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시 서울의 허파이자 시민들의 휴식처 북한산에는 신갈, 굴참, 상수리, 졸참, 갈참, 떡갈나무 등 참나무류가 많이 살고 있다. 이맘때쯤 이 나무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열매가 도토리다. 도토리는 오래전부터 묵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참나무류 나무의 번식을 위한 종자이기도 하고, 산속 야생 동물들에겐 가을과 겨울을 나는 중요한 먹거리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찾아간 북한산 들머리에 붙어 있는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국립공원 내 도토리 채집행위를 집중 단속한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산이 가을 단풍철을 맞아 등산객의 야생식물 불법 채취 행위 방지를 위한 집중단속에 나선다는 것이다.

탐방지원센터 직원에게 물어보니 도토리를 포함한 열매 등을 국립공원 밖으로 유출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단다. 하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다 보니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등산객들은 그저 재미와 호기심으로 별 생각 없이 하는 일이겠지만 야생동물들에겐 생존의 위협일 수 있겠다 싶다.

해도 해도 너무한 도토리 채취 현장

가을철 산속 열매들을 채취해가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단속 현수막이 다 붙었다.
 가을철 산속 열매들을 채취해가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단속 현수막이 다 붙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이맘 때 산에 가면 볼 수 있는 참나무류 나무들의 열매 도토리.
 이맘 때 산에 가면 볼 수 있는 참나무류 나무들의 열매 도토리.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직접 산행을 하다 보니 집중단속 현수막을 붙이는 게 무리는 아닌 듯 싶었다. 북한산 등산로에서 도토리를 줍는 이를 흔히 마주칠 수 있었다. 평소엔 보기 드문 열매인 데다 작고 귀여운 생김새라 별생각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도토리를 줍는다. 양파망처럼 생긴 망을 하나씩 들고 산속을 훑는 아주머니들도 보았다. 일부 등산객들의 따가운 눈초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토리를 싹쓸이 하다시피 하는 모습이 너무 심한 것 같아 용기를 냈다.

집중단속 현수막 얘기를 하며 지적을 하니 마지못해 도토리를 주섬주섬 추려 배낭에 넣는데, 얼핏 봐도 배낭을 거의 채울 정도로 그득했다. 게다가, 어느 등산로 옆 샛길에서는 나무에 발길질하는 사람도 보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도토리를 떨어뜨려 더 줍고자 해서였다. 자연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샛길 진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은 무용지물이었다. 하산길의 작은 식당들 앞엔 많은 도토리를 큰 쟁반에 수북이 올려놓고 보란듯이 햇볕에 말리고 있었다.

봄철엔 몸에 좋다는 각종 산나물과 칡, 더덕 같은 뿌리식물까지 남김없이 캐내는 통에 전국의 크고 작은 산들은 몸살을 앓는다. 이렇게 산속에 사는 야생 동물들의 먹거리를 빼앗아 버리니 배를 곯다 못해 민가로 내려온 야생 동물과 그들을 잔인하게 쏴 죽이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도토리는 흔히 다람쥐의 먹이로 알려져 있지만, 도토리를 먹이로 하는 야생동물은 다람쥐 외에도 많다고 한다.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 큰 동물에서부터 청설모, 산 쥐 등 작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 새들도 도토리를 먹는다.

도토리, 밤, 잣 등의 야생열매는 먹잇감이 부족한 겨울철 야생동물들의 중요한 저장식량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곤충들의 산란장소로도 유용한데, 거위벌레가 그런 곤충으로 새끼 유충을 도토리 속에 넣어 살게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10월 31일까지 국립공원 야생식물 채취 집중 단속

산속에 사는 야생 동물들에게 도토리는 가을과 겨울을 나는 중요한 식량이다.
 산속에 사는 야생 동물들에게 도토리는 가을과 겨울을 나는 중요한 식량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동물들은 열매를 먹이로 삼는 대신 종자를 멀리 퍼트리는 역할도 한다.
 동물들은 열매를 먹이로 삼는 대신 종자를 멀리 퍼트리는 역할도 한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인간들이 도토리를 주워 가는 것은 단지 야생동물들의 먹이를 좀 가로채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숲의 정상적 성장을 저해하고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국립공원 직원들의 전언이다.

모든 열매가 그러하듯 도토리도 참나무의 번식을 위한 종자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열매를 먹이로 삼는 대신 종자를 멀리 퍼트리는 역할도 해주지만, 인간들의 열매 채취는 숲에서 나무의 종자를 계속 줄어들게 할 뿐이라는 것.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는 도토리를 반출하는 행위가 매년 급격한 증가 추세에 있다. 금년에도 많은 탐방객이 도토리 등 야생식물 반출행위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도토리 열매가 익어 떨어지는 9월에 집중 발생한다고.

이에 이번 집중단속 기간 중에 적발될 시 자연공원법에 의거 과태료부과 처분(10만 원 이하)할 계획이며 특히, 특별 단속대상으로 계획적인 반출행위, 다량의 채취행위에 대해서는 고발조치(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 강력히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국립공원은 사람들에게 휴식처 역할을 하는 공원이기 전에 야생동물의 삶터이기도 하다. 이런 캠페인과 단속을 계기로 사람들에겐 별미나 간식거리인 산속 열매들이 야생 동물들에겐 생존을 위한 중요한 식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추수의 계절인 9월. 풍성하고 넉넉한 한가위를 맞아 국립공원은 물론 동네 뒷산에 사는 야생 동물들에게 가을 열매를 양보하는 넉넉한 마음도 가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31일에 다녀 왔습니다.



태그:#북한산 , #도토리 채취, #야생식물채취금지, #국립공원
댓글1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