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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부터 8월 30일까지 일본 시코쿠 여러 곳을 방문하여 민속과 생활과 관련된 시설이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려고 합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정리하여 관심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시코쿠는 일본 본토 가운데 아래쪽에 섬을 사이에 두고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코쿠의 크기는 동서 230km 쯤, 남북 180 km 정도입니다. 섬은 동서로 길게 자리 잡고 있는데 아령 모습으로 가운데가 홀쭉합니다. 본토와 시코쿠 사이에는 고베시와 아와지시마 섬 사이, 오카야마와 다카마츠시 사이, 히로시마와 이마바리 사이 등 세 곳이 다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 기자 말

  도미찜을 비롯한 산에서 나는 여러 가지 푸성귀로 차려놓은 저녁상입니다.
 도미찜을 비롯한 산에서 나는 여러 가지 푸성귀로 차려놓은 저녁상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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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8일 저녁 시코쿠 고치현 유스하라초(檮原町) 다로가와 마을에 있는 유젠이야시노슈쿠(友禪いやしの宿) 민박집를 찾아갔습니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주인은 저녁 식사를 차려놓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멋진 음식과 산골에서 나는 여러 가지 푸성귀를 갈무리하여 맛깔스럽고 푸짐하게 상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도미를 준비하여 도미찜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번 답사에서 처음 맛보는 징수성찬이었습니다.

저녁 밥을 먹으면서 민박 집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평생 산마을에서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한 참 생각에 잠겼던 할머니는 갑자기 40년 된 삼나무 한 그루에 얼마나 할 것 같으냐고 되물으셨습니다.

  민박집 뒤로 잘 자란 삼나무가 보입니다.
 민박집 뒤로 잘 자란 삼나무가 보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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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처음 나무를 심을 때는 삼나무가 집을 지을 재목으로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40 년이 지난 나무가 너무 커서 혹시 태풍에 나무가 쓰러지면 집에 피해를 줄 것 같아서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무 판매업자를 불러서 상의하여 나무를 자르기로 했습니다. 나무 상인은 할머니 화장품 한 개 정도 살 값을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 나무 업자가 여러 장비를 가지고 와서 나무를 잘라갔습니다.

나무 상인이 치른 40년 된 삼나무 값은 화장품 한 개 값 1만 엔이었습니다. 너무 서운해 하는 할머니에게 만 엔 짜리 한 장을 더 얹어 주었습니다. 처음 나무를 심을 때 가졌던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즘 일본에 외국 값싼 나무가 수입되면서 일본에서 자란 나무는 인건비와 운반비용 등이 비싸서 상품성이 없습니다.

40년 전 처음 삼나무를 심을 때 나무 값이 비쌌고, 나라에서도 장려금을 주면서 삼나무심기를 권장했습니다. 일본 전국에 삼나무가 자라면서 나무 값은 고사하고 삼나무 꽃가루가 날리는 1월부터 4월 무렵까지 꽃가루 알레르기로 일본인 30 퍼센트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민박집 할머니의 자서전

  민박집 주인 이토 할머니가 쓰신 자서전 천지일변(天地一變)입니다.
 민박집 주인 이토 할머니가 쓰신 자서전 천지일변(天地一變)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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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민박집 주인인 이토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이때 할머니는 자리를 뜨더니 큼직한 책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이 책은 할머니의 자서전이었습니다.

이토 할머니는 1931년 세상에 나오셔서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겪은 일과 가족 관계, 중요한 경험, 역사적인 사건 등등에 대해서 자신의 손으로 꼼꼼히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엮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면서 설명하셨습니다.

이토 할머니는 비록 고치현 시골에서 나셨지만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겪으셨습니다. 나이 83세입니다. 이 나이라면 일본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들을 겪은 분입니다. 대동아 전쟁, 관동대지진, 배고픔, 등등 자신이 겪은 일들을 역사적인 사건에 비추어 가족이나 친척을 주인공으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기록하셨습니다.

특히 이토 할머니는 42세 되던 해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이후 남편을 대신하여 산일을 맡아서 해오면서 두 자식을 키웠습니다. 20여 년 전 여관에서 일하는 것을 계기로 자신의 집에서 민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진 위는 현재 민박집 모습이고, 사진 아래는 기와지붕으로 집이 고쳐지기 전 모습니다.
 사진 위는 현재 민박집 모습이고, 사진 아래는 기와지붕으로 집이 고쳐지기 전 모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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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민박집을 운영하는 집은 처음 140여 년 전에 지은 집입니다. 처음에는 갈대를 엮어서 이엉을 얹은 집이었습니다. 70 여 년 전 기와집으로 지붕을 바꾸었습니다. 갈대 지붕은 물 빠짐을 위해서 경사가 급합니다. 그러나 기와집은 기와 무게를 유지하면서 지붕을 지탱해야하기 때문에 기와지붕이 경사가 45도 이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지붕을 고치는 것은 큰 공사입니다.

이 집에서 그동안 많은 가족이나 친척들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두 자식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집을 떠났습니다. 할머니 혼자서 민박을 운영하면서 이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올 8월에만 민박 예약이 10건을 넘었습니다. 

83세 민박집 할머니의 자서전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여자로서 어려운 인생길을 헤쳐나 오셨습니다. 자서전을 통해서나 질문과 대답 어느 곳에서나 세상을 향한 원망이나 비난은 없었습니다. 곧은 마음과 자신이 옳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열정을 다해서 살아오신 할머니의 인품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민박집 할머니의 나이든 큰아들이 할머니를 도와서 할머니와 우리 일행의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민박집 할머니의 나이든 큰아들이 할머니를 도와서 할머니와 우리 일행의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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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누리집> 유스하라초, http://www.town.yusuhara.kochi.jp/, 2014.9.3,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그:#유스하라초(?原町), #자서전, #삼나무, #민박집, #시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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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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