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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 대신 낙엽 한 장 붙잡고 아침햇살을 만끽하는 거미줄
▲ 거미줄 먹잇감 대신 낙엽 한 장 붙잡고 아침햇살을 만끽하는 거미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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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멀리 있을까, 가까이 있을까?

아름다운 것이나 소중한 것은 사실 그리 멀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침 산책길에 다시금 깨닫는다. 문제는 아름다운 것이든, 소중한 것이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됐느냐는 것이다.

벌개미취가 아침 이슬 속에도 피어났다.
▲ 이슬 벌개미취가 아침 이슬 속에도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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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상은 아름다운 것도 충만하고, 추한 것도 풍년이다.

그래서 어느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느냐,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가에 따라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고, 추한 사람일 수도 있다.

문제는 대체로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는 남들이 볼 때에도 그런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아침햇살이 빛나자 더욱더 아름답게 빛나는 이슬
▲ 이슬 아침햇살이 빛나자 더욱더 아름답게 빛나는 이슬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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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착각에 빠져 자신이 지고의 선이며,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 속좁은 사람이 되면 그가 가진 힘에 비례해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극명하게 이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누구나 다 그 사실을 보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풀잎마다 맺힌 이슬, 그 삶 짧아도 아름다워라.
▲ 이슬 풀잎마다 맺힌 이슬, 그 삶 짧아도 아름다워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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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도 달라진다.

일상에 편재해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의 삶은 남들이 보기에도 아름다울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일상에서 불필요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것들도 민감하게 본다. 그리하여, 그 아름다운 것을 지키기 위해 투사가 되기도 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그 무엇, 그것이 너무도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먼저 행동한다. 그래서 선구자다.

이슬, 개여뀌, 이끼의 삭, 아침 햇살...그 모두가 어우러져 각자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 개여뀌와 이끼의 삭 이슬, 개여뀌, 이끼의 삭, 아침 햇살...그 모두가 어우러져 각자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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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 오로지 하나의 아름다움만 빛나지 않는다.

이슬, 개여뀌, 이끼의 삭, 아침 햇살….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보는 동시에 하나하나가 가진 아름다움 역시도 보기에 모두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는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려고 다른 모든 것들을 도외시한다. 결국, 자신도 더는 빛날 수 없음에 도달할 수밖에 없고, 추함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

이끼의 삭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아침햇살에 빛난다.
▲ 이슬 이끼의 삭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아침햇살에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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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멀리가야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집 앞 작은 공원 산책길에 늘 그들이 있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들이 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은, 아침이슬 덕분이었다. 그러나 아침이슬이 내렸다고 해도 그들이 없었더라면 그냥 밋밋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저 밋밋하던 일상이 어느 날 아침 찬란하게 빛나는 것처럼, 지지부진하던 일들이 어느 날 혁명처럼 다가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그런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만 온다.

신갈나무 열매, 흔히 도토리로 통칭되기도 한다.
▲ 신갈나무 신갈나무 열매, 흔히 도토리로 통칭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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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의 열매가 익어간다. 신갈나무의 명예를 추락시킨 이가 있다.

<신갈나무투쟁기>에 대한 이야기다. 4대강이 그토록 황폐화되었건만,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책임져야 할 이들이 히죽거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아름답지 못하다. 어쩌면 이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똑바로 볼 줄 아는 이는 추함이 풍년인 세상이지만, 끊임없이 아름다운 것을 볼 줄아는 사람일 터이다.

보랏빛 맥문동과 아침햇살의 조화
▲ 맥문동 보랏빛 맥문동과 아침햇살의 조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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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문동 하나 하나는 작은 꽃이다.

꽃줄기에 모여 피어나고, 그 꽃줄기들이 모여 꽃받을 이루면 누구도 보지 못했다 할 수 없는 보랏빛 꽃밭이 된다.

삶도 이런 것이며, 사회변혁도, 혁명도 이런 것이다.

작지만 하나 둘 모이고 또 모이다 보면 어느 날인가에는 누구도 걸어갈 수밖에 없는 길이 열릴 것이다.

산책을 나온 강아지 한 마리가 아침햇살이 그린 나뭇잎에서 가을 냄새를 맡는듯 하다.
▲ 산책 산책을 나온 강아지 한 마리가 아침햇살이 그린 나뭇잎에서 가을 냄새를 맡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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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따라 산책을 나온 강아지 한 마리가, 아침 햇살이 그린 나무 그림자에 흠뻑 취했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문득,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개보다도 못한 삶을 강요당하는 수많은 이들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개가 아니라 사람일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아름다운 것, 희망 같은 것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실날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이들, 그들은 개만도 못한 이들일 터이고.

어제 내린 비가 아직도 나뭇잎에 앉아 있다. 아침햇살에 땅에 내리기도 전에 하늘로 올라갈 터이다.
▲ 비이슬 어제 내린 비가 아직도 나뭇잎에 앉아 있다. 아침햇살에 땅에 내리기도 전에 하늘로 올라갈 터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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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린 비가 아직도 비이슬로 남아있다.

아침 햇살에 하늘로 올라갈 터이다. 비가 내리면 모두 땅에 떨어져 흘러가는 줄로만 생각했는데, 어떤 빗방울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냥 하늘로 올라가는 것들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벗어난 그 어떤 현상이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멀리에 있지 않았다.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들도 멀리에 있지 않다.

약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우는 이들, 멀리서라도 그들을 응원하는 이들은 멀리에 있지 않으며, 그것은 아름답기에 반드시 그 아름다움을 빛내는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태그:#이슬, #가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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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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