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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은 일본의 편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일본 제국은 동아시아 침략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해간다. 러일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요동반도의 중심 도시 대련을 찾았다. 전쟁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화려한 도시. 화려함 속의 스며 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 대련 시내 곳곳을 둘러보았다.

요동반도의 꼭지점에 위치한 아담한 여순과 달리 대련은 요녕성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대련은 1992년 중국의 2차 개혁개방 정책의 도시에 포함되어 크게 발전했다. 개혁개방의 역사가 오래된 대련시는 동북3성 중에서 굉장히 부유한 도시에 속한다.

대련으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대련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8차선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버스가 제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대련 시내에 들어서자 도로에는 아우디, BMW, 벤츠 등 화려한 외제차들이 즐비하다. 중국차보다 오히려 수입차들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고층빌딩 숲, 명품 숍, 고급 호텔, 교통정체 등은 여느 나라의 대도시에서처럼 낯익은 풍경들로 채워져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발전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대련으로 들어서자 바다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드넓은 만주벌판의 뙤약볕 더위를 날려주는 듯했다. 대련은 바다와 접해 있어 해상교통과 무역이 발달하기에 적합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도시다. 멀리 보이는 대련항에서는 크레인 수십 기가 움직이고 있었고, 컨테이너 박스들로 빼곡했다.

그리고 대련에는 멋진 백사장이 있는 해수욕장도 있다. 바다를 보기 어려운 만주지역 사람들은 여름이면 바다를 찾아 이곳으로 관광을 많이 온다고 한다. 교통, 무역, 관광의 삼박자는 대련을 부유한 도시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조건이다. 바다가 선사한 혜택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련의 바다에서 잡히는 풍부한 해산물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만주 사람들도 여름이면 바다 찾아 오는 곳, 대련

조개구이집으로 가득 찬 대련의 야시장.
 조개구이집으로 가득 찬 대련의 야시장.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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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이 유명하다는 대련에서의 하룻밤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하루 일정이 모두 끝난 시간은 밤 11시. 늦은 시간에도 일행 몇 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대련 시내로 달려갔다. 택시가 우리를 데려다 준 곳은 조개구이집들이 즐비한 야시장이었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자욱한 연기의 매캐함과 연기가 싣고 온 조개가 구워지는 향기였다. 조건 반사적으로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초행길인 우리 일행은 한 호객 청년에게 이끌려 가게를 잡았다. 한국에서는 고급 해산물인 성게를 눈 앞에서 손질해 주며, 가재요리를 접시가 넘치도록 내온다. 저렴한 가격에 산해진미를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대련의 야시장에서의 시간은 빡빡한 답사 일정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만과 요동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한다. 그러나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삼국간섭'으로 일본은 요동반도를 포기하게 된다. 대신 러시아가 이 지역의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고, 요동반도를 50년간 조차한다. 이렇게 요동반도는 러시아의 지배권 아래에 놓이게 되는데. 점령자들의 습성인 걸까? 영원한 점령자의 지위를 획득하기라도 하듯 제멋대로 도시를 설계한다. 이 지역을 지배했던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대련 시내의 중산광장 주변 모습.
 대련 시내의 중산광장 주변 모습.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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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은 중국이라고 하기에는 오래된 유럽식 건물과 일제식 건물 그리고 현대식 건물들이 뒤섞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국적'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만주 진출의 야심을 품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대체할 만한 동북지역의 거점으로 대련을 점찍어 도시 설계를 했다.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 속의 건물들과 도시의 모습은 상당 부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중 한 곳은 관광 명소로 자리잡은 '러시아 거리'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 섰을 때 길가에 관광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라 호기심의 채근에도 꾹 참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지 러시아 거리 입구 도로에서 신호가 걸리는 바람에 거리 안의 풍경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아치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러시아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러시아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러시아가 대련을 점령한 후부터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건물들만 남아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관광의 거리가 되었지만, 한때 이곳은 러시아의 한반도 진출의 꿈이 서려 있던 곳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침략의 본진으로 진화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러시아 거리'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는 '중산광장'이 있다. 러시아 점령 시기에 만들어진 광장으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이 광장은 대련 시내 곳곳으로 뻗은 10개의 도로가 연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야말로 대련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는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건물들이 광장을 감싸고 있었다. 유럽풍 양식의 옛 건물들은 점령자의 위용을 드러내듯 위압적인 모습으로 광장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옛터 표지석.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옛터 표지석.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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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주철도주식회사 옛 건물.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옛 건물.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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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한참 걸어 목적지인 건물에 당도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터'(만철)라고 쓰인 표지석만이 이곳이 '만철'의 본사였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1906년부터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본사로 사용했던 이 건물의 견고함은 그대로였다. 굳건히 서 있는 모습이 승승장구하던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을 상징처럼 형상화하고 있었다. 답사단은 이 터가 갖는 역사적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장춘-대련'간 철도 운영권을 양도받는다. 이 철도는 러시아가 부동항 진출을 위해 건설한 시베리아 철도(모스크바-시베리아-만주-블라디보스토크 연결)의 일부이다. 러시아는 이 철도를 건설하면서 만주를 통해 한반도로 진출하는 꿈도 함께 키워갔다. 반면, 한반도를 거쳐 만주로의 진출 야욕을 키우고 있던 일본에게도 남만주철도는 몹시 탐나는 것이었다. 결국, '러일전쟁'으로 남만주철도는 일본의 차지가 되었고, 이는 세계 역사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불씨가 발화점을 향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춘-대련'간 연결 철도의 권리를 양도받은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 침략을 위한 수순을 착착 밟아간다. 러시아를 쫓아낸 대련에 '만주철도주식회사' 본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철도 운영을 시작한다. '만철'은 초기에는 철도 운영에 관한 경영만 했으나 점차 정보, 금융, 토지에 관한 경영까지 확대해 갔다. 그리고 '만철조사위원회'를 두어 조선과 만주에 대한 일대 연구를 시작한다. 조선과 만주의 지리, 역사, 광물 등 모든 부분을 철저히 조사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만선지리역사연구보고'라는 책 16권으로 정리되어 침략의 기반으로 활용되었다.

'만철' 본사의 기능이 확대되자 일본은 다음 수순으로 넘어간다. 일본은 남만주철도 주변을 경계한다는 명목으로 일본군 주둔 조항을 만들어 관동군이 합법적으로 만주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일본군이 만주지역에 주둔함으로써 군정과 민정이 동시에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요동지방에 주둔한 일본군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전격적인 군사작전으로 만주지역을 점령해 만주괴뢰국을 세워 만주지역을 식민지로 삼는다. 만주지역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군사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더 나아가 태평양전쟁까지 이어지는 지리적 근거가 되었다.

일본의 중국 침략을 상징하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터'. 침략의 기반 마련뿐만 아니라 침략의 본진으로 점점 진화해 간 곳이었다. 직접 찾아가서 본 '만철'은 많은 유럽식 건물들 사이에서 태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제국의 침략의 전초기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중산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건물 중 가장 험상궂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대련은 만주지역 중 어느 도시보다 경제적으로 발달해 있어, 대도시에 사는 필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곳이었다. 이국적인 도시 분위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화려한 건물, 북적이는 야시장의 풍경 그리고 파도치는 바다까지. 하지만 발전해 가는 도시의 그 이면에는 점점 잊혀져가는 침략의 역사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7월 17일부터 23일까지 6박 7일 동안 중국동북지역 항일독립투쟁의 현장으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태그:#대련, #남만주철도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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