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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현대시장을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현대시장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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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림칙한 추석이다. '이래야 되나, 이래선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한가위다. 서글프고 안타까운 추석이다.

추석은 예로부터 이런저런 다툼이나 고민과 걱정을 멈추고 가을 수확의 풍요와 넉넉함을 나누는 민족의 큰 명절이었다. 박 터지게 싸우던 정치권도 추석이 되면 삿대질을 멈추고 모두 함께 민족의 명절을 같이 보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경계선으로 '네 편, 내 편'으로 둘로 쪼개진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좋은 옷을 차려 입고 선물 보따리를 싸들고 명절을 축하하기 위해 귀향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그러나 광화문과 청와대 부근에서는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명절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과 국민 앞에서 진상 규명과 함께 심지어 국가 개조까지 약속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 개 월이 지나 추석이 되면서 세월호 실종자 10명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유가족들은 아무 것도 변한 것 없는 현실의 벽에 갇혀 있다.

한가위의 풍요 속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처절하게 고립된 모습이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0일이 넘게 단식을 하면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해도, 또한 다른 세월호 유가족 등이 청와대 부근에서 장기 노숙을 하면서 같은 요구를 해도 박 대통령은 귀를 막고 있다. 유가족과 새누리당간의 특별법 협상은 결렬 상태다.

대통령의 추석 덕담, '세월호 딛고 가자'는 선언

대통령이 세월호에 대해 침묵하면서 시장을 찾고 극장이나 문화 행사장을 찾고 경제를 강조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세월호는 교통사고일 뿐, 그 가족들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과 같았다. 대통령이 추석의 덕담으로 '국운이 용솟음쳐서 국민 여러분의 가정에 풍요와 행복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세월호를 딛고 가자'라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뉴스 메이커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면서 여론 시장을 좌우한다. 대통령의 세월호에 대한 냉혹할 정도의 태도는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너무 차이가 크다. 누구의 눈에도 그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청와대는 전혀 동요 없이 교황과는 반대의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헷갈려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강조하는 것처럼 세월호는 불행한 교통사고이며 유가족들의 특별법 주장은 법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카카오톡 등에 범람하면서 그것이 참말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에 나타난 한 남성이 핫도그를 먹으며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 단식농성장에 나타나 핫도그 먹는 남성 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에 나타난 한 남성이 핫도그를 먹으며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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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수의 변호사나 법률학 교수들이 세월호 특별법을 유가족들의 뜻대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며 제시하는 논리는 대다수 언론이 외면하면서 소수의 목소리가 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고 여권은 정치적으로 승리했다고 여기는 것인가? 지난 7월 말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실질적으로 승리한 것을 보고 나온 얄팍한 결론인가?

대통령과 여당의 세월호 유가족을 코너로 모는 확고한 태도는 시민사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급기야 이른바 극우세력이라 불리는 소수의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단식농성을 조롱하며 라면이나 치킨 등을 먹는 막가파식의 행동까지 벌였다. 3백여 명의 목숨이 탐욕스런 자본과 무능한 정부로 인해 TV 생중계 속에 사망한 사건과 그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현장에서 벌어진 '단식 조롱' 행사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한 편의 막장드라마다.

극우세력의 막가파식 공세, 유가족에 대한 악마적 폭력

경찰력의 수수방관 속에 행해진 그것은 사회의 상식적인 사고방식, 가치관이 얼마나 왜곡되고 폭압적이 되었는지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그것은 집권 권력층이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배척하려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악마적인 폭력이다. 고통 속에 신음하는 유가족과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을 정면에서 조롱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방관하는 사회의 무관심은 더욱 전율할 일이다.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다. 자기를 지지한 세력만의 대통령이기를 고집하는 대통령은 민주주의나 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에 대해 무지한 대통령이다. 선거에 뽑힌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한 세력만을 싸안고 가는 식의 정치를 하는 것은 최악의 정치로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대통령은 성직자는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통당하는 약자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며 큰 감동을 준 언행을 대통령이 다 따라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치는 그 목적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고 정치적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교황 흉내를 내는 것조차 거부하는 모습을 지구촌이 무어라 평가할 것인가.

정치가 올바르지 않다면 그것으로 인한 폐해는 너무 크다. 올바르지 않은 정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치다. 지금 국민이 두 쪽 나 있는 것을 정치권은 심각하게 보고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가 증명하듯 그 대가는 혹독한 형식으로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세울호 참사로 두 쪽 난 한가위의 비극은 어떻게든 바로 잡혀야 하고 치유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대통령의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나, 나 몰라라'라는 태도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라이솔 등에 실렸습니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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