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고백하건대, '과체중' '여성'으로 살아오며 늘 궁금한 게 있었다. 남들보다 짜게 먹지 않고, 한 그릇 이상을 먹지 못하며, 매일 야식을 먹지도 않는 나를 다른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 시선에 '털털'하고 '관대'해야 했고, 때로는 나 스스로 기꺼이 웃음을 드리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TV 개그 프로그램, 특히 여성 개그맨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방송사 PD들과 미디어 전문가, 개그맨들을 붙잡고 물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방송사 내의 비교적 '내밀한' 이야기로 그 질문에 답해 준 PD들의 이름은 불가피하게 익명으로 남겼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씌여진 이 글은 '불편'하고, '선비질'일 것이며, 어떤 이들에겐 '열등감 폭발'의 결과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편함을 소리 내 말하는 것, 당연히 여겨지는 것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기를 청하는 것, 그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 기자 주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언제부턴가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데 웃을 수 없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웃자'고 보는 프로그램인데, 웃기지가 않더라는 거다. 최근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개그콘서트> 기사에 한 누리꾼은 "억지 몸개그 아니면 돼지 타령, 못생긴 얼굴 타령하는 외모 비하 말장난뿐"이라며 개탄하기도 했다. 그들이 공통으로 짚어내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차별의 서사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뚱뚱한' 사람들은 앞뒤 재지 않고 식탐을 부린다. 그가 길을 걸으면 무너질 것 같고, 그가 기대 오려고 하면 싫은 표정이 나온다. '못생겼다' 여겨지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대놓고, 혹은 은밀하게 놀리고 야유하고 깎아내리는 것이 웃음의 주요한 장치가 된다. 심지어 그들은 '눈치'까지 없다. '뻔뻔'하기도 하다.

최근 흔하게 이런 모습이 모두 웃음거리가 된다는 걸 목격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여성에 대한 묘사는 더욱 흥미롭다. 타인으로부터 '미녀' 혹은 '추녀'로 구분되어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스스로 타인과 비교하고 깎아내리는 것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최근 <1박2일>은 '미녀'를 '상'으로, '미녀가 아닌 이들'을 '벌'로 규정하는 듯한 연출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비하 개그 많은 이유? 그게 가장 쉽기 때문"

 KBS 2TV <개그콘서트> 스틸컷

KBS 2TV <개그콘서트> 스틸컷 ⓒ KBS


그 이유는 다양한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스탠드 업 코미디' 위주의 지금의 개그 프로그램 특성상, 즉각적으로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려면 이와 같은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것.

한 방송사 PD A씨는 "그렇게 웃기기가 가장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PD B씨 또한 "<개그콘서트>가 뜨면서 한국 개그 프로그램이 획일화된 경향이 있다"며 "이렇게 개그가 획일화된 상태에서 즉각적인 웃음을 유발하려면 단편적이고 1차원적인 소재를 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어진 시간 내에 한 편의 완결된 프로그램을 방송해야 하는 제작 방식도 한몫을 한다. A PD는 "과거 방송됐던 <개그콘서트> 코너 중 '고고 예술 속으로'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데, 여자 개그맨이 뚱뚱하거나 못생긴 걸 희화화하지 않고도 충분히 웃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그건 당시 그들이 신인 개그맨이라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개그를 짜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B PD 또한 "내러티브(서사)가 있으면서 웃기기가 어렵다"며 "그러려면 개그맨들이 오랜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방송사의 PD C씨는 "가장 싼 가격으로 효율적인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공개 코미디를 만드는 게 사실"이라며 "이야기가 있으면서도 유치하지 않은 웃음을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비교적 서열이 엄격한 개그맨 세계의 문화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A PD는 "선후배 관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며 "(개그에) 동의하지 않아도 (신인 개그맨은) 선배의 코너에 나간다는 게 좋은 기회기도 하고, 영광이기도 하니 출연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어 "'이렇게 해야 웃길 것'이라는 여자 개그맨 스스로의 편견도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한 그는 "대부분이 남자인 선배 개그맨 사이에서 역할을 얻어야 하다 보니 그런 상황적 이유도 없지 않아 있다"고 덧붙였다.

'바깥'에서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일단 개그 프로그램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가 지극히 한정적이다. 특히 풍자 개그는 유·무형의 압력이 발생하면서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자신을 풍자한 개그맨을 고소한 전 국회의원 강용석의 사례는 이를 바로 보여준다. '위를 향한 풍자'가 퍽 자유롭게 행해지는 외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SBS <웃찾사>에 출연 중인 개그맨 강성범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서 코미디를 한다는 게 어렵다"며 "코미디의 3대 요소가 정치, 종교, 성인데 이는 모두 공중파에서 다루지 못하는 소재"라고 털어놨다. 이어 강성범은 "이렇게 소재가 제한되다 보니 외모 비하 같은 코미디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선입견은 여전히, 힘이 세다

 tvN < SNL 코리아 >에 출연해 '빨개요' 무대를 선보인 이국주.

tvN < SNL 코리아 >에 출연해 '빨개요' 무대를 선보인 이국주. ⓒ CJ E&M


닳고 닳은 이야기지만, 여전히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인식에 있다.

