 않고 손님들에게 한 줌 더 주는 인정을 베풀면서 점점 입소문이 났지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 거리가 만들어진 건 전적으로 두 분의 양보와 나눔 정신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어요. 두 분은 돈을 모으는 데 모든 걸 걸면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아신 거죠. 대박이 나니 장사를 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에게 선뜻 '다같이 잘 먹고 잘 살자, 내가 조금 덜 먹을 테니까'라며 손을 잡아준 두 분에게 지금 이 거리의 주인들은 보은과 같은 고마움을 갖고 있어요."

- 나누는 마음이 행복하다는 진리를 실천하셨군요.
"맞아요. 텃세라는 건 애당초 없었고, 삼치 손질부터 가게 운영 노하우, 심지어 새로 생긴 가게에 손님이 없으면 손님을 모시고 가서 이 집도 맛있다고 해주는 원조. 얼마나 고맙겠어요. 원조 홍 사장님 부부가 '나처럼 나눴지? 그럼 당신도 나눠!' 하시며 수십 년을 이어온 거죠. 여기 사람들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두 부부의 말을 절대로 잊지 않아요. '나눔을 유지할 때 우리 거리가 산다'는 정신을 몸으로 느끼고 계신 거죠."

삼치거리의 '인천집' 대통령 방에서 진행된 인터뷰. 노무현 대통령 방을 사진 등으로 꾸며놓았다.
 삼치거리의 '인천집' 대통령 방에서 진행된 인터뷰. 노무현 대통령 방을 사진 등으로 꾸며놓았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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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남 사장은 아들의 권유에 못 이겨 방송에도 나갔지만, 텔레비전에 나갔다는 홍보물을 간판이나 식당에 붙이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간판에 원조라는 말을 절대로 넣지 못하도록 했다. 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배려가 없으면 안 된다는 '원조의 정신'. 이 정신이 삼치 거리 공동체의 기반이 된 것이다.

삼치 거리 가게 주인들은 지금도 홍 사장 부부에 대한 은혜를 잊지 못해 막걸리 잔 들고 산소를 찾는다고 한다. 최희영 작가도 취재를 진행하면서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며 곧 홍 사장 부부 산소를 찾을 생각이라고 전했다. '양산박 삼치'를 운영하는 주인 이야기 한 대목이 인상에 남는다.

"처음에는 뭘 몰라서 삼치를 찜통 채반에 올려놓고 삶았다. 그 모습을 본 인하의집 부부가 5분 동안 웃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삼치 손질하는 방법부터 삼치 튀기는 방법까지 손수 가르쳐 주셨다. 이미 식당 계약할 때와 식기 준비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중략) 그 분들 덕에 이 거리에서 먹고 살았고, 아이들 공부도 다 시켰다. 그래서 인하의집 내외분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날 때면 삼치 한 마리 굽고, 막걸리 한 병 꿰차고 그분들 산소에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온다."
- <삼치 거리 사람들> 중에서 (149~150쪽)

막걸리 한 모금, 삼치 한 젓가락. 삼치 거리 이야기는 점점 깊어간다. '인하의 집'이 시작한 공동체는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재미있다. 소설가 지망생 최 작가는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말도 맛깔 난다. 주인과 손님의 소통으로 승화된 거리. 그 현장에서 직접 듣는 걸쭉한 입담은 더욱 농밀해져갔다.

한국에 아직 이런 거리가 살아 있다니...

- 오랜 역사와 전통이 이어진 이유는 뭘까요.
"한 집이 비면 한 집이 들어왔고 점점 새로운 집이 들어올 때마다 자연스레 공동체적인 문화가 생긴 겁니다. '어떤 이론이 있으니 그렇게 하자' 했다면 가능하지 않았겠지요. 50년의 역사가 지금의 20여 개의 가게 공동체를 만든 거예요."

- 삼치 거리의 공동 구매 방식과 단일 가격 제도도 참 흥미롭더라고요.
"여기 오신 주인들은 가난하고 바쁜 사람들이었어요. 구매하고 손질하고... 너무 바쁜 일이었지요. 함께 구매해서 나눠주고 손질 방법도 알려주고 하면서 공동 구매가 정착된 거예요. 원래는 홍 사장님이 1960년대 후반 연안 부두에서 버려지던 '바라쿠다'라는 생선을 가져다가 만든 것이지요. 가난한 손님들이 안주 없이 술만 마시니 안타까워 저렴한 안주를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예요. 처음엔 홍 사장님만 살 수 있어 직접 나눠주다가 그게 공동 구매의 시초가 됐지요."