최근 한 매체에서는 < SNL 코리아 >에서 이국주가 선보인 현아의 '빨개요'가 웃음을 자아냈던 것을 두고 "어찌됐든 그 밑바탕에는 과체중 여성의 섹시한 무대는 낯설거나/웃기거나/통념을 깨는 것이라는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며 "뚱뚱한 개그우먼의 계보가 굳건히 이어지고 있는 건, 그리고 이들이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이 여전히 비슷하다는 건, 우리에게 몸매 선입견이 얼마나 굳건한지, 그리고 여전한지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OSEN, 현아 vs 이국주, 우리가 스타의 '몸'을 소비하는 방식)

그렇다. 현대 사회에서 몸에 가해지는 여러 가지 통제는 점점 그 힘을 얻어가고 있다.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는 더욱 거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3년 밝힌 자료에 따르면 거식증, 폭식증 등 섭식장애의 80%는 여성이었다. 2010년에는 한 택시기사가 승객에게 "그런 뚱뚱한 몸으로 미니스커트를 입느냐, 팬티가 다 보이겠다"고 말하고, 이를 항의하는 승객을 폭행해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런 '유별난' 경우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여성을 향한 엄격한 시선은 어렵지 않게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선 속에서 여자 개그맨 또한 자유롭지 않다. '캐릭터를 얻어 떠야만' 하는, 소수만이 혜택받는 세계를 택한 만큼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를 극복하는 건 온전히 개인의 숙제로 전가된다. B PD는 "개그맨과 인간으로서의 두 가지 지향점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내적 갈등이 끊임없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를 두고 한 개그맨은 "남들보다 뚱뚱한 몸매를 캐릭터로 이용해 인기를 얻고 나니, 무엇을 해도 그와 비슷한 캐릭터에서 벗어날 수 없더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개그맨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연기를 하더라도 늘 정해진 캐릭터를 했고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며 "방송을 하면서도 상처를 받을 일이 많았다. 여자 개그맨이다 보니 외모에 대한 비하도 스스로 할 때도, 남들이 나에게 할 때도 있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예쁜 것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다, 무엇이 나쁘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대중이 이와 같은 형식의 개그를 원한다'고 답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발언들이 공공연하게 타인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때, 이것이 일종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국적, 인종, 성, 종교, 성 정체성, 정치적 견해, 사회적 위치, 외모 등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발언)가 된다는 데 있다.

또한, 그것이 '웃음'으로 포장된다고 해서 그 속에 담긴 차별적 시선도 함께 희석되는 건 이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활동가는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것이 한국에선 허용되는 경우가 유독 많다"며 "그것이 차별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약자를 상대로 하는 코미디는 비겁한 일"

 MBC <코미디의 길> 스틸컷

MBC <코미디의 길> 스틸컷 ⓒ MBC


일부 PD들 또한 이러한 문제 제기에 동감하고 있다. PD D씨는 "외모 비하 코드가 불가피하게 들어간다고 해도, 그게 (코미디의) 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대중 방송을 지향하는 이상 적절한 윤리적 선을 지키지 않으면 대중이 고개를 돌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방송사의 PD E씨는 "코미디가 약자를 상대로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된 B PD도 "남성에 대한 편견도 동시에 존재하긴 하지만, 여성들의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에 관대한 건 여성에 대한 편견이 기본적으로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며 "외모를 갖고 비트는 게 매력적인 소재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A PD는 "방송이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그만큼 폐해도 클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개그가 존재할 수 있는 토양을 보장하고, 이를 육성하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과거 <개그콘서트>에서 방영됐던 코너 '달인'이나 '두근두근'은 각각 개그맨 김병만의 초인적이기까지 한 도전 정신과 남녀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웃음을 샀다. 현재 방영 중인 <개그콘서트> '가장자리'나 MBC <코미디의 길>의 '돌싱남녀'는 기러기 아빠, 이혼 부부 등 사회적 이슈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뿐만 아니라 SBS <웃찾사>의 '아후쿵텡풍텡테'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얼마든지 허물어질 수 있음을, '아저씨'는 전래동화를 비틀어 어긋난 선의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예 외모가 만들어 낸 선입견을 비판하는 코너(<코미디의 길>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웃찾사> '누명의 추억')도 있다.

이에 대해 이윤소 활동가는 "(개그맨에게 자신에게 맞는) 캐릭터를 찾아내기까지 시간을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FM적인 캐릭터만 주어지는 것"이라며 "누구를 까는 게 아닌 개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인식 변화로)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뚱뚱하면 불행하고, 퀸카면 행복하다'는 프레임은 깨져야 한다. 사실 행불행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며 "그런 이분법만이 미디어에 담기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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