- 그럼 삼치 거리에 삼치가 없는 거네요?
"지금은 뉴질랜드 산 '바라쿠다'도 있지만 구매처 다양화 차원에서 국내산 삼치도 파는 가게가 있지요. 단일 가격 제도가 정착돼 있어 구매 가격 차이가 있지만 삼치 거리에 오는 사람은 사실 삼치만 먹으러 오는 게 아니거든요. 삼치하고 얽힌 이야기와 추억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국내산 삼치를 먹으면서 '맛이 바뀌었네'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 나눔과 배려, 공동구매, 단일 가격을 구현한 거리... 상업성 가득한 우리나라에서 모범 사례로 퍼질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거리가 가치가 있는 거겠지요. 삼치 거리는 호객 행위가 없어요. 그저 평안하고 소박해요. 우리나라 길거리 나가서 보세요. 손님 하나 더 끌려고 호객하고, 맛보다 외양이 화려하죠. 좁은 골목에서 남보다 더 많이 팔아야 하는 판국이잖아요.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이 거리가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이유이지요. 인천의 역사를 다 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인천 사람들이 늘 변함 없이 찾아와 준 고마운 거리이기도 하고요."

- 인천 서민들의 거리군요.
"사람들이 되물어요. '뭐가 쓸 게 있어요?'라고.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 부둣가에서 일하시는 분도 있고 공무원들도 있고, 술 좋아하시는 예술인도 있고, 직장을 잡지 못한 백수 아저씨들도 있고.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들도 있고. 여러 모습을 가진 인천 사람들이 오가는 참 편안한 거리예요. 다른 데서 상처 받고 오면 다 풀어줄 수 있는 넓은 사랑방이라고 보면 돼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려진 구도심 동인천이지만 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거리를 남겨둔 것이지요. 서민들의 삶과 삼치 거리의 정신은 딱 맞습니다."

우리는 인터뷰를 마치고 2차를 위해 원조 삼치의 맛을 그대로 간직한 가게 중 하나인 '양산박 삼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남수 사장 부부는 친구가 온 듯 최 작가를 맞아준다. 취재하며 정이 들었나 보다. 삼치 거리에 오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좋은 성품이 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손님을 친구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반가울까.

삼치거리의 '양산박 삼치' 집 창문에 붙은 책 포스터. 그들의 소박한 자부심이 한 권의 책 속에 투영돼 출간됐으니 자랑스러운 것이다.
 삼치거리의 '양산박 삼치' 집 창문에 붙은 책 포스터. 그들의 소박한 자부심이 한 권의 책 속에 투영돼 출간됐으니 자랑스러운 것이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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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 거리 사람들>이 출간된 것을 알고 가게 안에 포스터도 붙어 있다. 손님들에게 책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한다. 포스터 아래 쓰여 있는 말이 정말 낯설고 따뜻하다.

"우리 골목은 크게 세 가지를 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호객행위를 하지 않고, 둘째는 바가지 요금이 없고,
그리고 셋째는 과열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호객과 과열. TV 프로그램은 '더 맛있는 집'을 소개하기 위해 작전을 짜고, 식당은 옆집에 비해 더 잘났다고 홍보하는 게 보통의 현상이다. '방송에 나온 집'이 나오지 않은 집보다 많은 세상이다. '너보다 내가 원조'라고 싸우며 남의 집에 흠집을 낸다. 그래서 삼치 거리는 더욱 낯설다.

밤이 깊어가는데 손님들 인정 나누는 소리가 정겹다. 삼치 거리의 추억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사람 냄새' 구워 내는 이 책을 보면 좋겠다.

동인천 삼치거리에서 <삼치거리 사람들>의 최희영 작가
 동인천 삼치거리에서 <삼치거리 사람들>의 최희영 작가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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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삼치 거리 사람들> (최희영 / 썰물과밀물/ 2014.9.11/1만4500원/300페이지)



삼치거리 사람들

최희영 지음, 썰물과밀물(2014)


태그:#삼치거리, #최희영, #동인천, #아시안게임, #인하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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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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